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_작가共방/하승창|상상력이 권력을 바꾼다

새롭게 성장하는 운동들




새롭게 성장하는 운동들  

앞서 소개한 그래프(1990년대 시민운동의 정점, 2000년 총선연)를 통해 이전까지 주요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계속 하락하던 시민운동, 시민단체라는 말이 2004년부터 다시 빈번하게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2004년 무렵에는 언론이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주요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도할 때 굳이 시민단체라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설명을 생략해도 될 정도로 잘 알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1990년대 후반 경실련에 근무할 때 서울 시민을 상대로 경실련의 인지도 조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10퍼센트 정도가 경실련을 안다고 답했다. 2000년 총선연대 활동 이후에 한 매체에서 시민단체들의 인지도 조사를 했는데, 경실련과 참여연대, 녹색연합의 인지도가 더 높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굳이 시민단체라는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시민단체나 시민운동이라는 단어가 다시 많이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런 설명을 붙여야 하는 단체들의 활동이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라이트 계열의 보수 시민단체들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는데, 이들의 등장은 시민단체 활성화 통계에 기여했다. 지금은 특별한 활동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신지호 전 한나라당 의원이 관여했던 뉴라이트재단, 자유주의연대 같은 단체나 김진홍 목사 등이 만든 뉴라이트연합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적 목표가 강했던 이 단체들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목표를 이뤘는지 점차 보이지 않게 됐고 지금은 어버이연합이나 변희재의 미디어와치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 단체들은 여전히 정치적 지향과 목표가 뚜렷한 편인데, 특히 어버이연합은 폭력적 활동으로 극우 성향의 정치 이념을 지향하는 정치적 범외곽단체에 가까운 모습이다.

  보수적인 시민단체들의 활동도 이 무렵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해 2013년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거나 독재 정권에 대한 국민의 저항을 다르게 보는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 같은 정부조직의 지원을 받아 급격히 성장한 것 아닌가 추측되는 이 단체들은 박근혜 정부에 와서도 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말하려고 하는 새로운 운동들의 성장은 전혀 다른 지점에 위치해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성장하기 시작한 사회운동들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주민 운동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방 자치 제도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지역 주민들은 유명 단체에 기대지 않고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기반을 둔 조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또한, 2002년 촛불 시위와 2004년 탄핵 반대 시위 때부터 인터넷 동호회, 카페 모임의 사회적 발언과 활동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2000년 이후 급격히 확산된 인터넷을 매개로 해서 모임들이 형성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기부터 1990년대의 시민운동이 추구했던 것과는 다른 가치들을 더 중시하는 시민운동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성장한 시민운동의 흐름이 조금씩 위축되는 가운데 새로운 운동의 씨앗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1) 지역운동의 성장


앞서 소개한 2004년의 오마이뉴스 기고 글(그러나 변하지 않은 1990년대의 시민운동)은 시민운동이 변화의 물결 앞에 서 있던 상황에서 시민단체로부터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지역 단체들로부터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내부의 관계망을 통해 소개를 받아서 연락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하나만을 보고 연락해 온 사람들이었다. 이제 막 단체를 만들기 시작한 준비 모임도 있었고,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단체의 활동 방향을 놓고 논의 중인 경우도 있었다. 10여 명에서 많게는 50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이런 모임들은 이전의 시민단체 구성 경로, 구성원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지금도 필자는 간혹 변호사로 불린다. 변호사가 아니라고 하면 교수냐고 물어본다. 1990년대에 시민단체를 이끌었던 대표자들 중에 변호사, 교수, 목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체의 대표나 사무총장은 대부분이 교수나 변호사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생긴 모임들에 가 보면 교수나 변호사 같은 이른바 명망가가 없었다. 미술학원 원장, 신문보급소장, 작은 출판사 사장, 교사, 대학생/대학원생, 직장인, 주부 들로 이루어진 모임에서 대표 역시 이들 중 한 명이 맡았다. 이 지역에 시민단체가 없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지역 경실련, 지역 YMCA 등 서울 주요 단체들의 지부나 회원 모임이 존재하고 있었다.

  구성원들이 단체에 참여하는 방식은 대개 회비를 내거나 1년에 몇 차례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구성원들은 왠지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시민단체라고 하면 좀 어려워 보이고, 내가 더 똑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다고 했다. 당시 이런 모임들은 자기 공간을 따로 갖고 있지 못하니까 구성원 중 누군가의 집에서 모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자 먹을거리를 가지고 와서 방에 둘러 앉아 사는 이야기, 마을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사례가 마포의 성미산 마을이다. 서울시 여러 동네에는 공동체를 복원하여 마을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인 마을넷이 있다. 마을넷에는 서울에 있는 거의 동네 모임들이 참여하고 있다.

  필자는 성미산 마을 주민들이 배수지 문제를 가지고 이명박 서울 시장과 싸웠을 때 함께하는 시민행동에 참여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가 생각나 2005년에 성미산을 다시 찾았었다. 주민 운동, 지역 운동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마을의 공동체 운동이 어디까지 성장해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공동 육아 운동으로 시작된 마을의 관계는 생활협동조합(생협)과 반찬가게 동네부엌,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작은나무라는 마을카페, 지금은 문을 닫은 카센터에 당시에 막 문을 연 마을방송국 마포FM으로 발전하기까지 마을 사람들이 이루어 낸 성취가 놀라웠다. 몇 년 뒤 나루라는 공간이 생기면서 필자가 일하던 곳도 여기에 자리를 잡았고, 마을극장까지 생겨났으니 그들이 연결해 낸 마을의 관계망은 서울의 여느 마을보다 넓고 깊어졌다.

  ‘지역이 중앙의 이름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기 시작한 셈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1차로 폭발했던 지역 조직들이 중앙 단체의 지부 형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면, 그 후의 변화는 불모지를 개척하고 열어놓은 공간에 주민 스스로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구체적인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말이다.


2006시민의 신문이 발행한 시민단체총람에 따르면 지역 단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현재 조사된 사회단체 23,517개 중에서 시민단체가 5,556개인데, 이들 중 2000년 이후에 생긴 단체가 전체의 40.35%이고, 환경단체의 경우 광역시와 경기도를 제외한 지역에 55%가 소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조직들이 대개 생태적 패러다임에 기초한 환경단체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곳에서 시행한 2000년 조사에 비해 2005년 조사에서는 수도권 집중률이 높아졌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마을에 여러 모임들이 생겨난 것을 감안하면 중앙집중형 조직보다 지역 조직들이 많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성미산 마을을 보며 ‘1990년대에도 마을 만들기 운동은 있었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1990년대에도 있었다. 대구 YMCA의 담장 허물기 운동은 많은 지역에서 우수 사례로 주목받았다.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일본의 마을 만들기 운동을 벤치마킹해서 자기 지역에 실현하려는 시도들을 했고, 실제로 좋은 결과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1990년대의 마을 만들기 운동은 시민단체들에 의해 프로젝트형으로 이루어진 데 반해, 성미산 마을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품은 가치와 지향에 맞추어 삶을 꾸리고자 하는 가운데 성장했다. 공동 육아 운동으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대안 학교에 보낼지 고민하고, 아이들의 먹거리를 위해 생협을 고민하고, 모임 공간을 만들기 위해 도서관이나 마을 카페를 만들지 고민하는 것 등이 누군가 의도하고 미리 기획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 참여하는 마을사람들의 필요와 관계가 넓어지면서 이루어졌다. 사라졌다고 보았던 도시의 공동체가 그렇게 조금씩 복원되기 시작한 셈이다.

  지역 운동이 마을공동체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면서 지금까지의 지역 사회 운동과 다른 방법과 구조를 갖추게 되었고,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이전보다 운동의 뿌리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과천’, ‘홍성’, ‘성미산등 마을 공동체들이 존재하는 지역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이를 확장하는 데 기여한 곳 중 하나가 2005년에 발족한 희망제작소이다. 희망제작소는 풀뿌리 운동의 각종 사례와 경험을 정리했고, 이를 토대로 지방 자치 단체와 마을을 변화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제안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목민관 학교 등을 통해 지방 자치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어느새 지역의 풀뿌리 운동은 2000년대 사회운동의 주요 자리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1월 21일 연재] 새롭게 성장하는 운동들: 2) 인터넷을 매개로 한 운동의 자발적 모임들의 성장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