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과 이진경, 색다른 두 고수의 만남
오십 줄에 접어든 사내 하나가 배낭을 딸랑 메고 그리스 여행을 떠난다. 이유는 단 하나, 이십대부터 열렬히 사랑했던 작가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흔적을 좇고 싶어서. 스무살 불꽃도 아니고 나이 오십에 사랑을 좇아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다니…
따라서 이 여행기는 다른 여행기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예쁘고 멋진 그리스를 보러 가는 게 아니니까. 문명의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저자 박경철은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방대한 신화의 에피소드와 역사 읽기, 그리스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가는 박경철 선생의 길에는 늘 니코스 카잔차키스와의 대화가 빠지지 않는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정신을 뛰어나게 그려낸 작가였다. 따라서 그리스의 본질을 보고 싶은 저자는 카잔차키스의 여정을 따라나선 것일 게다. 아니, 너무나 사랑하는 카잔차키스의 조국이기에 꼭 탐색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행기에 나오는 그리스는 현대의 그리스이지만, 꼭 신화와 고대 그리스의 세계를 다녀온 듯 저자가 읽은 신화의 세계를 유감없이 펼쳐 보이고 있다. 이런 기행기는 한 번에 다 읽을 수 없다. 두고두고 음미하면서 카잔차키스와 박경철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는지를 섬세하게 더듬으면서 읽어줘야 한다.
이진경 선생님의 책을 출간하고, 재미난 일이 생겼다. 일전에 박경철 선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이진경 선생의 ‘철학의 모험’이란 책에 대해 상세한 서평을 쓴 적이 있어, 인사차 박경철 선생께 신간을 보내드렸는데, 반송이 되어 왔다. 하여 박경철 선생께 과감히 주소를 알려주십사 하는 메일을 보냈는데 며칠 뒤 박경철 선생이 주소를 알려주며 이진경 선생님을 한번 만나 뵙고 여러 가지 여쭙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그리하여, 두 분이 만나는 자리에 동석하게 되었다는 말씀.
박경철 선생은 활발한 대외활동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겸손한 어조로 말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두 분 다 오랫동안 고민한 질문들을 조심스럽게 주고받았다.
사실 박경철 선생은 주식투자 전문가로 유명했지만, 정작 그의 이름을 알았던 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이었다. 의사로서 담담하게 짠한 삶의 한자락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무척 기억에 남았다. 외과의사로서 삶과 죽음을 숱하게 봐온 그가 인간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여행에서 박경철 선생이 들여다본 건 그리스 사람들의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진경 선생도 80년대 사회과학 논쟁의 주역에서 90년대 ‘철학과 굴뚝청소부’라는 책으로 대학 신입생 시절 인식의 새로운 세계를 맛보게 했던 분이었다. 2000년 발행했던 ‘철학의 모험’이라는 책도 근현대 철학사의 주요 논점을 잘근잘근 씹어서 소화해낸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쓸 수 없는 그런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두 분 다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다져왔다는 점에서, 또 전공을 버리고 주류가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갔다는 점에서 이번 만남은 좀 뜻밖이지만 흥미로웠다. 박경철 샘은 후에 이진경 샘을 만나 좀 더 많은 질문을 할 것을 기약하였고, 이진경 샘도 흔쾌히 화답하였다. 2시간 정도의 만남이어서, 그 깊은 내공을 서로 다 펼쳐낼 수 있는 장은 아니었지만 만남 자체가 주는 신선한 시너지는 이후에도 더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
'H_만나고 싶은 사람들 > All about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화. 3인 3색 직장 오디세이-정 과장, 미스 김, 장그래 사원 (3) | 2013.05.06 |
---|---|
오늘 점심은 뭐 먹지?! (2) | 2013.04.30 |
그녀의 이중생활 (3) | 2013.04.24 |
아버지의 노래는 '섬마을 선생님' (0) | 2013.04.22 |
봄타령은 계속된다, 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2) | 2013.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