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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하승창|상상력이 권력을 바꾼다

다양한 가치에 기반을 둔 모임들의 성장

 

 

3) 다양한 가치에 기반을 둔 모임들의 성장

 

1990년대에 성장한 시민단체는 어떠한 가치와 사회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을까? 1992년에 경실련에서 일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이곳에 대해 그리 잘 알지 못했다. 생각을 해 보겠다고 답한 뒤 바로 서점으로 가서 경실련에서 출판한 책 몇 권을 사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 훗날 경실련 정책위원장이 된 김태동 교수가 쓴 땅, 투기의 대상인가 삶의 터전인가라는 책이 있었다. 1980년대에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거치면서 토지 문제와 관련된 강령 수준의 주장들, 국유화나 공유화 등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이 많았던 참에 이 책을 읽으며 그 지향과 가치를 비교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토지 문제가 실제 사람들의 삶 속에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무렵 내가 1980년대에 가졌던 지향과 가치가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대안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이 정리돼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김태동 교수의 책에서 아주 구체적인 정책 대안들을 제안하는 것을 보고 경실련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토지 문제에 대해 사회적 공정성과 형평성이라는 가치가 중심이 된 토지 접근법과 그에 기초한 대안들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경실련이라는 단체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일단 가서 경험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실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실련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의 사회운동은 바로 그 공정성과 형평성, 투명성이라는 가치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고, 당대의 우리 사회 역시 여기에 상당히 공감했다. 당시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주요 활동 과제들을 나눠 보면 아래 표와 같다.

 

* 경실련, 참여연대의 주요 활동 과제에 대한 가치별 분류

공정성

투명성

형평성

선거 제도 개혁

재벌의 소유 구조 개선

공정거래법 개정

금융실명제 실시

 

정치자금법 개정

금융실명제 강화

금융 개혁

통합부패방지법 제정

 

경쟁 제한적 정부 규제 철폐

상속증여세 개선

사회복지서비스 개선

빈곤층 보호와 주거복지 개선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 해소

부동산 관련 세제 개혁

의료 보험 제도 개선

출처: 하승창, 90년대 중앙집중형 시민운동의 한계와 변화에 관한 연구, 2006

 

  논란이 있긴 하지만,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의 정책들은 1990년대의 사회운동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제도적으로 일정한 답을 줬다. 김영삼 정부 때 금융실명제가 실시됐고, 토지공개념에 관한 법률들이 시행됐고, 부패방지법이 만들어졌고, 각종 복지 제도가 늘어났으며, 인권위원회가 설치되는 등 적지 않은 변화들이 이루어졌다. 시민단체의 주장이 제도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며 시민단체의 사회적 영향력에 주목한 결과였다.

 

2000년대 들어 이 과제들은 사회에서 이전만큼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사회가 1990년대에 시민단체들이 주장했던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1990년대부터 함께 제기됐지만, 좀 더 가치지향적인 의제들이 사회 문제나 갈등의 근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새만금 간척을 반대하는 싸움이 대표적이다. (환경단체들의 평가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새만금 반대 투쟁이 우리 사회에서 생태라는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높이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삼보일배는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해 온 공청회나 토론회, 기자회견식 집회나 시위, 캠페인과는 전혀 다른 운동 방식이었다. 삼보일배는 종교 행위에 담긴 진정성을 드러냈으며 고행이라는 자기성찰적 방식으로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과거와 전혀 달랐다. 이는 앞으로 사회 발전 전략을 세울 때 공동체의 주요한 가치로서 생태를 근본에 둬야 한다는 문제를 던졌다는 점에서 한국 환경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의 진행을 맡고 있어서 삼보일배 행렬에 좀처럼 함께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행렬이 평택에 도착했을 때 간신히 하루를 함께 한 적이 있다. 묵언으로 고행을 이어 가던 신부님과 스님을 만나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이대로라면 죄를 짓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비슷한 시기에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한 지율스님의 단식도 생태적 가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강의석 군이 학원에서 종교의 자유를 요구한 싸움은 집단보다 개인이라는 가치를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평택에서 벌어진 미군 부대 이전 반대 투쟁은 미군에 대한 이전까지의 저항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1980년대에는 반제 투쟁이라는 기치 아래 집회가 조직됐지만, 평택 문제는 부대 이전으로 인한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와 더불어 평화라는 가치가 반영된 싸움이었다. 이전까지 잘 알지 못했던 소규모의 평화 운동 단체나 모임들이 평택에 모여 부대 이전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오태양 씨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양심적 병역 거부 역시 새롭게 부각된 사회적 의제였다. 오태양 씨의 양심적 병역 거부는 인권평화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양심적 병역 거부를 택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종교적 이유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자신의 종교적 교리를 지키기 위해 병역을 거부하는데, 오태양 씨의 병역 거부가 있기 전까지는 양심적 병역 거부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사회적 의제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198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다 수감되었을 때 교도소에서 만난 이들 중에 병역 거부 때문에 실형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너무 착하고 성실해서 도저히 범죄를 저질렀으리라 생각되지 않아 교도관에게 물어 보니 여호와의 증인의 신자로 병역을 거부해서 실형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저 입대를 기피하는 사람들로 받아들여져서 그들이 무엇 때문에 군대를 거부하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은 개인적으로 인권 감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준 계기인 동시에, 앞서 말한 새로운 의제들과 더불어 2000년대 우리 사회 인식의 변화를 보여 주는 의미 있는 사례이다. 기후 변화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생태도 보편적 가치가 되어 가고 있고, 여전히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해 대체 복무 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이 시민단체에 의해 제기되고 발전하기보다는 종교인이나 소규모 모임, 개인에 의해 제기되고 사회적 의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운동이 성장하기 시작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위의 의제와 운동은 1990년대에 시민단체들이 거둔 성장 위에서 발전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시민단체들이 근대적 과제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운동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시민운동과 시민단체 담론에 변화를 위한 조직적 움직임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새로운 운동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사회 운동의 분화를 가져 왔다. 1990년대에도 비슷한 의제들은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 과거와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새로운 요구가 제기되는 현상은 사회가 변하면서 개인의 일상과 이해관계, 관심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1990년대의 시민단체들은 이런 변화에 대한 통찰이 늦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 [2월 18일 연재] 새롭게 성장하는 운동들: 4) 새로운 성격의 단체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