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화면 속, 만화 <알라딘>의 궁전은 참 신비로웠다. 노란 양파 모양의 돔을 얹어 놓은 궁전들. 별이 빛나는 밤, 재스민 공주가 알라딘과 카펫을 타고 날아간 하늘 아래도 동근 돔을 얹은 건물들이 서 있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 2011년 이란. <알라딘>에서 빛나던 돔 건물이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났다. 더 거대하고 더 다채로운 ‘모스크’로 말이다.
이란에 가기 전 한남동 언덕에 서 있는 모스크를 본 적이 있다. 1976년 세워진 이 모스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하람 성원을 본 뜬 것으로 타일 하나, 벽돌 하나 모두 이슬람 국가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한국 무슬림 사절단이 이슬람 각국에서 돈을 끌어 모아 지었다고도 했다. 뒷얘기가 풍성한, 한국 무슬림의 총 본산지였지만 어쩐 일인지 내 눈엔 그냥 밋밋한 이슬람식 건물로만 보였다. 한국에도 무슬림 사원이 있구나 하는 그 정도? 그 이상의 감동은 없었다.
이슬람 국가 이란에서 돌아온 뒤 한남동 모스크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웬걸? 반가운 마음은커녕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이슬람 불모지, 한국 도심 한가운데 서 있는 그 외로운 모습이란. 이란에서 본 모스크 풍경만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모스크는 무슬림이 하루 다섯 번 신에게 예배드리는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슬람 국가에 가면 눈뿐만 아니라 귀로도 모스크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데 매일 5번 아잔 소리(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이곳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아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모스크 근방은 은은한 이슬람 판 성가로 가득 차곤 한다.
모스크 하면 떠오르는 둥근 돔 건물은 사실 나중에 정착된 양식이다. 최초의 모스크는 소박한 아랍식 토담집이었다. 그곳은 바로 신과 인간의 매개자, 무함마드의 집. 무슬림이 소규모였던 시절, 무함마드의 집이 바로 신도들의 예배 공간이었다. 이슬람 공동체가 널리 널리 확대되고 각 지역들의 건축 양식이 스며들면서 지금의 모스크 양식이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모스크의 상징인 돔은, 건물위에 둥근 돔을 얹었던 비잔틴 건축의 영향이라고 한다(낙타의 솟아오른 혹 모양을 본떴다는 말도 있다).
모스크 형태는 지역마다 다양하다. 크게 아랍형 모스크, 터키식 모스크, 이란식 모스크로 나뉘는데 기본 모스크 양식에 각 지역의 고유한 건축 양식이 덧붙는 식이다. 고로 세계 곳곳에 거대한 버섯처럼 서있는 모스크들은 이슬람권의 광활함과 더불어, 이슬람이 품은 문화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스파헌 시(市)의 이맘광장에 있는 이맘모스크는 가장 대표적인 이란식 모스크다. 이맘 모스크엔 일반 모스크와 이란식 모스크의 특징이 모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모스크 입구로 들어가 짧은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입구 기준 북동쪽 방향에 위치한 모스크의 안뜰이 보인다. 모스크가 약간 틀어진 방향에 서있는 건 메카방향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갔을 당시 안뜰은 공사 중이라 철골구조물로 가득 뒤덮여 있었는데, 이 안뜰 한 가운데의 연못에서 사람들은 손과 발을 씻고 예배를 드린다. 재밌는 건, 무슬림들은 예배 때마다 발을 씻기 때문에 좀처럼 무좀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
안뜰을 지나쳐 곧장 쭉 걸어가면 예배실이 나오는데, 이곳에 모스크 건축의 3대 필수 요소 미나레트(Minaret), 미흐랍(Mihrb), 민바르(Minbar)가 있다. 3대 요소는 3M으로 기억하면 쉽다. 우선 메인 예배실 입구에서 보이는 우뚝 솟은 첨탑이 미나레트이다. 하늘 높이 우뚝 솟아있어 모스크의 위치를 먼 곳까지 알려주기도 하고 ‘아잔’ 소리를 퍼뜨려 예배시간을 알리기도 한다. 아잔은 일명 ‘예배 독촉가’로 ‘무앗진’이라는 독경가가 노래 부르듯 낭송하는데, 내 귀엔 뜻 모를 아랍어 메들리로 들렸지만 이런 깊은 뜻이 있었다. ‘신은 위대하다. 신은 오직 한 분이시고, 그 분 이외에 그 누구도 없도다. 무함마드는 그가 보낸 사도이니라. 예배 보러 올지라. 성공의 길로 올지라…….’
이맘모스크든 어떤 모스크든 예배실 벽면엔 움푹 파인 공간, 일명 미흐랍이 있다. ‘미흐랍’은 보통 모스크에서 가장 화려하게 꾸미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예배드릴 메카의 방향을 표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흐랍이 곧 신(메카)으로 향하는 입구쯤 되는 셈이니 눈에 띄게 만들 수밖에. ‘민바르’는 일명 계단식 설교 연단으로 금요 예배(주마 예배)때 설교자가 이곳에 올라가 설교를 한다.
모스크에 스며든 페르시아의 흔적은 모스크 입구와 안뜰에서 찾을 수 있다. ‘에이완(돔 천장을 가진 홀 건물)’과 ‘무카르나(벌집형 천장)’가 그것인데 특히 좁은 천장을 거대한 삽으로 촘촘하게 파낸 듯한 무카르나는 무척 화려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란식 모스크의 자부심은 모스크 전체를 덮은 화려한 타일의 성찬. 이맘 모스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도 바로 푸른 타일의 향연이다. 꽃문양, 서체, 기하학적 디자인이 총총히 박힌 푸른 모자이크 타일과 노랑, 파랑색이 뒤섞인 채색타일이 건물을 뒤덮고 있는데 멀리서 보면 푸른 물감을 칠한 듯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단단하게 구워 낸 타일들이 벽면에 촘촘하게 붙어 있다.
셰이크 로트폴러 모스크 천장
셰이크 로트폴러 모스크 미흐랍과 모스크 바닥에서 낮잠을 자는 한 남성
이란 곳곳엔 페르시아를 머금은 눈부신 모스크가 아주 많다. 이란을 여행한 사람마다 모두 서로 다른 모스크에 매혹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맘 모스크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조그만 모스크가 하나 나오는데 내겐 이 모스크야말로 가장 매혹적이었다. 이름부터 우아한 셰이크 로트폴러 모스크가 바로 그것이다.
이란을 돌고 돌아봐도, 이런 돔 색깔은 본 적이 없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고운 크림색의 돔. 한번 손으로 문질러 보고 싶을 만큼 돔은 무척이나 탐스럽다. 돔 색깔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핑크색으로 변하는데, 그 중 해 질 때의 빛깔이 가장 아름답단다. 셰이크 모스크는 돔 색깔만 아니라 건물 구조도 특별하다. 이곳엔 이상하게 미나레트도 안뜰도 에이완도 없다.
셰이크 로트폴러 모스크는 여인들만을 위한 모스크였다. 16세기 사파비조 당시 이 모스크엔 일반 무슬림들이 아닌, 압바스 왕과 왕의 여자들만 출입했다. 굳이 미나레트로 모스크의 위치와 예배시간을 널리 알릴 필요도, 거창하게 안뜰과 에이완을 만들 필요도 없었던 것. 전설에 따르면, 모스크 바로 맞은편에 있는 알리카푸 궁전과 모스크 사이엔 지하통로가 있었다고 한다. 아직 발견되고 있진 않지만.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는 길은 성스럽다. 왕의 여자들이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을 길. 푸른색 바탕에 노란색 꽃문양이 장식된 통로 벽면은 언뜻 그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수많은 채색타일들이 이루어낸 장관이었다. 문과 멀어질수록 길은 어두워졌다.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환한 모스크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와......”
내부로 들어선 후, 한동안 내 입에선 이 소리만 터져 나왔다. 노란 바탕에 검은색 물방울무늬가 박힌 거대한 천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머리 위로 마치 햇살이 퍼져나가는 듯 했다. ‘저게 사람의 솜씨일까. 신의 솜씨일까.’ 카메라를 건 목이 아파와 고개를 돌리니 또 하나의 장관이 펼쳐졌다. 눈이 번쩍 뜨였다. 밖에서 들어온 햇빛으로 아치형 창틀이 새하얗게 빛나고, 빛을 머금은 푸른 타일들이 슬며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눈앞에 현현한 신은 없어도, 모스크 곳곳에서 신의 존재가 느껴졌다.
셰이크 로트폴러 모스크의 크림색돔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있는 사람들
신을 찾아 모스크 문을 두드리는 행위는 이란에서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끼이이익.” 친구 미나의 고향 보주누르드로 가는 길. 밤새 달리던 버스가 어슴푸레한 새벽이 되자 갑자기 조용히 멈춰 섰다.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차가 멈춘 곳은 휴게소가 아닌 한 허름한 모스크 앞. 새벽 예배 시간이라고 했다. 달리던 버스를 세우고 잠자던 사람을 깨우는 예배라니, 역시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인 나라다웠다.
그러나 모스크가 예배행위만 품는 건 아니다. 이슬람이 종교라기보다 하나의 문화에 가깝다는 걸 잘 보여주는 공간도 바로 모스크다. 모스크의 역할은 다채롭다. 유명한 성직자의 묘소가 되기도, 종교 학교 역할을 하기도 여행자들의 쉼터나 숙소가 되 주기도 한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건대 여자들에게 모스크만큼 안전한 숙소가 또 있을까? 신이 내려다보는 곳에서, 음흉한 짓을 할 이란 남자는 없을 테니까. 또 모스크만큼 만만한 쉼터가 없나보다. 여행을 다니며 모스크에서 낮잠 자는 남자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던지. 모스크는 심지어 무슬림들의 헬스클럽이 되기도 하는데 반복적으로 허리를 숙이는 예배는 그 자체로도 운동 효과가 있단다. 그러고 보니 배는 불룩 나와도, 허리가 굽은 이란 노인은 못 본 것 같다. 무슬림 중엔 류머티즘을 앓는 사람도 거의 없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스크엔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이 모이면 이야기가 모인다. 모여서 하는 얘기는 사실 뻔하다. 정치 얘기, 사회 문제 얘기……. 여기서 모스크의 중요한 기능이 탄생하는데, 그건 바로 정치적 담론의 형성이다.
한국에 뜨는 이란 뉴스 중 굵직한 뉴스를 잘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꼭 들어있다. “하메네이는 이슬람 금요 예배를 통해” 전 이슬람권이 비슷하다. 2012년 무함마드를 모독 미국 영화 파문 때도, 이런 말이 헤드라인으로 떴다. “이슬람 금요 예배일 반미 시위 확산”
이슬람권의 ‘일요일’인 금요일 낮엔, 수많은 무슬림들이 모스크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린다. 설교자가 연설을 하고 예배 전후 외교문제부터 각종 국내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적 토론을 벌인다. 매주 금요일마다 모스크는 성소에서 포럼이나 아고라쯤으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이란은 신정일치를 내세운 이슬람공화국인지라, 모스크와 정치가 더 찰싹 달라 붙어있는 모양새다. 이란 정부가 주요 도시의 금요 예배를 직접 진두지휘하는데, 그중 테헤란 대학 모스크의 금요 예배는 이란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정치행사로 손꼽힌다. 예배는 총 1, 2부로 나뉘는데 2부에 가서야 종교의식을 행하고, 1부 땐, 정치, 사회, 외교 현안에 대한 논의를 한다. 금요 예배 때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이란 구호가 터져 나오는 건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30여 년 전 이슬람 혁명 당시 호메이니는 금요 예배를 통해 혁명의 불씨를 이어나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렸다. 2009년 대통령 부정선거 시위 사태 당시 하메네이 최고 종교지도자 또한 금요예배를 통해 “시위 중단”을 촉구, 시위의 동력을 꺽은 전력이 있단다. 테헤란 대 금요예배만 해도 수용인원이 5,000여 명에 달하는데, 중요한 시기엔 예배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생중계되기도 하니, 그 영향력이 가히 짐작할 만하다. ‘금요예배는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다.’ 범 이슬람적인 이 말은 이란에서도 예외가 없는 셈이다.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외세 타도 슬로건이 일제히 울려 퍼지는 모습은 일견 두려울 법한 모스크 풍경이다. 그러나 사실 내게 가장 긴장됐던 모스크 풍경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테헤란 대학 금요 예배 풍경. 맨 앞의 사람은 최고종교지도자 하메네이, 하메네이 바로 뒤 검은 천을 목에 걸고 있는 남자는 이란 전 대통령인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다. (자료사진 : 위키피디아)
엄청난 인파로 혼잡한 이맘 레저 묘소 앞 (자료사진 : 위키피디아)
모스크 안의 주도권을 쥐는 건,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보다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마샤드 시(市) 속 황금색 돔이 빛나던 거대한 이맘(시아파 최고 지도자) 레저의 영묘 단지. 모스크로 이루어진 도시 속 도시 같던 이곳에서 이맘 레저에게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묘지 풍경은 장관이었다. 차도리들은 이맘 레저의 무덤을 둘러싸고, 서로 이맘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발버둥치고 있었는데 여인들 중 거의 절반은 이맘이 마치 어제 세상을 떠난 냥 입을 막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맘 레저는 무려 1200년 전에 독살 당했는데 말이다. 앞 다투어 황금빛 이맘 묘지를 어루만지고 입을 맞추고…. 애도 차원의 행동치곤 이상하게 경쟁이 치열하다 싶더니, 그건 바로 이맘 레저가 기적을 일으킨다는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맘레저에게 기도한 후 맹인은 눈을 번쩍 뜨고 휠체어 타던 사람은 뚜벅 뚜벅 걸어 다니게 되었단다.
친구 미나의 언니는 용기 있게 행렬에 참가하러 간 뒤 얼마 후 차도르(이맘 레저 영묘에 들어가려면, 차도르 착용은 필수였다)가 절반은 벗겨진 채 입을 벌리며 돌아왔다. “승아. 안 가는 게 좋겠어. 온몸을 쥐어뜯기는 줄 알았어.” 여기까지 온 게 아까워 한번 시도해 봤지만 30초도 안 돼 포기하고 말았다. 차도리의 벽은 견고했다. ‘이맘 레저가 꼭 이런 식의 만남만 좋아하는 건 아닐 거야.’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그 곳을 빠져나왔다. 모스크는 신뿐만 아니라, 신과 가까운 성인을 애도하고 그의 힘에 기대고픈, 욕망의 아수라장이기도 했다.
모스크는 처음 한 겹을 벗기니 종교를, 또 한 겹을 벗기니 예술과 정치를, 다시 한 겹을 벗기니 무슬림들의 삶과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양파 같은 모스크의 속살들. 이런 풍경만 줄곧 보고 왔으니 별 수 있나. 한남동 언덕의 모스크가 그토록 쓸쓸하게 보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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