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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김영숙|루브르 박물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멀리 만이 보이는 강가의 풍경> 캔버스에 유채 94×124cm 1845년경 드농관 1층 32실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는 정신이상인 어머니와 이발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로, 그야말로 비천하고 소외된 가정에서 성장했다. 심심하면 아버지의 이발소 창문에 장난처럼 그림을 그리던 그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평가에 힘입어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서 수채화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겨우 한 해 만에 왕립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전시회에 작품을 낼 만큼 두각을 나타냈다. 스물네 살에 아카데미 준회원이 되고, 3년 뒤에 정회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 자신의 천재적인 그림 솜씨 덕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터너는 스무 살 무렵부터 유화를 시작.. 더보기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 <고대 로마 풍경이 있는 화랑>, 카날레토 <산 마르코 항에서 바라본 몰로>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 캔버스에 유채 231×303cm 1758년 드농관 1층 14실 카날레토 캔버스에 유채 47×81cm 1730년경 드농관 1층 23실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Giovanni Paolo Pannini, 1691~1765)는 로마에서 극장 무대 배경을 그리는 화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로마의 고대 유적에 관심을 갖고, 폐허가 된 옛 로마의 풍경을 낭만적으로 그리면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건축물 등 실제의 풍경에 화가의 상상을 곁들인 ‘카프리치오(capriccio)’ 양식에 능통했다. 은 말 그대로 고대 로마의 유적을 배경으로 한 어느 화랑의 모습을 담고 있다. 상상이 가미된 것이니만큼 실제와 똑같지는 않겠지만 18세기의 화랑 풍경이 어떠했는지, 그 분위기를 대충 가늠할 수 있다. 그는 로.. 더보기
카라바조 <성모의 죽음> 캔버스에 유채 369×245cm 1601~1605년 드농관 1층 8실 17세기로 접어들면서, 미술은 르네상스에서 매너리즘을 거쳐 바로크 시대로 향한다. 바로크 시대 미술의 특징 중 하나가 명암의 차이를 극명하게 하여 훨씬 더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고 할 수 있다. 카라바조(Caravaggio, ?1573~1610)는 바로 이 테네브리즘의 대가로, 이후 수많은 화가들이 그의 기법에 경도되었다. 에서는 어디선가 인공조명이 비추는 듯한 탁월한 빛의 연출로 인해, 마치 연극 무대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카라바조는 화가로서의 위대함만큼이나 특이한 기행으로도 악명 높다. 어린 시절 페스트로 가족을 잃은 뒤부터 시작된 걷잡을 수 없는 방황과 방랑은, .. 더보기
로소 피오렌티노 <피에타> 캔버스에 유채 127×163cm 1530년경 드농관 1층 8실 ‘피에타(Pietà)’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미술에서는 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일컫는다. 로소 피오렌티노의 에서 예수와 그의 왼팔을 잡고 무릎을 꿇은 요한의 몸은 마치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인물군상처럼 울퉁불퉁한 근육을 드러내 놓고 있다. 그러나 보통 흰색으로 그려지는 수의가 붉은 기운이 가득 도는 오렌지빛으로 그려진 것이라거나, 검붉게 처리된 예수의 얼굴은 이 그림이 르네상스의 단정한 색감에서 한참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온통 붉은색인 가운데에서도 예수의 늘어진 시신만큼은 붉은 기가 돌지 않아 더욱 섬뜩한 느낌을 준다. 로소 피오렌티노(.. 더보기
주세페 아르침볼도 <봄> <여름> <가을> <겨울> 캔버스에 유채 캔버스에 유채 76×63cm 76×64cm 1573년 1573년 드농관 1층 8실 드농관 1층 8실 캔버스에 유채 캔버스에 유채 77×63cm 76×63cm 1573년 1573년 드농관 1층 8실 드농관 1층 8실 이 신비로운 그림 앞에는 늘 사람들이 북적인다.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계절의 이치에 걸맞은 나무와 꽃과 열매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림의 주인공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막시밀리안 2세 황제이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처음엔 스위스 인근 지역의 소영주 집안이었으나 훗날 오스트리아로 거점을 넓히면서 지속적으로 정략결혼을 감행, 스페인 지역까지 통치하는 명실공히 유럽 최강의 가문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왕가는 세력 확장과 유지에 너무나 골몰한 나머지 근친혼도 마다하지 않.. 더보기
티치아노 <전원의 합주곡> 캔버스에 유채 105×137cm 1509년경 드농관 1층 7실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1488~1576)는 베네치아 화파의 선구자격인 벨리니 집안의 거장, 젠틸레 벨리니와 조반니 벨리니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벨리니의 문하생이자 또 다른 거장으로는 조르조네(Giorgione, 1478~1510)를 들 수 있다. 은 한때 티치아노가 아니라 조르조네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최근의 연구에 따라 두 사람의 공동 작업으로 본다. 두 사람이 도제 시절부터 이미 공동 작업을 자주 하던 터였기 때문이다. 은 19세기 인상주의 그림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탄급 화가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가 살롱전에 출품하였다가 낙선한 에 영향을 준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 더보기
파올로 베로네제 <가나의 혼인 잔치> 캔버스에 유채 677×994cm 1563년 드농관 1층 6실 높이 6미터를 훌쩍 넘고 넓이는 약 10미터에 이르는 이 대형 작품은 색채 감각이 출중한 베네치아 출신 화가의 그림답게 산뜻하고 생생한 색의 향연 그 자체이다. 는 예수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기적을 행하여 술통을 다시 가득 채운 일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한가운데에 옅은 후광을 두르고 있는 예수와 그 곁에 앉아 술이 떨어진 것을 염려하는 마리아의 모습으로나마 이 그림이 종교화임을 간신히 알 수 있을 뿐, 화려한 옷을 골라 입고 모여든 귀족들의 허영의 끝을 보는 것 같다. 베로네제(Paolo Veronese, 1528~1588)는 현재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걸린 도 이런 방식으로 그렸다. 예수가 마지막으로 제.. 더보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 <페로니에르를 한 아름다운 여인> 목판에 유채 63×45cm 1495년경 드농관 1층 5실 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느라 스쳐 지나기 쉬운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걸작 중 하나가 바로 이 그림이다. 모델에 대한 정보는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으나,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머물던 시절, 도시의 수장이었던 루도비코 일 모로(루도비코 스포르차가 본명이나 검은 피부 때문에 ‘일 모로’, 즉 아랍 사람 같다는 뜻의 별명으로 주로 불린다)의 정부 루크레치아 크리벨리나를 그린 것이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 이 그림이 ‘라 벨 페로니에르’, 즉 ‘페로니에르를 한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불린 것은 18세기부터였다. 프랑스 여인들은 그림 속 여인의 이마에 달린 예쁜 철 장신구를 페로니.. 더보기
안드레아 만테냐 <성 세바스티아누스> 캔버스에 에그 템페라 255×140cm 1480년경 드농관 1층 5실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로마 제국 시절 순교 당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는 기독교 박해가 극에 달하던 시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근위병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감옥에 갇힌 많은 기독교인을 석방시키다가 기독교인임이 발각되어 사형에 처해졌다. 처형 방법은 당연히 잔인했다. 황제는 그를 기둥에 묶은 뒤 병사들에게 활을 쏘도록 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 성인의 이야기가 흔히 그러하듯, 신심을 드높일 기적이 일어난다. 수십 발의 화살을 맞고도 아직 죽지 않은 세바스티아누스는 이레네라는 미망인에게 극적으로 구출되어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그러나 순교의 운명을 타고난 그는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앞에 나타나 그.. 더보기
피사넬로 <젊은 공주의 초상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시지스몬도 판돌포 말라테스타> 피사넬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코 목판에 유채 목판에 템페라·유채 43×30cm 44×34cm 1435년경 1450년경 드농관 1층 4실 드농관 1층 4실 신성을 중시하던 중세에는 개인의 초상화가 여간해서는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 중심의 고대 그리스 로마의 사고가 부활한 르네상스 시대에는 개인 초상화가 폭발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고대 로마 시절에는 황제나 귀족들이 자신의 측면 얼굴을 새겨 넣은 메달이나 동전을 주문 제작하곤 했다. 평면적인 얼굴의 동양인들과 달리 입체적인 선을 가진 서양인들은 측면 얼굴을 그리는 것이 한 인물의 위엄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사넬로(Pisanello, 1395~?1455)는 르네상스 시절 이탈리아 실세들의 얼굴을 기념비적으로 새겨 넣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