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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최승아|오, 이런! 이란!

너 그 말 진짜니?

 

 

기숙사 앞 슈퍼 아저씨와 거의 매일 실랑이를 벌였다. 실랑이는 보통 이런 식이었다.

 

머스트(플레인 요구르트) 얼마에요?”

 

거벨리 나더레

 

에이. 얼마에요?”

 

거벨리 나더레.”

 

얼마냐니까요.”

 

거벨리 나더레.”

 

정말요?”

 

“1200토만만 주세요.”

 

 

거벨리 나더레는 직역하자면 이런 뜻이다. “이건 (당신에 비하면) 아무 가치가 없어요.” 고로, 내가 요구르트보다 훨씬 귀중하니 돈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거짓말이었다. 아저씨는 결국 돈을 받았으니 말이다. 난 요구르트보다도 못한 사람이었다.

 

빈말의 달인. 말 그대로 슈퍼 아저씨는 빈말의 달인이었다. 그런데 아저씨의 빈말에 이란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의외로 심심했다. 매번 얼마냐고 되묻던 나와 달리 익숙하다는 듯 빈말을 주고받지 뭔가.

 

이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빈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특히 먹을 것을 앞에 두고는 가관이었다. 터헤레는 나와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 먹다가도 레일러나 미나가 지나가면 고개를 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베파르머이드(이것 좀 먹어봐)” 음식에 몰두하다가도 친구들이 지나가면 건성으로라도 이 말을 꼭 했다. 처음엔 참 인심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습관적인 말처럼 느껴졌다. 터헤레와 난 분명 1인분씩만 만들어 먹고 있었으니까. 또 기다렸다는 듯 먹으러 오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다. “베파르머이드라는 그저 진심 같은 빈말이었다. 나중에야 빈말이 이란 특유의 문화라는 것을 알았다.

 

 

 

기숙사 앞 단골 슈퍼 아저씨. 매번 '거벨리 나더레'를 연발했는데, 가끔 피곤할 땐 "정말요?"라며 말대꾸해 아저씨를 당황시키고는 했다.

 

 

 

 

이란인들은 자신들의 빈말 문화를 일컬어 터로프문화라고 부른다. 터로프를 굳이 정의내리자면, 일부러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 본인 체면도 지키고 상대방도 존중하는 일종의 언어 에티켓쯤 된다. 친구들이 남용하던 베파르머이드는 가장 대표적인 터로프 표현이다. 이 말의 정해진 뜻은 없다. 나보다 상대방을 앞세우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상황마다 의미가 변한다. 문이나 엘리베이터, 계단 앞에서 말하면 먼저 지나가세요.”, 은행이나 관공서 직원이 말하면 무슨 일을 도와드릴까요.”정도의 뜻이 된다.

 

다양한 터로프 표현이 있는데 그 중 아래 표현들이 대표적이다. 직역해서 읽어보면 사실 조금 느끼하다. 표현들이 대부분 시()적인 탓이다.

 

가다멧 로 체쉬맘(당신은 내 눈()위에서 걸을 수 있어요)”

환영합니다.

 

고르버넷 베람(난 당신을 위해 희생할 거예요).”

매우 감사합니다

 

체쉬멧 로샨(당신 눈 안의 빛).”

당신은 그럴만 한 가치가 있어요.

 

그러나 최고의 터로프 표현은 단연 이것이다. “터로프 나콘(터로프 하지 마세요).” 터로프 하지 말라는 뜻인데, 이것 또한 터로프의 하나이니 속으면 안 된다.

 

 

 

이란인들은 기본적으로 친절한 편인지라 터로프 문화와 잘 어울린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터로프를 하는 걸 보면 차라리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 답답할 정도로 대화가 늘어지기 때문이다. 기분이 안 좋을 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언젠가 거벨리 나더레라는 말을 또 들었을 땐, 나도 모르게 이렇게 쏘아붙이고 말았다. “정말 돈 안 내도 되는 거죠?”

 

한국의 체면 문화에 익숙한 나도 이렇게 답답했을 정도인데, 직설적인 언어권 사람들이야 불 보듯 뻔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한 미국인 남자가 이란인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약속 당일, 친구 집에 도착하여 문 앞에 갔더니 어떤 이란 남자 2명이 문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게 아닌가. 대화를 들어보니 내용은 이랬다.

 

먼저 들어가세요.”

 

안돼요. 불가능한 일이에요.”

 

제가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허락할 수 없어요. 당신이 먼저에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제발 먼저 들어가세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미국인 남자가 속으로 황당해 하며 곁으로 다가가자 그들은 말했다. “먼저 들어가세요.” 미국인 남자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란 남자들은 순간 당황해 했지만 마저 실랑이를 이어 갔다는 게 이야기의 결론이다. 물론 터로프와 터로프에 대한 외국인의 불편함을 풍자한 지어낸 이야기다

 

어학원에서 터로프를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전 세계의 아이들이 모인 탓에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갔다. 반응은 크게 두가지였다. 빈말 문화에 다소 익숙한 중국인 아저씨 유네스는 눈을 꿈벅거리며 처음엔 이해가 안 갔지만, 곧 적응이 됐어요.”라고 말한 반면, 직언에 익숙한 노르웨이 친구 오씬은 고개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솔직하지 못한 것 아닌가요?”

 

익숙한 것이 편하고 낯선 것이 불편한 거야 당연지사. 타국의 문화에 대한 호불호는 순전히 각자의 취향 문제다. 그러나 터로프 문화가 태동한 이유를 알면, 그 문화를 바라보는 다른 문이 열린다.

 

 

 

언어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문화가 언어를 만들기도 언어가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한 나라의 문화와 언어란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터로프 문화 또한 이란 사람들의 종교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굳어졌다. 이란인들도 원래부터 빈말의 달인은 아니었던 셈이다.

 

우선 페르시아어 얘기부터. 터로프 표현의 기본 재료 페르시아어는 안개처럼 모호한 언어다. 영어의 경우 언어의 80%가 지시적인 표현이라면, 페르시아어의 80%는 암시적인 표현이라고 비교될 정도다. 영어권은 합리적 문화의 영향으로 말하는 사람과 정확한 메시지 전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란에서는 말이 담기는 상황과 관계에 치중하는 편이다. 이란의 공동체 중심 문화 때문이다. 가급적 대립적인 언어 표현을 피하는 이란의 언어습관도 이 같은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여기에, 이란의 서러운 역사가 보태졌다. 세계 지도에서 이란을 찾아 손가락으로 짚어보면, 왼쪽엔 유럽이 오른쪽엔 중국이 있다. 동양과 서양을 연결해주는 이란의 지정학적 위치는 활발한 무역, 문화의 융합으로 풍요로움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똑같은 이유로 침략도 잦았다. 아랍, 투르크, 몽골의 연이은 점령. 이란 사람들은 언제 목숨과 재산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우회적인 언어 표현을 쓰게 됐을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종교적인 이유도 있다. 이란인들 대부분은 시아파 무슬림들이다. 무슬림은 순니파가 주류이고 시아파는 비주류에 속한다. 오랜 종교 분파의 대립 속에서 비주류가 주류에 맞서 피를 보지 않으려면 자신의 종교적 입장을 감춰야 했다. 위험한 상황 속에서 신앙을 감추는 행동을 이슬람에선 타기예(taqiyeh)’라고 하는데 비주류인 시아 무슬림들이 당연히 타기예를 많이 행해 왔다.

 

페르시아를 침략한 적들은 매번 페르시아인이 되어 돌아갔다.’ 이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말할 때 이런 표현을 많이 쓴다. 페르시아 문화가 그만큼 우수하다는 자부심의 발로다. 그런데 잦은 침략에도 불구하고 페르시아 문화를 지켜낸 건 문화의 힘 덕분이기도 했지만, 터로프 문화 덕분이라는 말도 있다. 우회적인 언술이 침략자들과의 직접적인 대립을 막아 페르시아 문화를 지키는 데 일조했을 거라는 얘기다. 여러 이야기를 두루 살펴보면 이란인들은, 한마디로 거짓말을 해야 살 수 있었던 셈이다.

 

외국인들로선 이런 깊은 사연을 알 턱이 없다. 터로프가 풍겨내는 친절함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이란인들이 의외로 따뜻한 사람들이라며 호들갑을 떨게 만들었다(물론 대부분의 이란인들이 그렇다). 유명 여행서론리 플래닛(Lonely Planet)도 이란인을 전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는데 터로프 문화의 덕이 크다. 친구 니마의 친척집에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얘기다. 저녁을 잘 먹고 작별 인사를 드리려는데, 주인 부부는 다정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여기가 승아의 집이에요.” 딱 봐도 빈말이었지만 이방인의 황량한 가슴을 적시기엔 충분했다.

 

 

 

터로프는 언어문화인지라 말을 주 무기로 삼는 협상, 매매, 환대 등의 상황과 더불어 이란의 정치 외교 분야에까지 물들어 있다.

이란 정치인들은 서로 합의를 보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다들 습관적으로 터로프를 하니 서로의 말을 곧이듣지 못하고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이란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잘 못 믿는다고 하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외교전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 미국과 이란의 외교전을 보면 이상하게 이란은 늘 당당하고, 미국은 늘 피곤해 보인다. 이것도 터로프 문화의 영향 때문이란다. 외교전의 주요 무기는 언어다. 벼리고 벼린 말들을 상대국가 혹은 미디어를 향해 퍼붓는 게 외교전의 시작이다. 당연히 상대 국가의 언어를 적확하게 이해하는 건 필수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명확한 영어와 모호한 페르시아어의 대결이니, 미국이 곤란할 수밖에. 이란 측에선 미국 측 발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되지만, 미국 측은 이란 측 발언을 고심하며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터로프에 관한 기사를 실으며 이렇게 조언했다. “미국은 이란의 복잡한 얼굴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소통방식을 알 필요가 있다.” 미국이 이란과의 외교전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면 군사 무기 이전에 언어 무기’, 즉 터로프부터 잘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터로프 하나로 이란의 역사, 정치, 외교가 이렇게 다르게 꿰어지다니. 아쉬운 건 이런 이해와 통찰은 늘 나중에야 얻어진다는 것이다. 이란에서는 그냥 터로프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2년 이렇게 저렇게 터로프를 경험한 내 결론은 소박하다. ‘을 알면 편하다는 것.

 

 

 

터로프에 싸여 살다보면 자연스레 터로프가 입에 붙어간다. 룰을 터득하는 단계다. 룰을 알고 나면 게임이 재밌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터로프 릴레이를 즐기게 되고 융통성도 생겨 간다. 이란인들이 터로프로 음식을 권하면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배불러서 더 이상 못 먹겠네요.” 돌이켜보면 터로프는 마치 탁구 게임 같다. 나도 룰을 알고 그들도 룰을 아는, 유쾌한 언어의 탁구 게임. 참고로, 이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터로프 릴레이는 그 속도와 표현의 풍부함 때문에 가히 말춤(言舞)’의 경지였다.

 

터헤레는 가끔씩 쿨한 척 만 터로프 네미코남(난 터로프 안해)”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 보았자 그녀도 별수 없는 이란인이었다. “이것 좀 먹어봐.” “너 먼저 써.” “먼저 들어가.” 등등 어릴 때부터 익혀 왔을 터로프 표현을 매일 무의식적으로 뱉어내곤 했으니까.

 

터헤레와 슈퍼 아저씨뿐 아니라 이란에서 만났던 수많은 이란인들을 떠올려 보면, 터로프란 어쩌면 사람들 사이에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빈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터로프는 지금도 터헤레와 슈퍼 아저씨의 입에서 피고 또 지고 있겠지? 순탄치 않은 역사를 거쳐 뿌리 내린 터로프는 갈수록 더욱 소중해질 꽃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친구 치만의 고향 피런샤흐르시(市)에서 어쉬라는 야채수프를 먹었다. 터로프 문화에 익숙해져 더 먹으라고 해도 먹고 싶은 만큼만 맛있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