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_작가共방/최승아|오, 이런! 이란!

히잡, 벗기거나 씌우거나!

 

 

 

내 생애 첫 히잡은 검은 졸업 가운이었다.


 
 

이란에 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차, 내가 다름 아닌 이란에 가는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절차 하나가 있었다. 바로 이란 비자를 받기 위해 히잡을 쓰고 증명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경험이 있는 선후배들에게 수소문해보니 알록달록한 스카프보다 검은색이 좋다는 둥 머리카락이 나오지 않는 게 좋다는 둥 말들이 많았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얌전하게 보이는 게 좋다는 것.
 

학교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사정을 말하니, 아저씨는 정말 놀라운 제안을 했다. “졸업가운으로 찍으면 되겠네!” 그래. 졸업가운 정도면 차도르랑 비슷할 수도 있겠구나. 사실 또 차도르만큼 얌전해 보이는 게 없었다.
 

결국 난 카메라 앞에서 검은 졸업가운을 뒤집어썼다. 흘러내리지 않게 턱 밑쪽에서 졸업가운 자락을 한손으로 꼭 잡았다.


“어 그럴듯한데? 여기 카메라 봐 봐. 앞머리가 보이네! 조금 더 밑으로 내려 써봐. 어, 이제 됐네. 그대로 가만있어. 이제 찍는다.”


찰칵!


그렇게 졸업가운으로 시작된 내 히잡 인생은 이란에서 산 1년 8개월간 쭉 계속됐다. 이란에서 히잡을 쓰는 건 의무였고 자연히 히잡은 내 이란 생활에서 최고의 필수품이 됐다.


 
 

이란에서는 이란인이건 외국인이건 상관없이 히잡을 써야 한다. 이를테면 2007년 이란을 방문한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도 회색 스카프를 두르고 이맘 호메이니 공항을 나왔고, 푸른 스카프를 쓰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과 만났다. 만약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여성 총리가 이란을 방문한다면? 그녀도 스카프를 두르고 이란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 한마디로 배우건 외교사절이건 예외가 없다는 사실.


나 같은 경우 예외의 장소가 몇 곳 있긴 했는데 이란 속 한국, 재 이란 한국대사관과 내가 다니던 한국계 회사 사무실이 그곳이었다. 회사 같은 경우 난 이란 여직원들과 달리 출근하자마자 숄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곤 했는데 역대 한국 여성 근무자들은 다 그래왔던 터라 별 상관치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란인 세무사, 회계사 등 외부 손님이 오면 눈치 빠른 파라허니의 귀띔으로 서둘러 히잡을 써야 했다.


 
 

이란 여인들은 어떤 히잡을 두르고 살까? 일반적으로 무슬림 여성들이 몸을 가리는 베일을 통칭해서 히잡이라고 부르는데 히잡은 지역, 직업, 상황, 문화 나아가 환경과 기후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자연히 국가와 민족에 따라 명칭과 모양도 다르다.


이란 여인들은 주로 차도르, 숄, 루싸리, 마그나에 이 4가지의 히잡을 쓴다. 네 가지 히잡을 짧게 훑어보자면 우선 차도르는 얼굴만 쏙 빼고 전신을 다 가리는 히잡이다. 차도르라는 말도 이란어로 ‘덮는다’ 혹은 ‘천막’이라는 뜻이다. 보통 대도시보다 작은 도시나 마을여성들이 많이 쓰는 편이다. 딱 한 번 써 보았는데 편했지만 좀 무거웠다. 신비스러워 보이는 대신 행동에 다소 제약이 있다(특히 화장실 갈 때!). 이건 써보고 깨달은 사실인데 차도르를 쓰고 예쁘다면 그 여성은 정말 미인이라는 뜻이다. 차도르를 쓰는 순간, 유독 얼굴만 적나라하게 드러나니 말이다. 지금은 검은색 차도르를 많이 입는 편이지만 20세기 초반까지 차도르는 색상과 재질이 다양했다. 화려한 꽃무늬 차도르도 있었다고 한다.


숄은 목도리처럼 생긴 기다란 스카프인데 내가 애용한 히잡 종류다. 쓰기도 편하지만 머리 안 감았을 때 이것만큼 편한 게 없다. 그냥 두르고 나가면 되니까. ‘루싸리’는 이란어로 ‘머리에 쓰는 스카프’란 뜻인데 실크 재질의 사각형 스카프를 반 접어 머리에 두른 후, 목 밑에서 매듭을 짓는 식이다. 잘 손이 가지 않던 히잡 종류다. 조금 청승맞은 여인 느낌이 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마그나에’는 두건처럼 쓰는 머리가리개 스타일 히잡인데 마치 면사포를 쓰는 것처럼 뒤집어쓴다. 주로 여대생들, 사무직 여성들이 많이 쓰는데 좀 답답해 보이지만 써보면 의외로 편하단다. 세찬 바람에도 절대 벗겨지지 않는다는 독보적인 장점을 갖고 있다.


 

피런샤흐르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히잡 가게. 색깔과 패턴이 매우 화려하다.

 

 

 

나의 단골 히잡 가게. 히잡과 어울리는 의상 및 소품들을 세련되게 전시해두었다.

 

 

 

히잡 착용은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 이듬해인 1980년에 의무가 됐다. 당연히 이를 어길 경우 대가가 따른다. 그리고 대가를 치러보면? 그게 의무임이 바로 와닿는다. 내 친구 터헤레의 고향, 털레쉬에서 그걸 피부로 느꼈다.
 

“저기, 여권 좀 보여주세요.”


털레쉬 거리에서 터헤레와 명절 장을 보고 있던 차, 갑자기 차도르 차림의 여인이 나타나 말했다.


‘응?’
 

본능적으로 머리에 손이 갔다. 그런데 이게 뭔가.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아뿔싸! 히잡이 벗겨진 것이다. 당시 내가 쓴 건 한국산 후드 니트였는데 헐거운 통에 흘러내렸던 것.


옆에 있던 터헤레가 얼른 날 대변하고 나섰다.
 

“얘는 제 친구에요. 한국에서 왔구요. 노루즈라 여기 놀러온 거에요.”


“안돼요.” 차도리(차도르를 입은 여자를 가리키는 말)는 단호했다. 화장기 없는 민낯이 어찌나 단단해 보이던지.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내일 오후 2시까지 여권 가지고 여기로 오세요.” 애초부터 히잡을 안 쓴 게 아니었다. 잠시 흘러내렸을 때 걸린 것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터헤레는 말했다. “아직도 작은 도시에선 이렇게 히잡 단속을 엄격하게 한다니까.” 그러다 날 위로하고자 했는지 조용히 속삭였다. “걱정 마. 아무 일 없을 거야.” (다행히 터헤레 형부 인맥으로 별 일은 없었다.)
 

이란 거리에선 만약 히잡을 불량하게 쓴 경우, 이를테면 히잡을 헐렁하게 썼다거나 그 사이 보인 머리 색깔이 과도하게 밝을 경우 운 나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내 경우처럼 스윽 나타나는 종교경찰(종교경찰은 녹색 제복을 입은 남성 경찰, 차도르를 입은 여성 경찰 두 부류가 있다.)에게 훈계를 듣거나, 경찰차에 탄 채 교육시설로 옮겨져 ‘재활 교육’을 받기도 한다. 대체로 당일 풀려나는 편이긴 하다. 만약 히잡을 쓰지 않는다면? 그렇게 간 큰 사람도 별로 없지만, 당장에 잡혀갈 수밖에 없다.
 

 
 

이란에서는 왜 히잡 착용을 의무로 정한 것일까? 이는 이란이 이슬람 법도에 따라 운영되는 이슬람 공화국이기 때문이다. 하긴 이슬람의 상징물로 히잡만큼 눈에 띄는 것도 없다. 그렇다면 이슬람에선 왜 히잡을 강조하는 걸까?
 

나도 그랬듯 대부분 이슬람이 가장 처음 여자들 머리에 베일을 씌운 종교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베일은 고대부터 내려오는 중동지방의 전통이었다. 베일 탄생과 발전의 역사를 보면 흥미롭게도 남성의 힘 그리고 고대 국가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성의 몸을 통제해 남성들 간 분란을 막고 가부장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안정된 국가를 만들기 위해 여성에게 베일을 씌웠다는 것이다. 아무튼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중동에서 탄생한 종교들은 자연히 이런 베일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됐는데 이 세 종교 중 이슬람교가 처음 베일을 의무로 만든 탓에 오늘날까지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사실 이슬람 초기엔 무함마드 부인들만 엄격하게 히잡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곧 무함마드 부인을 신봉하는 상류층 여인들과 피지배층 여인들 사이에 히잡이 트렌드가 되었고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외에도 무함마드 둘째 부인 아이샤(히잡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의 성 스캔들 때문에 혹은 당시 습격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보호 차원에서 히잡이 의무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이런 여성 억압의 역사를 가진 탓에 베일은 천 자락 하나에 수많은 담론을 품게 됐는데, 특히 근대에 들어 서구에 의해서는 미개와 후진성의 척도로 이슬람권에 의해서는 이슬람 건재의 증표로 인식됐다. 이런 대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게 바로 이란이다. 알고 보면 지난 20세기 이슬람권 국가 중 히잡에 대해 이란만큼 이랬다저랬다 한 곳도 없다.


1935년, 이란 팔레비조의 레자샤는 돌연 히잡 금지령을 내린다. 서구문명에 도취된 그의 눈에 히잡은 구닥다리와 식민지의 상징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는 닥치는 대로 히잡을 벗기고 또 벗겼다. 히잡 금지령이 강력했던 1935년~1941년, 히잡을 쓴 이란 여성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상점에서 물건을 살 수도 없었다. 더구나 군인들에게 적발되면 히잡은 그 자리에서 갈가리 찢기고 말았다.


그 뒤 얼마간, 히잡은 선택의 영역에 속했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상황은 1935년과 정확히 정반대가 됐다. 히잡은 다시 이슬람의 상징이 되었고, 온갖 종류의 히잡이 이란 여성들 머리 위에 씌어졌다. 혁명 직후에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은 실직, 체벌, 신체적 공격 뿐 아니라 사회적 따돌림도 겪어야 했단다. 심지어 재활 캠프에 입소하라는 위협까지 받았다고 한다.
 

1935년의 히잡 금지령과 1980년의 히잡 의무화. 45년을 간격으로 이렇게 상황이 뒤바뀌다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는 나라의 상황과 정치적 해석에 따른 ‘강제’였다. 여성들의 ‘선택’이 아니고. 히잡을 쓰는 이들은 바로 그녀들인데 말이다.
 

 


시간이 흐른 21세기, 2010~2011년 이란. 평범한 이란 여성이었던 친구들은 히잡을 어떻게 쓰고 있었을까? 내가 보건대, 히잡으로 비유하자면 그 매듭이 조금 느슨해진 느낌이었다.


어느 날 외출 준비를 하고 있는데 터헤레가 내게 바짝 얼굴을 들이밀더니 이렇게 말했다.
 

“승아, 옆머리 좀 빼. (히잡으로)다 가리지 말고!”


난 바로 대꾸했다. “응? 난 이렇게 쓰는 게 좋은데?”
 

터헤레는 들은 채 않고 내 옆머리를 숄 바깥으로 빼냈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 훨씬 예쁘잖아.”
 

친구들은 보통 긴머리일 경우 머리를 감아올려 골레 싸르(머리의 꽃이라는 뜻이다.)라고도 불리는, 풍성한 꽃술이 달린 헤어클립으로 머리카락을 고정시킨 후 숄을 썼다. 헤어클립은 숄이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고 뒷모습도 볼륨감 있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는 전체 머리의 3분의1이 드러나도록 숄을 썼다. 숄을 썼다기보다는 봉긋해진 머리에 숄을 걸쳤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그녀들은 히잡이 젖혀지면 젖혀질수록 자신들이 더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하긴 힘들여 염색한 머리, 파마한 머리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오죽 답답할까. 최대한 히잡을 젖혀 쓰는 것은 그녀들의 존재 표현 욕구임에 틀림이 없었다.


더불어 히잡 매무새가 꼭 신실함을 대변하는 건 아니 었다. 히잡을 얌전히 쓰던 터헤레는 꾸란 방송을 보고 꾸벅꾸벅 졸았으며 예배는 단 한 번도 드리지 않았다. 반면 히잡을 있는대로 젖혀 쓰던 거세미는 꼬박꼬박 예배를 드렸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노란 염색 머리 친구는 어느 날 차도르를 입고는 이렇게 말하지 뭔가. “난 가끔씩 차도르 입는 게 좋더라.” 하긴 신실함이란 마음의 상태이지 겉으로 드러난 옷매무새의 상태가 아니다.

 

 

 

머리칼을 보이기 위해 히잡을 불량하게 젖혀 쓴 나의 친구들. 한껏 멋을 낸 모습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내 이야기를 해 보자면, 히잡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 별 불편함 없는 일상용품이 되어 갔다. 동시에 예전에 가졌던 히잡의 ‘억압’ 이미지는 뱀 허물 벗듯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히잡이 그런 면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매일 쓰고 벗기 바빴기 때문이다. 적응이 될수록 내 히잡은 그야말로 진화해 갔는데 이란 생활 초기, 어색하고 칙칙하던 히잡은 시간이 지날수록 내 머리에 착 달라붙어 색깔과 무늬도 화려해져 갔다. 숄 쇼핑이 큰 기쁨이었을 정도로 히잡은 내게 패션 아이템이 돼버린 것이다.
 

변한 건 또 있었다. 이란 여성들을 보면 점점 히잡보다 히잡 속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히잡 종류에 상관없이 웃고, 졸고, 과식하고, 떠드는 다채로운 그녀의 얼굴들이 말이다. 예전엔 날 때부터 히잡을 쓴 것처럼 그녀들을 다 똑같이 생긴 ‘무슬림 여성’으로만 보곤 했으니.
 

점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혁명 전처럼 히잡을 선택에 맡기더라도 쓸 사람은 쓰지 않을까.’ 나부터도 그럴 것만 같다. 이란 역사도 그걸 보여주고 있고. 그리고 선택에 맡겨도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쓴다면 그게 더 이슬람의 힘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이란을 떠나기 전, 회사 동료 한 명은 내게 이런 작별 인사를 건넸다.


“3년 후쯤 이란 오면, 아마 히잡 안 써도 될 걸? 그 전에 분명 혁명이 일어 날거야”

 

"정말?"

 

나는 기쁜 듯 답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난 히잡이 싫지 않은데? 혁명이 일어나더라도, 쓰고 싶으면 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