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엄마가 윤구병이냐?”
제가 처음 만든 그림책을 아들녀석에게 건네주었을 때, 아들은 신기하면서도 자랑하고 싶었는지 유치원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는데, 친구들의 첫마디가 이랬답니다.
“아니”
“그럼, 이담이야?”
“아니”
집에 돌아온 아들이 묻더군요. 엄마가 책을 만들었다고 했는데, 엄마가 한 일이 무엇이냐고.
글을 쓴 것도 아니요,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니, 아들에게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해 주기가 참으로 난감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런 아들을 데리고 《아빠의 봄날》이라는 그림책을 같이 만들었지요. 연예인 기질이 전혀 없는 아들은 책에 등장하는 어린아이의 모델이 되어주어야만 했답니다. 책이 출간된 후, 그것도 2년이나 지나 펼치더니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어? 아빠가 죽는 이야기이잖아. 엄마, 전두환이 이렇게 나쁜 사람이야.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전씨 일가들의 뉴스를 보면서, 아이는 계속 질문을 합니다. 5.18 그 슬프고도 가슴 아픈 역사를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아이는 책을 보면서 어렴풋하게나마 나름의 역사를 느끼고 그리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역사와 마주하는 아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을까요? 최근 한국사가 대학수학능력 시험의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습니다. 출판사들도 벌써부터 ‘수능 대비 한국사’ 타이틀을 내걸며 홍보하기에 바쁩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역사책의 그림을.
초등학생 시절, 어렵고 복잡하게 공부해야 할 과목으로 역사를 처음 만난다면,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외울 거리만 잔뜩 쌓인 과목 이상을 벗어나기 어려울 텐데, 아이들이 참고 읽어야만 하는 역사책, 공부와 학습만 강요하는 역사책이 앞으로 더 쏟아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까지 합니다.
역사라면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아이들도 사극은 아주 재미있게 봅니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며 울고 웃으며 열광하기도 하지요.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역사는 가장 재미있는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직접 가서 만나볼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그 이야기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역사는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가 아닌, 우리가 이렇게 지금을 살아가는 것처럼 각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이니까요.
아이들에게도 먼저 역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살아갔던 삶의 이야기라고 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아이들이 머리 아프게 공부해야 하는 역사가 아닌, 사람을 읽고, 사람을 이해하면서 역사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옛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에 푹 빠져 읽으면서 아하! 그렇구나, 그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 역사는 꼭 이렇게 흘러야만 했을까? 하는 역사적 상상력을 아이들 스스로 키울 수 있는 책이면 더 좋겠구나 하고 생각하지요. 역사적 상상력은 오늘의 나와 세계를 이해하고 내일을 열어가는 데 밑거름이 될 테니까요.
스마트폰보다 재미있고, 영화보다 감동적인 역사책을 선보인다면, 아이들은 그 책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고, 역사를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힘찬 미래를 설계해 나갈 것임을 굳게 믿습니다.
-통(부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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