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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책

떠나는 이유

 


 

 

여행을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여행 에세이는 잘 보게 되지 않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아름다운 경관, 맛집, 사람들, 이야기의 유혹을 책으로만 보고 접어두기엔 들썩이는 엉덩이를 버텨내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죽도록 고생하고 심지어 죽다 살아나는 여행자의 험난한 여정도 부럽기만 했다. 그에겐 지난 고행을 추억할 수 있는 일상이 있으므로.

대부분의 우리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회사에도 가야 하고, 돈도 없고, 준비도 안 됐고, 체력도 부실하고......

이러저러한 용기 부족과 결정 장애와 작은 마음이 발목을 붙잡는다.

대부분의 여행이 결심에서 구상, 구상에서 계획, 계획에서 실행으로 가기 전에 소멸해 버리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이것저것 재지 않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겁 없이 떠난 용자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배낭을 메고 비행기를 타기까지의 사연이 인간극장급인 30세 두 남녀의 이야기다.

 

30세 아들과 60세 엄마가 손잡고 유랑한 무려 300일간의 세계 여행기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소원하던 덕업일치의 코앞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오타쿠 여성의 세계 여행기

No border

 

 

 

 

 

두 책 모두 카피가 심상치 않다.

여행의 동기 역시 평범치 않아 보인다.

이들은 각각 어떤 사연을 갖고 길에 올랐으며, 길 위에서 어떤 일들을 마주했을까.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 

흔히 생각하기로 모녀의 여행은 그림이 그려지는데, 모자의 여행은 감이 오지 않았다.

30세의 성인 남자가 환갑을 맞은 엄마와 단둘이, 것도 세계를, 것도 열 달 동안이나 여행한다니.

절친과 절교하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는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누군가와 낯선 곳에서 온종일 함께한다는 건 위험 부담이 큰 일인데, 아무리 엄마여도 괜찮을까 싶었다. 오히려 가깝기에 더 어렵고 편하기에 더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지 않을까.

 

나도 처음에는 꿈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음먹으니까 떠나게 되더라. 사실 친구나 애인과 떠나는 것보다 더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어차피 피로 엮인 사이, 이판저판 싸우다 인연 끝낼 일 없다고 생각했다.”

-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저자 태원준 인터뷰 중에서

 

저자는 짧은 간격으로 남편과 어머니를 잃은 엄마를 위해 여행을 떠난다. 환갑잔치를 해드리려 모은 돈으로, 남을 위한 잔치 대신 엄마 한 사람에게 세상을 선물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내가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었던 이유. 거창할 필요가 있나? 그저 엄마가 노는모습을 보고 싶었다. 좀 더 정중히 표현하자면 엄마가 아무런 걱정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 (중략)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당신에게도 소망하는 내일과 기대하는 미래가 있었을 텐데, 엄마가 된 이후로는 자신을 내려놓은 채 온전히 누나와 나만을 위해 살았다는 사실을.

고마운 마음 한편에 미안한 마음이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오늘을 살아내는 데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던 엄마, 진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중에서

 

이 여행을 혹자는 엄마 헌정 여행, 효도 여행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오해다. 책을 읽어 보면 느껴지듯, 이 여행은 슬프고 먹먹하고 애잔한 가족 휴먼 다큐라기보다는 놀 줄 아는 반전 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부추기는 아들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놀이 그 자체다.

 

 

 

 

 

No border 

또 한 권의 여행 에세이는 월세 보증금을 털어 무작정 비행기에 오른 한 여성의 이야기다.

(곁에서 몇 년 간 지켜본 바로도) 저자는 뼛속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다.

그래서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13년간 오직 애니메이션을 모으고 보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며 살아왔다. 그러다 마침내 취미를 업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는 덕업일치를 이뤄낸다. 일본의 애니송 유명 그룹 JAM Project가 소속된 연예 기획사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감격스러운 순간도 잠시, 동일본대지진이 터지고 겁에 질린 저자는 허겁지겁 한국으로 돌아오고 만다. 떠나온 자신을 자책하며 절망하고 괴로워하다 전재산인 월세 보증금을 털어 도망치듯 떠난 세계 여행그 여행길에서 또래의 이삼십 대 젊은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마주한다.

편견과 맞서 싸우며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태국의 트랜스젠더, 1인 여행사를 차린 지 3일 된 베트남 시골 소녀, 불안한 미래로 인해 꿈을 젊어야 하는 중국의 음대생, 규격화된 삶을 거부한 일본인 국제 귀농자, 뼈아픈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밤낮 없이 일하는 인도의 호텔 직원, 아랍의 봄을 통해 희망을 찾으려는 이집트 소년 등. 그리고 저자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마침내 마음속 Border line을 넘는다.

 

 

저마다 떠나는 이유는 다르다.

그리고 떠난 길 위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도 다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돌아온 나는 이미 이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두 권의 여행기를 보면서, 우려했던 대로 내면의 역마살이 움찔거렸지만.....!

일상에 치인 마음만이라도 잠시나마 책 속에 던져 두고 길따라 이리저리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왜 항상 여행을 꿈꿀까.......

 

 

 

 

 

   

여행을 한다고 바로 무언가 남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여행하던 날들을 되돌아보면

낯선 거리를 헤매고 다니던 시간은 평생 웃음 지을 수 있는 기억이 된다.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사치가 아니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다.

돌아와 일상 속에서 더 잘 살기 위해서다.

 

- 박준,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