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 (강)권하는 사회
창의 경영, 창의 교육, 창의 과학, 창의 독서... 사회가 개인에게 이렇게 강박적으로 창의성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편집자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들에 비해 창조에 대한 갈망이 짙은 일인 것 같습니다. 크리에이티브가 존재의 이유인 작가들과 일하다 보면 당연한 결과지요. 텍스트의 최전선에서 아둥바둥하면서 작가들의 필력에 감탄과 더불어 시샘을 느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이게 작가라니. 나도 이 정도는 쓰겠다.’라며 빨간 펜으로 원고를 난도질 할 때도 있습니다. 어쨋든간에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미는 이야기를 담은 텍스트에 기여를 하는 건 분명한데,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독자의 입장에서 편집자의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치명적인 오탈자가 있지 않은 이상은요.) 이렇게 창조자의 그늘에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상 역설적으로 그 누구보다 창조에 대해 목마른 직업이 바로 편집자가 아닐까 합니다.
열다섯 명이 만드는 한 곡의 노래
편집자들 사이에서도 각기 역할이 다양하고, 출판계 상꼬맹이로서 아직 갈 길이 한참 멀긴 하지만 건방지게도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올해 초 트위터에서 재밌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락 페스티벌에서 눈여겨봤던 밴드가 ‘집단작곡’이라는 프로젝트를 한다는 거였어요. 아무 제한 없이 선착순으로 지원자들을 모아서 한 달간 노래 한곡을 완성한다는 내용이었지요. 모인 사람들을 보니 저와 같은 직장인부터 대학생, 고등학생까지 직업도 나이도, 음악적 지식 차이도 무척 다양했습니다. 여기에 밴드 고고보이스 멤버들까지 모여 15명이라는 적지 않은 인원이 한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완전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누구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이내 방향을 정하고 노래의 콘셉트를 구체화하기 시작했지요. 꿈과 사랑에 치이는 거친 현실을 쿨한 척 넘겨버리는, 그야말로 우리의 이야기를 해 보자. 콘셉트에 맞춰 멜로디를 짜고, 함께 가사를 쓰고, 편곡을 해서 한 곡을 만들기까지 예상보다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15명의 노래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3년 3월 12일, 드디어 고고보이스의 집단작곡 프로젝트 결과물 <척한사람>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저도 이제 저작권 있는 편집자랍니다
단어와 문장의 나열, 문단의 집합에 불과했던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져 나온다고 편집자의 일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생의 의지를 잠깐 상실하게 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오지요. 바로 보.도.자.료! 어떻게 하면 이 좋은 책에 독자들이 감응해서 구매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출판부 기자들은 어떤 포인트를 보고 신간 소개 기사를 써줄까. 피를 말리는 머리 굴리기가 시작되지요. 이 고통은 책만이 아니라 음악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평소 하는 일의 연장선상이라는 간단명료한 이유로 <척한사람>의 보도자료를 쓰게 되었습니다. 직장인에게 2초와 같은 주말을 투자해서 간단한 (그렇지만 피와 땀이 스며 있는) 보도자료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완성된 글은 네이버 뮤직(http://music.naver.com/album/index.nhn?albumId=371829)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집단작곡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 서점의 책 소개 페이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북 트레일러와 마찬가지로 프로모션 영상 편집까지 어쩌다 보니 맡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여기서도 편집은 실컷 했네요.) 하단에 있는 영상으로, 글만으로는 조금 심심한 집단작곡의 감동을 음악과 함께 아이맥스 급으로 느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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