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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하승창|상상력이 권력을 바꾼다

새로운 성격의 단체들이 생겨나다




4) 새로운 성격의 단체들이 생겨나다

 

2000년대 초반에 나타난 새로운 성격의 단체들은 창립 과정과 구성 방식, 지향하는 가치 등에서 1990년대의 단체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필자가 창립 과정에 참여한 함께하는 시민행동도 당시에는 낯설던 정보 인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개인 정보 보호 운동을 벌였고, 시민의 주체성을 강조하면서 납세자 운동의 일환으로 밑 빠진 독상이라는 예산 감시 운동을 진행했다. ‘밑 빠진 독상은 지방 자치 단체와 중앙 정부의 예산 낭비 사례를 감시하여 상을 주는 방식으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프로그램인데, 시민운동의 모범 사례로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수록됐다. 지금은 보편적인 사회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를 던지기도 했다. 이런 의제들은 공정성, 투명성 보다 인권이나 생태 등의 가치에 기반을 둔다.

  창립 과정과 조직 구성도 달라졌다. 1990년대에 만들어진 단체들은 대개 유명인을 리더로 두고, 이들이 조직 내 주요 기구의 책임을 맡아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형태였다. 반면에 2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단체들은 자발적 참여와 동의에 기초한 시민들의 모임이라는 성격이 도드라졌다. 이 모임들은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의 대규모 응원전, 2002년 대선 때의 노사모, 2004년의 탄핵 무효 운동과 개혁당 등 다양한 직접 참여 경험을 배경으로 가진다. 노사모나 개혁당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지역 모임과 네트워크를 지역 주민 운동 모임으로 발전시킨 경우도 있었다.

  “20051224일 현재, 포털 사이트 다음(daum.net)에 등록된 카페 중에서 NGO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249, 네이버(naver.com)의 경우 NGO에 관련된 블로그를 검색할 경우 14,637건의 결과를 볼 수있었다(하승창, 90년대 중앙집중형 시민운동의 한계와 변화에 관한 연구, 2006). 당시 대부분의 시민 단체들은 홈페이지만 갖고 있는 정도였고 카페나 블로그가 2000년 이후에 보편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포털에서 검색된 모임 대부분이 시민들의 자발적 의지에 따라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탈근대적 이슈/의제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 이동권, 양심적 병역 거부, 동성애, 영 페미니스트 운동, 전쟁 없는 세상 등의 평화 운동 단체들이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부분의 단체들은, 당시 500여 개의 시민 단체들이 가입한 시민사회 단체 연대회의에 가입하지 않고 또 다른 생태계를 만들었다. 이들은 인권 단체 연석회의, 평화 활동가 모임 등 같은 가치를 가진 그룹들을 모아 별도의 연대 모임을 만들었다.

  기존 시민 단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조직 구성 방식은 비슷하되 가치 지향을 좀 더 분명히 하는 단체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참여연대에서 국제 민주 연대와 생명과학센터가 독립했고, 환경 운동 연합에서 에너지 대안 센터가 분리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재단이나 아름다운 가게는 참여연대의 박원순 변호사가 사무처장 임기를 마치고 나와 새롭게 운동을 시작하며 만들어졌다. 각각의 경우마다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2000년대 들어 형성되기 시작한 새로운 성격의 운동이 성장하고 분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 [3월 4일 연재] 새롭게 성장하는 운동들: 5) 개인이 이끄는 운동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