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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책

열번째 이야기- 찬밥 Day





하필이면 찬밥 Day

 

 


지난 토요일 성묘 다녀오셨다는 지인의 말씀을 듣다가 의아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성묘는 추석이나 설날 다녀오는 거 아닌가?’


평소 같으면 총알같이 질문을 뱉었을 상황, 모처럼 딱 1초 기다렸습니다. 무식의 탄로를 막은 인내였죠.


지인께서는 제 표정을 읽으셨는지 친절하게 성묘 다녀온 사연을 풀어주시더군요.

성묘야 아무 때나 갈 수 있지만 주로 명절에 다녀온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

그런데 저는 지난 토요일이 한식이었다는 건 모르고 지나쳤습니다.

게다가 한식도 설, 추석, 단오와 함께 4대 명절 중 하나였다는 건 아예 모르고 있었습니다.

입수한 최신 정보를 요약하자면 설, 추석, 한식은 원래 성묘를 다녀오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스스로의 무지를 탓하면서도, 내가 왜 한식에 대해 알수 없었던 건지 이유를 찾고 싶어졌습니다. 제 무지도 무지이지만 '한식'이라는 이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한식은 寒食이라 쓰고 찬밥이라 읽히지요. 하필 좋은날 이름이 찬밥이 뭐랍니까?


인간관계에서 찬밥 되기 싫습니다. 찬밥 먹기도 싫답니다. 그러니까 한식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접했지만, 제 무의식은 의도적으로 그 정보의 입력을 거부한 것뿐이라고 해석하고 싶어요. ^^!

 

여튼 궁금해졌습니다. 

왜 하필 봄이 오는 이 대목에서, 게다가 명절 중 하나라는 이 좋은 날 찬밥을 먹어야 하는가?


찬밥을 먹는 이유는 불이 없어서였답니다. 그날 하루 불을 때지 않는다 하여 금연일(禁煙日)이라고도 했다네요.

(아, 금연까지 해야 한다니...후~욱!)


세상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성장하고 쇠퇴하다가 소멸한다고 믿었던 옛사람들은 한 해 동안 아궁이를 지켜왔던 불씨를 보내 주고 새롭게 불을 만들어 새로운 봄을 맞이하였다고 하네요. 오래된 불은 그 기운도 약하고 사람과 집안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궁궐에서 새로 불을 만들어 관청이나 충신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니, 아마, 성화처럼 멀리 남도의 촌부 댁까지 불씨가 릴레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뭐, 이런 장면은 아니었겠으나~

 

 

한식, 금연일은 낡은 불을 끄고 새 불씨를 기다리는 하루 동안의 과도기인 것입니다. 그 하루를 경계로 불은 다시 부활하는 것이고요.

그 시기가 하필 초록 풀과 색색 꽃잎이 물오르는 이 시기인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이 이 시기인 것도, 부활절과 한식에 모두 새생명을 상징하는 계란이 중요한 준비물인 것도 봄을 맞이하는 마음가짐과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봄을 맞아 새로운 한 바퀴의 세월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맞이했던 한 바퀴가 아니고 알지못할 변수들로 가득찬 새로운 시간입니다. 지나온 한 해처럼 무탈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더 좋은 일이 가득한 한 해이기를 바라는 마음, 매번 돌아오지만 새롭게 계획하고 새롭게 희망하며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 지금 우리와 같은 마음을 다졌던 거겠지요.

 

그래서 부활은 되풀이되는 데자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주되는 상황에 새롭게 대처하며 생활을 개척하는 응전력의 상징 아닐까요?

 

한식과 부활절을 아무 생각 없이 보내고 나서 부활의 의미를 뒤늦게 생각해 봅니다.

 

 

 

초식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