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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김보일|생각의 뭉게구름

어떤 발목이 정상적인 발목일까 두 시간을 걸어도 나의 발목은 끄떡없다. 한나절을 걸어도 마찬가지고 하루 종일 걸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면 나의 발목은 정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달릴 때다. 천천히 달리면 문제가 없지만 조금이라도 속력을 냈다 싶으면 여지없이 발목이 시큰거린다. 십여 년을 마라톤을 하다가 그만 둔 것도 발목 때문이었다. 걸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뛰면 문제가 생기는 발목은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나의 발목은 걷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상이지만 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비정상이다. 발목 자체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를 수 없고, 그 발목이 어떤 상황에 놓이는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결정된다. 다시 말해 나의 직정 동료들 사이에서는 나의 발목은 정상이지만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 사이에서 나의 발목은 비정상이다. 그런데 마.. 더보기
너와 나의 경계를 사라지게 하는 공감(共感) 2011년 지리산을 종주할 때의 일이다. 텐트도 없이 오직 침낭 하나에 의지해 한데서 잠을 자는 이른바 ‘비박’을 하게 되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비박을 하기로 하고 산행에 나선 길이라 산장 대피소 근처에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젖어 있는 바닥에 비닐을 깔고 침낭 속에 들어가 다시 침낭 위에 비닐을 덮고 잠들어야 했다. 9월말, 초가을이었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뼛속으로 스미는 듯했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니 불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야영의 맛은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껴안는 데 있었지 편함을 구하는 데 있지 않았다. 빗속에 무거운 배낭을 지고 1,000미터 이상의 고지를 오르고, 구부구불한 산길을 걷는 일도 힘에 부쳤지만 쌀을 씻고 안쳐 밥을 해먹는 일도 고역이었고, 잠.. 더보기
나의 감각만이 절대적인가 'SF 영화로 보는 철학적 물음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조용헌의 책,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는 ‘있음’과 ‘없음’, 인식과 존재의 문제를 일관되게 조명하고 있다. 온혈동물의 피를 먹고사는 진드기가 온혈동물을 감지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피부의 지각세포다. 그 세포는 포유동물의 몸에서 나는 탄소 냄새에만 반응한다. 물론 식물의 냄새, 빗물 소리, 바람 소리, 새의 노랫소리 등등 진드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다양하다. 그러나 진드기에는 이런 다양한 세계는 의미가 없다. 포유동물의 몸에서 나는 냄새와 체온과 피부의 접촉 자극이라는 세 가지만이 진드기에게 의미가 있다. 꽃의 향기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어도 진드기에게는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진드기와 인간이 객관적 조건을 공유하고 있.. 더보기
유아론, 내가 보는 대로 세상도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빨간 색이 먼저 있기 때문에 빨간 사과가 나의 감각에 포착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로줄 방에서 자란 고양이는 왜 가로줄을 보지 못할까?』의 저자는 철학자 조지 버클리의 “물질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감각적 성질은 물질 속에 존재하는 성질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오히려 세계의 실상에 가깝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빛은 투명할 뿐인데 그것이 우리의 뇌에 ‘붉은 색’이라는 느낌을 만들어 낼 뿐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빨간 색의 사과를 모두가 예외 없이 빨간 색으로 느끼지는 않는다. 빨간 색을 바라보는 주체를 인간에서 동물에게까지 확장하면 ‘빨간 색의 사과를 모두가 예외 없이 빨간 색으로 느낀다.’라는 가설은 금방 그 토대가 허물어진다. 왜.. 더보기
단맛은 설탕 속에 존재할까, 우리의 입안에 존재할까? 단맛은 설탕 속에 존재할까, 우리의 입안에 존재할까? 일본의 인지과학계의 선구자로 꼽히는 다카기 마사유키의 책, 『세로줄 방에서 자란 고양이는 왜 가로줄을 보지 못할까?』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일찍이 철학자 조지 버클리에 의해서도 제기된 것이기도 하다. 버클리는 『인지원리론』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색과 맛은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물질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감각적 성질은 물질 속에 존재하는 성질이 아니다.” 감각적 성질이 물질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과의 빨간 색은 사과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단 말인가? 단맛은 설탕 속에 있지 않고 마음속에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콧방귀를 뀔 수도 있겠지만 사정은 다르다. 다카키 마사유키는 말한다. “고양이는 설탕을 .. 더보기
냉정한 육체의 눈, 왜곡을 일삼는 마음의 눈 냉정한 육체의 눈, 왜곡을 일삼는 마음의 눈 김홍도의 그림 을 가만 들여다보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회초리를 놓아두고 앞쪽에서 훌쩍거리는 학동을 야단치는 훈장님의 모습이 위압적이지 않다. 오히려 친근하기까지 하다. 훈장님의 얼굴에서는 우는 녀석이 안 되었다는 연민의 마음도 읽을 수 있고, 너무 호되게 혼찌검을 낸 것은 아닌가, 하는 훈장님의 학동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벌을 받은 학동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모습은 어떤가. 연민과 동정은 없다. 고것 참 쌤통이다, 하는 표정이다. 남들이 숙제할 때, 혼자만 열심히 놀더니 어디 한 번 호되게 당해봐라, 하는 표정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 그림을 보면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훈장님의 덩치를 보면 앞에서 찔끔거리는 학동의 세 .. 더보기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지 않다면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지 않다면 플라톤의 저서 『국가』 2권이 소개하는, 옛 리디아의 양치기가 얻은 반지에 관한 이야기다. 양치기가 양떼를 돌보고 있는데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동굴과 같은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벌어진 땅속으로 들어가 양치기는 썩은 송장의 손가락에 끼워진 황금반지를 발견한다. 양치기는 그 반지를 끼고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된다. 반지의 보석을 돌렸더니 자기 몸이 사라져 투명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또 보석을 반대로 돌리니 몸이 다시 나타났다. 반지의 비밀을 안 양치기는 왕궁으로 들어가 왕비를 유혹하고 왕을 죽인 후 왕국을 장악한다. 이 양치기가 리디아 사람 기게스의 조상이다. 플라톤은 그가 낀 반지를 ‘기게스의 반지’라고 부른다.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기게스의 반지만 우리의 손에 쥐.. 더보기
시각의 차이는 눈의 해부학적 구조의 차이 시각의 차이는 눈의 해부학적 구조의 차이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먼저 본다는 것은 사물로부터 반사된 빛이 망막에 상으로 맺히는 물리적 작용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다는 것은 눈과 뇌의 합동작전이다. 망막에 어떤 상이 맺혔다고 해도 그것을 뇌가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무엇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뇌가 없으면 사물은 물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본다는 것은 망막에 맺혀진 상이 시각신경을 통해 시각을 담당하는 뇌의 중추신경에 전달되는 생리적 작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건강한 눈을 가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물리적·생리적 작용에 이상이 없는 눈과 뇌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물리적·생리적 작용에 이상이 없는 눈과 뇌를 가지고 동일한 대상을 보았다고 해도 모든 사람의 시각적 경험이 같을 .. 더보기
헤드폰을 착용하고 염불을 하는 스님이 없는 이유는? 헤드폰을 착용하고 염불을 하는 스님이 없는 이유는? 길을 걷다 보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걷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눈앞도 살피고 스마트폰도 살피고 과연 눈이 멀티태스킹(multi tasking, 두 가지 이상의 동시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공부할 때도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담임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하나만 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으시지만 자식들은 잔소리라고 치부한다. 걷는 행위에도 우리 뇌의 많은 부분이 동원된다. 소뇌는 땅이 움푹 패었는지, 볼록한지, 지표의 성질에 따라 달라지는 근육의 긴장도를 조절한다. 중뇌는 보폭의 크기를 결정하며 언제 발을 떼고 내려놓을지 그 타이밍을 관장한다. 대뇌의 후두엽의 시각피질은 물체의 모양과 위치, 운동.. 더보기
왜 어떤 사람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왜 어떤 사람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감각의 제국이다. 세상에는 볼 것도 많고 들을 것도 많고 냄새 맡을 것도 많다. 문제는 우리의 코와 귀와 눈이 세상의 모든 자극들을 다 지각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우리는 한정된 것만을 지각한다. 한정된 것만을 지각하는 행위는 어떤 것을 지각하고, 어떤 것을 지각에서 배제하는 행위로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극의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고 한다. 각인각색(各人各色),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다. 생김새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기억도 다르다. 고등학교 동창이라면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다. 졸업을 한 지 오랜 시간이 흘러 만난 친구들을 보면, 친구들마다 특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