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_작가共방/최승아|오, 이런! 이란! 썸네일형 리스트형 우리 술 한 잔 하자 언젠가는! “저것 봐. 옛날에는 다 마셨다니까.” 선배는 손가락으로 벽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스파헌의 유명관광지 체헬소툰 궁전 안, 한 벽화 그림을 마주하고 있었다. 선배는 직장 문제 때문에 10년 가까이 이스파헌에 살고 있었다. 그가 여태껏 족히 열 번은 넘게 봤을 이 그림을 두고 한 말은 바로 현 금주 정책은 전통에 위배되는 행위라는 것. 거대한 스크린처럼 펼쳐진 아치형 벽화 속 연회 장면엔 녹색 치마를 입은 한 여인이 허리를 숙이며 콧수염 난 남자에게 붉은 술이 담긴 술잔을 건네주고 있었다. 이란에 오기 일주일 전까지 나는 한 대학 근처에 살았다. 집 주변엔 밤이 되면 노란 등이 켜지고 발그레한 얼굴들과 왁자지껄한 소리가 뒤섞여 흘렀다. 한마디로 술집으로 가득한 주림(酒林) 한 가운데에 있었던 것. 일주일 .. 더보기 세헤라자데가 이야기꾼이 된 이유 난 테헤란 대학 맞은 편 거리에서 입을 헤 벌리며 서 있었다. “와, 책 진짜 많다.” 테헤란 대학 맞은편, 도로를 따라 서점들이 줄지어 서 있는 이 거리는 세계 최대 서점 거리 중 하나라고 했다. 프랑스에 오데옹 헌책방 거리가, 일본에 간다 거리가 있다면, 이란엔 이곳 테헤란대학 서점 거리가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출간되기도 한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의 작가 아자르 나피시는 이 거리를 분홍빛으로 회상했다. 그녀는 이 거리를 걸으며 이 책방 저 책방을 돌아다니다가 영국의 무명작가 윌리엄 그린을 아는 책방 주인이나 손님을 발견하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책도 책방도 많으니 보물 같은 책들이 숨어 있을 수밖에. 테헤란에서 유학하던 선배가 교수님께 희귀서적을 내밀며 이 서점 거리에서 겨우 찾아낸 책.. 더보기 너 그 말 진짜니? 기숙사 앞 슈퍼 아저씨와 거의 매일 실랑이를 벌였다. 실랑이는 보통 이런 식이었다. “머스트(플레인 요구르트) 얼마에요?” “거벨리 나더레” “에이. 얼마에요?” “거벨리 나더레.” “얼마냐니까요.” “거벨리 나더레.” “정말요?” “1200토만만 주세요.” ‘거벨리 나더레’는 직역하자면 이런 뜻이다. “이건 (당신에 비하면) 아무 가치가 없어요.” 고로, 내가 요구르트보다 훨씬 귀중하니 돈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거짓말이었다. 아저씨는 결국 돈을 받았으니 말이다. 난 요구르트보다도 못한 사람이었다. 빈말의 달인. 말 그대로 슈퍼 아저씨는 빈말의 달인이었다. 그런데 아저씨의 빈말에 이란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의외로 심심했다. 매번 얼마냐고 되묻던 나와 달리 익숙하다는 듯 빈말을 주고받지 뭔가. 이란 .. 더보기 피스타치오 같은 도시, 테헤란 “언니 여기에요!” 시장통 같은 공항 검색대를 빠져나오느라 지칠 대로 지친 내 앞에 마중 나온 후배가 보였다. 흰 코트를 입은 후배는 히잡 대신 코트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서 있었다. 옆엔 일행으로 보이는 건장한 이란 남자가 두 눈을 끔벅이며 ‘저 여자인가보다’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후배는 과 후배인 동시에 일하게 된 회사의 선임이기도 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건 바로 이 때문. 동행한 이란 남자는 회사 소속 운전 기사였다. 후배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차 뒷자리에 나란히 타자 차는 곧장 테헤란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메마르고 황량한 땅이 창문 밖에 가득 펼쳐졌다. 테헤란은 이맘 호메이니 공항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가야 나온다고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지러운 시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테헤란 .. 더보기 양파 같은 성소, 모스크 네모난 화면 속, 만화 의 궁전은 참 신비로웠다. 노란 양파 모양의 돔을 얹어 놓은 궁전들. 별이 빛나는 밤, 재스민 공주가 알라딘과 카펫을 타고 날아간 하늘 아래도 동근 돔을 얹은 건물들이 서 있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 2011년 이란. 에서 빛나던 돔 건물이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더 거대하고 더 다채로운 ‘모스크’로 말이다. 이란에 가기 전 한남동 언덕에 서 있는 모스크를 본 적이 있다. 1976년 세워진 이 모스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하람 성원을 본 뜬 것으로 타일 하나, 벽돌 하나 모두 이슬람 국가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한국 무슬림 사절단이 이슬람 각국에서 돈을 끌어 모아 지었다고도 했다. 뒷얘기가 풍성한, 한국 무슬림의 총 본산지였지만 어쩐 일인지 내 눈엔 그냥 밋밋한 이슬람식 건물.. 더보기 전 국민적인 스모커들 어느 날 우연히 회사 여직원들의 흡연 현장을 목격했다. 그녀들은 색색깔의 스카프를 두른 채 사무실 밖 혹은 비상구 계단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다. ‘오, 이란 여자들도 담배를 피우는구나!’ 이란 여성이 담배 피우는 걸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아직 여성 흡연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마당에 담배 피우는 이란 여성의 모습이라.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내 생각에 차도르를 입은 성스러운 이란 여인의 손가락에 담배는 당치도 않았던 것이다. 이란에 와보니 남성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담배 피우는 여성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히잡을 쓴 이란 여인들은 노천카페에서 우아하게 담배를 물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란 곳곳을 두루 다녀보니, 시골 여성보다는 도시의 여성 흡연율이 높은 듯했다... 더보기 카펫, 어찌됐든 꿰매지는 인생 발수건이 필요 없었다. 바닥에서 자도 등이 따뜻했다. 물 흘려도 닦을 필요가 없었다. 맞다. 바퀴벌레도 압사된 채 발견됐다. 불쌍한 녀석들. 이건 다 카펫, 카펫 덕분이다. 이란의 모든 집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다. 처음 살던 집 방에도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말 그대로 레드카펫. 늘 장판 바닥만 밟고 살아온 내게 카펫의 푹신한 감촉은 정말이지 이란에 있다는 걸 실감케 했다. 한국에선 카펫은 가을이나 겨울용이다. 여름엔 카펫을 걷어내고 맨 바닥을 밟거나 대나무 장판을 깐다. 두꺼운 카펫은 보기만 해도 더우니까. 반면 이란의 모든 가정집에는 사시사철 카펫이 깔려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수많은 이란 가정집을 다녔는데, 아무리 거실이 넓어도 여러 장의 카펫을 깔아 거실을 채웠다. 우리처럼 바닥 한복판에 .. 더보기 테헤란 택시 블루스 회사 다니던 시절, 거의 매일 밤 똑같은 이란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인이면 좋았겠지만, 콜택시 회사였다. “옉 턱시 바러예 조르단 미커스탐.(조르단 가는 택시 한 대 부탁합니다)” 야근을 하다 보면 곧 밤이 됐다. 회사에서 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나 테헤란이든 서울이든 밤에 혼자 다니면 불안한 법. 무조건 콜택시를 불렀다. 출근할 땐 퇴근할 때와 달리 택시를 두 번이나 탔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출근 길 아침, 집 앞 큰 도로에 서 있으면 낡은 차들이 다가와 창문을 스르르 열었다. “모스타킴?” 이렇게 묻고 운전사가 고개를 끄덕이면 난 그 즉시 차에 올라탔다. 차를 타고 회사 방향으로 꺾어지는 모퉁이까지 내려간 뒤 그곳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매일 출근길이 이런 식이었다. 모스타.. 더보기 차이(Chai)는 힘이 세다 나는 붉은색을 병적으로 좋아한다. “넌 사주에 불(火)이 없대. 그래서 붉은 색을 많이 입는 게 좋다더라.” 엄마에게 이 말을 들은 뒤로 그랬다. 그때부터 난 속옷부터 상의, 필통, 휴대전화 케이스, 지갑 등 거의 모든 생활용품을 붉은색 계열로 구입하곤 했다. 그러다가 결국 이란에 가선 몸속까지 붉은색으로 채우기까지 이르렀다. 바로 이란의 국민음료, ‘차이(chai, 홍차)’로 말이다. 이 붉은 물을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다. 차이를 좋아하기까지는 무려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2010년 엄청난 업무에 시달리던 어느 날, 동료 파라허니가 나에게 느닷없이 차이를 권했다. “승아. 너도 차이를 마셔봐. 소화가 잘돼.” 안 그래도 업무 스트레스에 힘없는 트림을 반복하던.. 더보기 히잡, 벗기거나 씌우거나! 내 생애 첫 히잡은 검은 졸업 가운이었다. 이란에 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차, 내가 다름 아닌 이란에 가는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절차 하나가 있었다. 바로 이란 비자를 받기 위해 히잡을 쓰고 증명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경험이 있는 선후배들에게 수소문해보니 알록달록한 스카프보다 검은색이 좋다는 둥 머리카락이 나오지 않는 게 좋다는 둥 말들이 많았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얌전하게 보이는 게 좋다는 것. 학교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사정을 말하니, 아저씨는 정말 놀라운 제안을 했다. “졸업가운으로 찍으면 되겠네!” 그래. 졸업가운 정도면 차도르랑 비슷할 수도 있겠구나. 사실 또 차도르만큼 얌전해 보이는 게 없었다. 결국 난 카메라 앞에서 검은 졸업가운을 뒤집어썼다. 흘러내..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