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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김보일|생각의 뭉게구름

어떤 발목이 정상적인 발목일까



 

두 시간을 걸어도 나의 발목은 끄떡없다. 한나절을 걸어도 마찬가지고 하루 종일 걸어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면 나의 발목은 정상이다. 그런데 문제는 달릴 때다. 천천히 달리면 문제가 없지만 조금이라도 속력을 냈다 싶으면 여지없이 발목이 시큰거린다. 십여 년을 마라톤을 하다가 그만 둔 것도 발목 때문이었다. 걸으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뛰면 문제가 생기는 발목은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나의 발목은 걷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상이지만 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비정상이다. 발목 자체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를 수 없고, 그 발목이 어떤 상황에 놓이는가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결정된다. 다시 말해 나의 직정 동료들 사이에서는 나의 발목은 정상이지만 마라톤 동호회 회원들 사이에서 나의 발목은 비정상이다.

 

그런데 마라톤동호회에 소속된 어떤 사람이 건강한 발목, 정상적인 발목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가 만약 마라톤 선수가 되고자 한다면 그의 발목의 정상성 여부는 다시 판단되어져야 한다. 적어도 선수가 되려면 42.195㎞를 3시간 이내에 달려야 하는데 발목이 부실하다고 한다면 그의 발목은 일반인들에게는 건강한 발목, 정상적인 발목이라고 할지라도 직업적인 프로선수로서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결론은 이쯤 되겠다. 어떤 대상[발목]의 정상성은 그 대상의 성질만으로 판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어떤 환경에 놓이는가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정상이 내일의 비정상이 될 수도 있다

 

정상은 사전적 의미로 ‘제대로인 상태’ 혹은 ‘지극히 평범한 상태’를 이른다. 의학에서는 질병의 유무로 정상과 비정상이 판명된다. 가령 발목에 염증이 있으면 비정상이고 그렇지 않다면 정상이다. 검사결과의 수치도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가령 혈압이나 혈당 수치가 일정 기준에 있으면 정상이고, 이를 벗어나는 경우는 비정상이다.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저자 조르쥬 깡길렘은 어떤 대상의 정상성이 환경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티시에와 레리티에의 실험을 소개한다.

 

흔적 날개만을 가진 초파리는 방풍되고 닫혀진 환경에서는 날개를 가진 정상적인 초파리에 의해 제거된다. 그러나 바람이 많이 부는 환경에서는 흔적날개만을 가진 초파리는 날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음식물에 붙어 있고, 3세대가 지나면 섞여진 초파리 집단의 60%가 흔적날개를 가진 초파리임이 관찰된다.

 

이 경우 어떤 환경을 정상적인 환경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정상성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바람이 부는 환경이 정상적인 환경일까, 그렇지 않은 상황이 정상적인 환경일까. 만약 바람이 많은 환경이 정상적이라면 흔적날개만을 가진 초파리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방풍되고 닫혀진 환경에서라면 날개를 가진 초파리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체가 자신의 생명을 더욱 잘 전개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은 정상적이다. 흔적 날개만을 가진 초파리에게는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이 정상적인 환경이지만 날개를 가진 초파리에게는 바람이 많이 부는 환경이 정상적이다. 이로써 본다면 한 대상을 정상으로 보느냐 비정상으로 보느냐에 대한 엄격한 기준은 따로 있다고 할 수 없다.

 

티시에와 레리티에의 실험은 어떤 대상을 정상성의 현재의 관점에서만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현재의 환경이 변화지 않는다면 지금의 환경에 맞는 개체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환경은 언제든 변한다. 어제의 정상이 내일의 비정상이 될 수도 있고, 내일의 정상이 먼 미래에는 다시 비정상이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세상에는 다양한 개체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현재의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는 개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개체도 있다. 현재의 상황에 잘 적응하고 있는 개체들만이 승자요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패자라고 하는 생각이 불합리한 것은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변화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다양성을 늘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