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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

어느 소심남의 셀프힐링

 

 

브래드 피트는 멋있습니다.

 

흔한 말로 남자인 제가 봐도정말있습니다멋있는 역을 맡아도있고멋없는 역을 맡아도 있더라고요.  설 연휴에 J 님이 보신 영화 <트로이>에서는 아킬레스를 연기하는 브래드 피트인데지지 않을 수 없겠죠.

 

하지만 영화 <트로이>에서 저를 사로잡은 인물은 아킬레스가 아니었습니다.


에릭 바나가 연기한 헥토르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올랜도 블룸이 연기한 파리스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파리스는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이 있는 헬레네와 사랑에 빠져서(혹은 헬레네를 납치해서) 트로이로 달아났기 때문에 그리스군과 트로이군 간의 전쟁이 발발했죠.

 

영화 <트로이>에서 파리스는 정말 찌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헬레네와 사랑에 빠져 도망친 주제에 뒷수습은 전혀 하지 않아요. 감당하지 못할 일을 저지르고, 싸움도 잘 못하고, 겁쟁이이기까지 합니다. 전형적으로 답답한 인물인데요. 이런 캐릭터가 저를 사로잡은 이유를 동병상련, 유유상종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랜도_블룸의_흑역사.avi

 

 

그래요


제가 생각해도 전 좀 소심하고 찌질한 구석이 있어요.  OTL


제 성격이 이 모양이여서 그런지 영화, 만화, 책 등을 읽을 때 이런 캐릭터들에게 감정이입이 됩니다. 자기변명인지 셀프힐링인지, 이렇게 답답한 소심남들도 자꾸 보면 예쁜 구석도 보이고, 정도 들고 하더라고요. 제가 감정이입하며 정을 준 캐릭터들, 혹시 궁금하신가요?

 

 

1. 만화 <심해어>의 토미오카

 

32세 모태솔로, 친구 하나 없는 야간 경비원. 만화 <심해어>의 토미오카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게다가 소심하기까지 해서 장난일 수도 있는 협박 쪽지에 전전긍긍, 이웃집 여자(하다)의 사랑 고백을 믿지 않고 의심만 하는 인물입니다. 평범한 삶을 살던 토미오카는 노숙자와 친해지면서 야쿠자에게 저금한 돈을 모두 바치기도 하고, 동료 경비원의 사랑 문제에 얽혀 살인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는데요. 이때에도 토미오카는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보통 사람보다 못한 모습을 보입니다. 마치 영화 <트로이> 파리스처럼요.

 

그런데 이웃집에 사는 매력녀 하다는 이런 토미오카에게 왜 반한 걸까요? 물론 이는 작가 후루야 미노루가 줄곧 선사해온 남성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시가테라><낮비> 같은 만화에서도 비슷한 판타지를 보여주었죠.) 하지만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사는 심해어같은 존재인 토미오카는 그 고립성 때문에 큰일이 닥쳤을 때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하다는 소심한 만큼 자신을 더 잘 알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토미오카의 모습에 반한 것은 아닐지요. 물론 비약입니다만.

 

토미오카는 이렇게 생긴 아저씨랍니다.

 

 

2. 윤종신의 <오늘>

 

 

 

    나 여기 있어요. 우리 약속한 자리.

     많은 시간 흘렀지만 난 기억해요. 바로 오늘 만나기로 했죠.

     이 자리에서 우린 헤어졌었죠.

     다가올 외로움에 불안해하며 우린 서로 걱정하며 이별 했죠.

     그리곤 약속했죠. 이맘때쯤이면

     편한 추억으로 남을 거라 하며 부담 없이 오늘 만나기로.

 

     그대 늦는군요, 그래요 이젠 외출 준비가 길어질 나이죠.

     내겐 그대 순수했던 모습뿐인데.

     오늘도 전처럼 창가에 있죠. 길게 늘어진 차들이 보이네요.

     천천히 와요. 그리 지루하진 않네요.

 

     혹시 잊었나요, 오늘 이 자리 그렇게 요즘 행복한가요.

     그 생각에 조금 서러워지네요.

     자 이제 그만 나 일어날게요. 그대 처음으로 약속 어겼네요.

     그런데 왜 내가 더 미안한 걸까요.

 

 

헤어지며 만나기로 약속한 날을 기억하고, 헤어진 장소를 기억하고, 전 여자친구의 나이를 가늠하며 달라졌을 모습을 추측하고,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는 걸 보며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결정적으로 내가 더 미안하다고 하고! 이 남자,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ㅎㅎ

 

하지만 윤종신의 가사에는 소심할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섬세하게 살피는 남자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이런 남자들이 기념일을 잘 챙기더군요.

 

 

3.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의 두현

 

류승룡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류승룡이 연기한 성기는 매력 넘치는 카사노바입니다. 아내 정인(임수정)의 성격을 참지 못한 두현(이선균)은 그런 성기에게 아내를 유혹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점점 성기에게 빠져드는 정인을 보면서 초초해하고, 아내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아내에게 이혼하자는 말을 못해서 꼼수를 부리고 아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려고 하자 갈팡질팡하는 이 남자, 정말 바보 같죠?

 

영화에서 일차적인 잘못은 아내의 성격을 참지 못하고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줄 것을 부탁한 두현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솔직하고 직설적이어서 상사 부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거침없이 말하고, 화장실에 있는데도 음료수를 마실 것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내라면 저라도 도망치고 싶을 겁니다. 두현이 정인을 이해했어야 하는 만큼 정인 역시 두현의 소심한 성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겠지요. 아무튼, 카사노바 성기와 독설녀 정인에 좀 가려지긴 하지만 소심남 두현 역시 정이 가는 캐릭터입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배려심도 가지고 있고요.  

 

소심하다는 공통점에도 제가 영화 속 이선균에게 심하게 감정이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선균처럼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소심남의 매력에 흠뻑 빠지셨나요? 아마도 글이 거의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여러분들께 소심남들을 여전히 찌질한 존재일 듯합니다이럴 때 자신만만하게 내세울 수 있는 자료가 있지요. 최근에는 소심함’, ‘숫기 없음’, ‘겁 많은과 같은 성향이 옹호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을 옹호하는 책을 소개하면서, 세상의 모든 소심한 사람들에게 파이팅을 날리면서 글을 마칩니다.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 내 안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공감과 위로의 심리학

 

이제까지 민감한 사람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이 특성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무시되어 왔다. 무엇보다 이들은 자신의 내적 성향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는, 가정, 학교, 직장 등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일란성 쌍둥이라 하더라도 한 쪽은 ‘매우 민감한 성향’을, 다른 쪽은 정반대의 성향을 타고 태어날 수 있듯이, ‘민감함’은 자신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어봐야 하는 성향이다.
이 책에서 일레인 N.아론은 다양한 실험 결과를 통해 민감함의 실체를 보여준다. 민감한 사람들의 가족, 친구, 연인 관계에 대한 분석, 상황별별로 다른 대처 요령 등을 통해서, 세상의 수많은 민감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겁쟁이가 세상을 지배한다

: 다윈의 자연선택론과 적자생존의 비밀

 

우리는 어릴 적부터 용기 또는 용감한 행동, 모험에 대한 도전 같은 말을 듣고 자랐다. 우리 중에 겁쟁이가 있으면 언제나 놀림 받고 소외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오늘날 정치적 현실을 고려할 때 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구하고자 하는 사회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러한 행위는 의미 없는 어리석음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만 잃게 할 뿐이다. 범죄에 가까운 이념이나 신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에는 지나치게 겁이 많은 사람들이야말로 오래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크며 이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위해 선행을 할 가능성도 많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겁쟁이를 예찬하며, 겁쟁이야말로 생물의 기본적 활력소라고 말한다.

 

 

 


 

- 런닝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