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매질(공기)이 없어서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니...'
과연 자연과학 편집자다운 통찰력&유머감각입니다. 제가 평소에 J 님의 유머에 어색한 미소만 지었던 이유를 제대로 알게 되었네요. 코드가 달랐던 게지요, 코드가. ㅋ
텔라파시와 비과학을 이야기하는 댓글도 흥미로웠습니다.
지난 인자한 만남 연재 <'이공계'라는 세계...엿보기>
그런데 저는 댓글을 보며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구분 짓는 문제'도 흥미로웠지만 '우리는 왜 비과학에 매혹되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댓글에서 나온 텔레파시 능력을 계발하려 한다거나,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상상을 한다거나, 순간이동을 꿈꾸거나 하는 몽상(?)에 누구나 한번쯤 빠져봤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판타지 소설이나 SF 영화에 탐닉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승환 옹은 <아이에서 어른으로>라는 노래에서
어렸을 때 제가 가졌던 몽상과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7살의 난 슈퍼맨인 것만 같다. 지구인들이 이 사실을 알까 두렵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가 본 '비과학의 세계' 중 가장 달콤한 이야기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만화였습니다. 권교정의 <매지션>이라는 만화인데요. <매지션> 속 매직은 우리가 ‘마법’이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어마어마한 무언가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만화 속 매지션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얻는 사람, 다른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있는 사람,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제목을 보고 어마어마한 마법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다소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기대하는 가장 큰 마법은 어쩌면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데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데에서 가지고 있는 어떤 바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결코 마법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표지.
<매지션>이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설정 중 하나는 매지션들이 마냥 행복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특히 누구에게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휘버’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 곳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어떤 순간이 오면 자신이 있었던 곳에서 전속력으로 도망쳐버리며, 결코 과거를 돌아보지 않죠. 무엇이든 얻을 수 있지만, 무엇도 가질 수 없는 존재. 그것이 휘버들의 비극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가장 큰 비극은 모든 사람들이 휘버에게 호의를 가진다는 점입니다. 누구에게나 순수하고 궁극적인 호의를 이끌어 내는 휘버들은 정작 어떤 기분일까요? 다른 사람들의 무수한 호의 속에서 자신은 정작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자신이 불러 일으키는 호의가 없었다면 상대방의 ‘진심’은 어떤 것이었을지... 평생 다른 사람의 호의 속에서만 사는 휘버의 인생은, 어쩌면 가장 불행한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지션>의 또 다른 매력적인 설정은 ‘라후’입니다. 원칙적으로 매지션들은 다른 사람과 운명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매지션들은 단 하나의 ‘절대교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 교점을 갖는 상대를 라후라고 합니다.
관계를 갖지 않는 매지션들에게 라후는 ‘가장 중요한 타인’이 됩니다. 언제나 의식하고 있고,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사랑하건 미워하건 존경하건 업신여기건 간에 말이죠. 라후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마주하는 그 순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저 사람이 내 라후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라후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운명’이라는 말로 접근한다면 그 길로 줄행랑은 쳐버리는 현대 사회에서 ‘한 눈에 알 수 있는 운명’이라니. 운명을 믿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에, 운명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으세요? 이렇게 매혹적인 이야기가 담긴 <매지션>은 현재 2권까지 출간되었습니다. 3권 출간이, 완간이 언제일지 몰라 쉽게 권하기 어려운 만화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비과학에 매혹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결국 '내가 좋아하는 만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네요. '우리는 왜 비과학에 매혹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원래 좋아하는 이야기는 수다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덧붙이자면 최근 H사에서 출간된 <이야기의 기원>이라는 책이 처음 질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마침 이 책의 부제가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입니다.
이야기, 즉 픽션은 사회적 부산물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생존하게 한 필수 요소라고 합니다.
이야기(픽션, 허구, 스토리텔링)를 진화론으로 설명하는 것이죠.
브라이언 보이드 지음, 남경태 옮김, 휴머니스트 발행
그래요. 모든 이야기는 이 책을 광고하기 위해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 런닝맨
'H_만나고 싶은 사람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소심남의 셀프힐링 (9) | 2013.02.19 |
---|---|
명절 연휴엔 영화? 그리고 책 (6) | 2013.02.12 |
'이공계'라는 세계,,, 엿보기 (4) | 2013.01.29 |
워크숍의 열기로 불타는 금요일 (2) | 2013.01.22 |
마감 중에 하는 블로그 포스팅 (1) | 2013.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