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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김보일|생각의 뭉게구름

유아론, 내가 보는 대로 세상도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

우리는 눈에 보이는 대로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빨간 색이 먼저 있기 때문에 빨간 사과가 나의 감각에 포착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로줄 방에서 자란 고양이는 왜 가로줄을 보지 못할까?』의 저자는 철학자 조지 버클리의 “물질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감각적 성질은 물질 속에 존재하는 성질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오히려 세계의 실상에 가깝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빛은 투명할 뿐인데 그것이 우리의 뇌에 ‘붉은 색’이라는 느낌을 만들어 낼 뿐이라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빨간 색의 사과를 모두가 예외 없이 빨간 색으로 느끼지는 않는다. 빨간 색을 바라보는 주체를 인간에서 동물에게까지 확장하면 ‘빨간 색의 사과를 모두가 예외 없이 빨간 색으로 느낀다.’라는 가설은 금방 그 토대가 허물어진다. 왜일까?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소는 색이라는 감각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또한 꿀벌에게는 자외선이 보이지만, 인간은 자외선을 감지하는 시세포가 없어 자외선을 볼 수가 없다.”

 

보이는 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자외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외선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내가 보는 대로 세상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들이 어떻게 보건 상관없다. 오직 내가 보는 대로 세상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철학에서는 유아론(唯我論) 또는 독아론(獨我論)이라고 한다. 조금 어렵게 말하자면 세계는 '주관[마음]'에 나타나는 관념에 불과하다는 ‘주관적 관념론’이라고도 한다. ‘나[我]’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바로 유아론이다. 극단적인 유아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되고, 내 눈에 비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러나 세계에는 나의 감각기관에 포착되지 않는 초음파도 있다. 박쥐는 초음파를 감지하는데 인간은 감지하지 못한다. 이렇게 되면 박쥐에게는 ‘있는 것’이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인간에게 없는 것이 타자(他者)에게도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유아론적 경향이 다분히 있다. 엄마는 아이에게 국물이 든 그릇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준다. 그 그릇을 받아든 아이는 당연히 뜨거울 수밖에 없다. 엄마는 뜨겁지도 않은 것을 받아들고 뭐 그렇게 호들갑이냐며 아이를 나무란다. 엄마에게 뜨겁지 않은 것은 아이에게도 뜨겁지 않을 것이라는 엄마의 생각, 세계는 내가 보고 느끼는 대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바로 유아론이다.

 


성숙한 마음은 타인의 마음을 읽는 마음

 

 

Sally-Anne 실험은 유아론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만 네 살인 Anne와 Sally가 함께 노는 데, Sally가 구슬을 자신의 바구니에 넣고 그녀의 옷으로 그 위를 덮는다. Sally가 잠깐 바깥에 나간 사이, 장난꾸러기 Anne이 구슬을 자신의 상자 안에 숨겼다. Sally가 돌아 와서, 구슬을 가지고 놀려고 한다. 과연 Sally는 바구니에서 구슬을 찾을까, 박스에서 찾을까? 이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져보면 아이들은 과연 어떤 대답을 할까?

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기 위하여 Anne이 구슬을 상자 안으로 옮기는 것을 Sally가 보지 못하여 원래 놓았던 장소에 구슬이 있다고 Sally가 생각하리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이해해야 한다. 즉 Sally의 마음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Baron-Cohen 등은 실험의 결과, 만 4세의 아동의 약 85%정도가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고, 다운 증후군의 경우는 14명 중 12명이 정답을 말했으나, 자폐아는 다운 증후군 아동에 비하여 오히려 정신연령이 높았지만, 20명 중 4명만이 정확하게 대답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자폐아는 Sally의 입장에서 상황을 관찰하지 못하고 Sally가 갖게 되는 틀린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폐는 타인[Sally]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유아론적 사고를 가진 사람의 마음이다. 그들은 Anne이 구슬을 상자 안으로 옮기는 것을 Sally가 보지 못하여 원래 놓았던 장소에 구슬이 있다고 Sally가 생각하리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Anne이 구슬을 상자 안으로 옮기는 것을 보았다는 자신의 마음 안에만 갇혀 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구슬이 상자 안으로 들어간 것을 내 눈으로 보았으니 타인도 그렇게 볼 것이라고 판단한 마음, 이것이 자폐의 마음, 닫혀진 마음이다. 성숙한 마음은 나의 마음을 넘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