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_작가共방/김보일|생각의 뭉게구름

단맛은 설탕 속에 존재할까, 우리의 입안에 존재할까?

단맛은 설탕 속에 존재할까, 우리의 입안에 존재할까?

일본의 인지과학계의 선구자로 꼽히는 다카기 마사유키의 책, 『세로줄 방에서 자란 고양이는 왜 가로줄을 보지 못할까?』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일찍이 철학자 조지 버클리에 의해서도 제기된 것이기도 하다. 버클리는 『인지원리론』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색과 맛은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물질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감각적 성질은 물질 속에 존재하는 성질이 아니다.”

감각적 성질이 물질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과의 빨간 색은 사과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단 말인가? 단맛은 설탕 속에 있지 않고 마음속에 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콧방귀를 뀔 수도 있겠지만 사정은 다르다. 다카키 마사유키는 말한다. “고양이는 설탕을 핥아도 달다고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설탕에는 달다는 성질이 없다. 즉 맛이 단 설탕이라는 물질은 없으며 그냥 설탕이 있을 뿐이다. (중략) 외부세계에 있는 것은 설탕 분자일 뿐이며, 여기에 단맛이 묻어 있는 것도 아니다. 고양이가 설탕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달다는 감각을 대뇌에서 만들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고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할까?

지난 2005년 미국 모넬 화학 감각 센터의 시아 리 박사팀이 고양이와 호랑이, 치타의 침과 혈액을 분석해 이들 고양이의 혀에는 단맛을 뇌로 전달하는 미각수용체가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해도 괜찮을까. 그렇다. 고양이에게는 단맛이 중요하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육식을 하기 때문이다. 단맛이 나지 않는 고기를 주로 먹는 고양이나 호랑이 치타에게 단맛은 필요 없는 감각일 뿐이다. 단맛을 뇌로 전달하는 미각수용체는 고양이의 생존에 불필요한 장치다. 그런 장치가 고양이에게 없으니 고양이에겐 설탕이 달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인간들로서는 고열량의 에너지원을 확보해주는 단맛이 생존에 필요했을 것이고, 단맛을 뇌로 전달하는 미각수용체가 생존에 이득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인간은 고양이와 달리 단맛을 느낀다. 그러므로 단맛은 설탕에 있지 않고 고양이와 사람의 마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세로줄 방에서 자란 고양이는 왜 가로줄을 보지 못할까

옥스퍼드 대학교의 코린 블랙모어 교수의 연구실에서 고양이를 대상으로 행해졌던 실험은 도대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연구실은 아주 어둡다. 고양이들은 하루 중 22시간을 이 방에서 보내고, 2시간은 세로 줄무늬가 그려진 밝고 작은 방으로 나와서 앉아 있게 된다. 고양이들은 자기 몸의 무늬를 알아볼 수 없도록 목에는 검은 후드를 달고 있다. 따라서 고양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밝고 작은 방의 세로 줄무늬뿐이다. 그 고양이들은 어떤 가로선도 본 적이 없다. 이 고양이들을 높이 1미터 정도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닥에 가로선이 그려져 있는 플라스틱 판을 깔아놓고 고양이를 밀어서 떨어뜨리려고 한다면 고양이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답은 “절대로 뛰어내리지 않는다.”이다. 그렇다면 책상의 방향을 수평으로 90도 회전하여 바닥의 가로선을 세로선으로 바꾸어 놓고 고양이를 밀어서 떨어뜨리려고 한다면 고양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고양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세로선이 그려져 있는 바닥으로 낙하를 시작한다.

가로줄 무늬만 있는 방에서 사육된 고양이는 세로줄 무늬를 볼 수가 없고, 그래서 바닥의 세로줄 무늬를 어둠으로만 인식하게 되고, 세로줄 무늬만 있는 방에서 사육된 고양이는 가로줄 무늬를 볼 수가 없기에 바닥의 가로줄 무늬를 어둠으로 인식한 결과라는 것이 이 실험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블랙모어 교수의 실험에 참가한 고양이들의 뇌 활동을 잘 살펴보면, 이 고양이들은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든 각도의 선을 다 보았다. 그런데 세로줄 무늬밖에 보이지 않는 환경에서 다섯 달을 보내자, 가로줄 무늬에 반응하는 뇌세포는 거의 사라지고 세로줄 무늬에 반응하는 뇌세포는 늘어났다. 이것은 근육의 경우와 비슷한데, 사용하지 않는 근세포 수는 줄어들고, 그 근육은 가늘고 약해진다. 반면에 자주 사용하는 근육은 근세포 수가 늘어나고, 두껍고 강해진다. 뇌세포도 이와 마찬가지로, 가로 줄에 반응하는 뇌세포는 몇 개월이나 사용하지 않아 그 수가 줄어들었으므로, 가로 줄 정보가 들어와도 그것을 거의 느낄 수 없게 된다.”

세로줄 무늬만 있는 방에서 양육된 고양이에게는 가로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가로줄은 정상적인 시지각을 갖춘 인간에게는 틀림없이 존재한다. 고양이게는 ‘없는 것’이 인간에게는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마치 ‘단맛’이 인간에게는 있지만 고양이에겐 없는 것과 같은 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