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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하승창|상상력이 권력을 바꾼다

자발적 결사체의 증가

 

6) 자발적 결사체의 증가

 

1990년대에 성장했던 단체들이 침체기에 들어섰다고 해서 시민운동이 약화되거나 위기에 빠지진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시민운동이 보여 준 활동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상대적으로 조금만 활동이 위축돼 보여도 요즘 시민단체들은 뭐하지?”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간혹 시민운동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가면 꼭 물어 보는 질문이 있었다. ‘시민단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열이면 열 그렇다고 답했고,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었다. ‘그 단체들 이름을 기억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대체로 4~5개 이상의 단체명을 대지 못했다. 딱 한 번 10개 이상을 기억한 분이 있었는데, 경찰서 정보과에서 근무하는 분이었다. 대답이 집중된 4~5개의 단체는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연합, 녹색연합, YMCA였다.

  보통 사람들의 머릿속에 시민운동은 이 단체들이 대표인 셈이다. 사람들은 이 단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면 시민운동이 잘 된다고 여겼고, 반대로 이 단체들의 활동이 주춤하면 시민운동이 침체 상태에 있다고 느꼈다. 이 단체들의 왕성한 활동이 1990년대에 시민운동의 토대를 넓혔다면, 2000년대에는 그 위에서 새로운 운동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시민운동의 대중적 토대가 급속히 확장됐다. 특히 인터넷을 매개로 한 시민의 자발적 참여는 단지 일회적 참여에 그치지 않고 경험이 쌓여 조직으로까지 발전했다. 루쉬마이어(Rueschemeyer)는 시민사회에서 자발적 결사체가 늘어나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했다.

 

지역 내에서 시민단체들이 본격적으로 생겨난 시기는 1994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부터이다. 시민단체의 성장은 2000년 이후에도 계속됐는데, 1990년대의 지역 조직 확장과는 성격이 다르다. 199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지역 조직들은 대개 주요 시민단체의 지부였고, 지역 내 명망 있는 인사들이 중심이 됐다. 필자가 경실련 조직국장으로 일하고 있던 1990년대 중반에 급속히 늘어난 경실련 지역 조직은 2년 사이에 20개에서 40여 개로 증가했다. 경실련 지역 조직을 만들었던 주요 구성원들은 대개 1980년대에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운동을 하던 정치 혹은 종교 세력이었다. 서울 지역에 만들어졌던 열린사회시민연합의 경우 1980년대에 서울에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에 참여했던 그룹이었다.

  2000년대 들어 기존의 시민단체들이 지역 조직과 맺는 관계가 변했다. 경실련에서는 지역 조직들이 중앙 조직과 거리를 두며 독립성을 강화했는데, 2003년에는 지역 지부들이 경실련 내에서 별도의 의사 결정 체계를 갖는 지역경실련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참여연대에서는 3개의 지부 조직이 생긴 뒤 네트워크 형태로 협력하는 지역 협의체를 만들었다. 필자가 근무했던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창립 초부터 아예 지부 조직을 두지 않기로 결정하고 사안별로 네트워크를 꾸려 지역의 조직들과 협력했다. 이런 변화에는 지역 조직이 지역 주민의 자발적 모임으로 변화해 나가는 현상이 반영됐다.

  2000년 이후에 지역 조직들이 두드러지게 성장하게 된 경로에 대해서 필자의 논문을 인용한다.

 

(중략) 세 가지 발전경로를 보이는 데, 하나는 90년대부터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공동체 활동을 통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지역사회의 변화를 추구해 온 경우이다. 마포 성미산 주민 조직이 대표적 경우인데, 90년대부터 성미산 주변에 모여 살던 주민들이 공동육아운동을 시작으로 생활협동조합의 결성 등 각종 공동체 조직을 만들어 가면서 지역사회의 공동체성을 복원해 나가다, 자신들의 문화적 공간인 성미산을 없애게 되는 서울시의 배수지건설 사업에 대항해 싸우고, 이 싸움에서 이기면서 마포주민연대라는 시민단체를 만들게 되고 대안학교, 공동체라디오 등 자신들 스스로의 교육기관과 미디어까지 갖추어 나가는 말그대로 스스로 자치를 확대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다. (유사한 모임들이) 중랑천살리기운동, 도림천사람들 등 익명성이 강한 조직들이 서울지역에서도 늘어나고 있다.

  또 하나의 경로는 90년대 시민단체들의 지부조직을 구성하는 주요한 인적 자원이 8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나오는 것처럼, 80년대와 90년대의 민주화운동의 세례를 받은 세력들이 중앙조직들의 지부조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조직을 구성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엔 조직의 구성방식과 창립과정은 90년대 시민단체들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주민조직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열린사회시민연합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고 광진주민연대, 관악주민연대, 평화와 자치로 가는 인천연대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인천연대의 경우 인천 지역별로 모임을 결성할 수 있을 정도로 회원들의 참여가 활발하며 회비만으로도 조직의 운영이 가능할 정도로 토대가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다.

  세 번째 경로는 2000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경우이다. 2002년 대선 당시의 노사모의 경험과 2004년 탄핵무효운동과 총선 당시 개혁당의 경험이 작용한 경우이다. 노사모나 개혁당의 경우 자발적 참여자들을 지역별 조직으로 모일 수 있게 하여 오프라인에서의 자원활동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 지역조직에서의 만났던 사람들은 대다수가 노사모의 중심적인 회원이거나 열린 우리당의 당원으로 정치적 활동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노사모와 개혁당을 통해 정치개혁을 이루어보고자 한 시민들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대개 개혁당이 민주당과 합당하여 열린 우리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부는 정당참여운동을 통해 열린 우리당의 당원이 되기도 했지만 다수는 이에 합류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대개 인터넷의 카페나 게시판 등의 모임을 통해 네트웍을 유지하다가 2004년 탄핵무효운동에도 결합하게 된다.

  탄핵무효운동에의 결합과 참여를 통해 2004년 총선에서 기존의 지역과 보스에 기초한 정치지형을 바꾸어 정책대결이 가능한 정치지형, 민주노동당의 의회 진출로 상징되는 이전과는 다른 정치지형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정치지형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지만 여전히 의회는 구태를 벗지 못하고 실제 자신들을 둘러 싼 삶의 모습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변화가 사회개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되면서 지역적 모임을 만드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2005년에 결성된 은평주민연대 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여기에는 당연히 명망성 있는 인사란 없으며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동네일을 통해 사회변화를 추구해 보고자 하는 조직들이 결성되고 있는 것이다.

- 하승창, 90년대 중앙집중형 시민운동의 한계와 변화에 관한 연구, 2006.

 

지역 운동만 변화하지는 않았다. 자발적 결사체들의 성장은 인터넷을 매개로 한 단체들의 증가에서도 확인된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나 피자매연대 등 인터넷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단체들이 늘어났다. 이런 변화는 2004년 탄핵무효운동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카페와 블로그에서 2000여 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를 순식간에 조직해 낼 만큼의 역량 강화로 이어졌다. 필자가 시민운동의 대중적 지형이 바뀌었다고 확신했던 것은 이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필자가 있던 탄핵무효운동 집행부의 역할은 과거와 전혀 달랐다. 행사에 드는 비용도 참여자들이 마련했고, 행사장 곳곳에서 벌어진 다양한 시위 문화도 집행부의 지휘와 별개로 만들어졌다.

  1999년에 생긴 안티 닉스 사이트는 인터넷상에서 최초로 집회와 시위를 조직해 소비자 운동을 일으키며 인터넷이 시민운동의 중요한 공간이자 무기임을 증명해 보였다. 2000년의 총선시민연대는 인터넷이 중요한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2002년에 전국을 흔든 다양한 사건들은 통해 인터넷이 활동의 공간이며 조직의 수단이자 운동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줬다. 여기에 더해 2004년 탄핵무효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제 전통적인 조직구조상의 중앙은 없으며 다양한 중심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맺으며 소통하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필자는 이 무렵부터 시민운동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터넷을 매개로 한 시민운동의 대중적 토대는 1990년대에 비해 훨씬 넓고 깊게 확장돼 가고, 참여자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연결하며 성장해 가고 있었지만, 필자가 속한 1990년대의 단체는 여전히 성명서와 보도 자료로 채워진 홈페이지에 매달려 있었다.

  〈시민의 신문2006년에 조서한 결과를 보면 당시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시민의 신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5년 현재 조사된 사회단체 23517개 중에서 시민단체가 5,556개 인데 이들 중 2000년 이후에 창립된 단체가 전체의 40.35%로 나타났다. 2000년 이후 창립된 단체들 중 온라인단체와 교육학술단체가 전체의 46.80%이며, 그 중 온라인 단체의 증가가 뚜렷하게 확인되는 데, 온라인 단체의 97.12%2000년 이후에 설립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4년 이후에 35.91%가 설립된 것으로 나타나 2002년 이후의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조사에 비해 수도권 집중율이 49.88%에서 54.7%로 높아진 것으로 나타나는 데, 필자는 수도권내 지역조직들의 증가가 적지 않게 차지하는 것으로 추론한다. 또 조사된 단체들 중 환경단체는 7개 광역시와 경기도를 제외한 지역에 55%가 소재한 것으로 조사되어 지역조직들이 생태적 패러다임에 기초하는 단체들이 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하승창, 90년대 중앙집중형 시민운동의 한계와 변화에 관한 연구, 2006.

 

시민운동은 이제 바뀌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