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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최승아|오, 이런! 이란!

전 국민적인 스모커들

 

 

 

 

 

 

어느 날 우연히 회사 여직원들의 흡연 현장을 목격했다. 그녀들은 색색깔의 스카프를 두른 채 사무실 밖 혹은 비상구 계단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다. ‘, 이란 여자들도 담배를 피우는구나!’

 

이란 여성이 담배 피우는 걸 상상해 본적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아직 여성 흡연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마당에 담배 피우는 이란 여성의 모습이라.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내 생각에 차도르를 입은 성스러운 이란 여인의 손가락에 담배는 당치도 않았던 것이다.

 

이란에 와보니 남성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담배 피우는 여성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히잡을 쓴 이란 여인들은 노천카페에서 우아하게 담배를 물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란 곳곳을 두루 다녀보니, 시골 여성보다는 도시의 여성 흡연율이 높은 듯했다. 궁금했다. 술도 마시지 못하게 하고 히잡 착용을 강요하면서 왜 담배는 피우도록 허용하는 걸까?

 

무슬림 흡연자들은 운이 좋다. 이슬람 율법은 흡연을 직접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모양이다. 코란엔 담배에 관한 언급이 아예 없단다. 추측컨대 무함마드가 살아있던 당시 중동 지역에 담배가 아직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흡연 풍습이 스페인 선원들에게 전해지면서 담배가 유럽 사람들에 의해 전 세계로 퍼진 건 16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 땐 무함마드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반면 베일과 술은 당시에도 존재했던 터라 코란에 등장하게 된 것이고. 이란도 명색이 이슬람공화국인 터라 종교를 근거로 담배를 금지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담배는 1860년대에 처음 이란에 들어왔다. 러시아와 터키로부터였다. 초기엔 유럽 신문화를 좇던 부유층이 주로 담배를 피웠지만 이후 하층민들까지 흡연의 마력에 빠져 흡연율은 천정부지로 증가했다. 현재 이란인들이 한해 피우는 담배는 약 600억 개피에 이른다고 한다. 돈으로 환산하면 약 18억 달러에 달하는 수준. 한국인은 한해 약 900억 개피 정도를 피운다고 하는데 인구비율(한국은 약 5,000, 이란은 약 8,000만 명 수준이다)을 고려하면 이란인들이 한국인들보다 적게 피우는 편이긴 하지만 비슷한 수준이라, 이란인들도 한국인들처럼 엄청나게 담배를 피워대는 셈이다. 이란도 우리나라처럼 여성 흡연 증가율이 남성 쪽보다 훨씬 높은 모양이다. 이란 여성들은 하루 평균 6개피의 담배를 피운단다.

 

이란 사람들은 왜 담배를 많이 피울까? 밀수 방지 차 점점 싸지는 담뱃값 때문일까. 능력 있고 독립적인 여성이 늘어나서? 혁명 후 경제 위기로 살기 힘들어진 것 때문에? 다 맞는 말이다. 전 세계 어디나 그렇든 담배에 관한 미디어의 이미지 폭격도 한 몫을 하고 있고. 그런데 놀라운 건 아이와 청소년을 제외한 이란사람들 모두 전 국민적인 스모커였다는 사실이다. 꽁초담배 이전부터 흡연은 이미 이란에서 만연한 문화였다.

 

 

 

 

기다란 호리병 모양의 물담뱃병. 병의 꼭대기에는 벌겋게 달궈진 숯을 올렸다. 숯 아래엔 담뱃잎이 있다.

 

 

 

물담배 피우러 갈래요?”

 

5월 따뜻한 봄날, 테헤란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우연히 이란 친구 서러와 후리를 만났다. 그녀들은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느닷없이 물담배를 피러 가자고 했다. 차로 한참을 갔던 기억이 난다. 담배 하나 피우러 이렇게 멀리까지 간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호기심에 잠자코 그들을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이름 모를 산 중턱의 낡은 식당. 식당에는 음식과 물담배를 만드는 작은 건물이 있었고 건물 바깥엔 카펫이 깔린 평상이 여러 개가 놓여 있었다.

 

흐르는 물가 근처에 자리를 잡은 뒤, 두 여인은 알아서 민트향, 사과향 물담배를 주문했다. 조금 뒤 거대한 호리병 2개와 차, 대추야자가 평상에 놓였다.

 

처음 본 물담배는 마치 목 부분을 길게 늘인 호리병 같았다. 물이 담긴 병 중간쯤에 긴 호스가 달려 있고 병 꼭대기엔 벌겋게 달구어진 숯이 놓여 있었다. 흰 플라스틱 꼭지도 나눠 주었는데, 각자 이 꼭지를 호스에 끼우고 피우라 했다. 한 호스로 돌아가며 피워야하니 청결하게 피우려는 처사였다.

 

서러와 후리가 피우는 걸 보고 나도 있는 힘껏 호스를 빨아 당겼다. 꼭 멋지게 연기를 내뿜고 말리라. 긴장하며 훅 내뿜었는데, 순간 두 이란여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 승아 잘하는데요?” 같이 간 한국 친구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너 마치 한 마리의 용 같다.” 내가 연기를 뿜는 모습이 마치 불을 뿜는 용 같았다는 거다.

 

물담배는 페르시아어로 갤리운(قلیان)이라고 부르는데, 갤리운의 흡연 방법은 실로 간단하다. 긴 호스 끝을 물고 물이 보글보글 거품을 낼 때까지 쭉 들이 마신 뒤 뽀얀 연기를 뱉으면 끝이다. 호스를 흡입하면 바깥에서 빨려들어온 공기가 숯을 통과하면서 뜨거워지고, 뜨거워진 공기가 담배(숯 깔린 은박지 밑에 담배가 있다)를 덥혀 연기를 만드는데 이 연기가 물을 통과하면서(이 때 거품이 난다) 차가워진 후 흡연자의 폐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식이다. 물담배를 피우면 보통 힘 좋은 남자가 먼저 연기 제조에 들어간다. 초기에 물담배를 힘차게 빨아 시원하게 물거품을 내주어야 연기가 잘 나서 여성들도 피우기 편해진다. 중간 중간 연기가 나지 않으면 다시 힘 있는 남자들이 출동하는 식이다.

 

사과향 민트향 연기가 카펫 위에 자욱한 물안개를 피어냈다. 흐르는 물소리, 머리칼과 옷자락을 흔드는 바람, 향긋한 차와 함께 물담배를 피우는 건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다. 4명 모두 콧구멍과 입술 사이로 뽀얀 연기를 계속 뿜어냈다. 서러와 후리는 수줍어하면서도 물담배를 곧잘 피웠는데 둘 다 워낙 예쁘장해서인지 자욱한 연기 속 그녀들이 마치 하렘 속 신비로운 페르시아의 여인들처럼 보였다. 그녀들은 꽁초 담배는 한 번도 피워보지 않았다고 했다. 꽁초 담배 연기보다 몇 배나 많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페르시아는 16세기 유럽으로부터 담배를 받아들인 뒤 매우 독특한 방식인 담배를 만들어 발전시켜 나갔다. 물담배는 물로 연기를 식혀서 피우는 식이라 뜨거운 중동 지역에 꼭 알맞았다. 한국에까지 물담배 기구를 사 들여오는 한국인들이 종종 있는데, 이상하게 한두 번 피우다가 잘 안 피우게 된단다. 물담배와 궁합이 맞는 곳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당시엔 담뱃잎 외에도 허브 잎사귀, 향신료, 백단을 혼합해 피우기도 했는데 현재 물담배 종류(민트향, 사과향, 허브향 등)가 다양하게 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물담배는 17세기 사파비 왕조 때 널리 퍼졌다. 당시엔 무려 학교에서까지 물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 그것도 수업 중에 말이다. 뽀끔뽀끔 연기를 뱉으며 책을 보는 학생들과 연기로 자욱한 수업 풍경이라.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물담배가 널리 퍼지자 물담뱃병 또한 화려해져 갔다. 유리와 도자기로 만들기도, 글자나 그림을 새기기도, 은으로 만든 체인을 걸기도 했다. 부유층들은 금과 은으로 만든 물담뱃병을 썼을 정도다. 17세기 후반엔 나라 전체가 물담배 중독 상태에 이르렀고, 당시 왕은 물담배 전담 하인까지 둘 정도였단다. 18세기의 술탄 후세인은 해외 방문 중 마차 안에서조차 물담배를 좀처럼 입에서 떼지 않았다는 재미난 기록도 있다.

 

현재 이란에서는 물담배를 주로 실외 식당이나 찻집 안에서 피울 수 있다. 테헤란 남부 거리를 걷다 물담배의 향연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풍경이 참 기묘했다. 낡고 좁은 찻집이었는데 두세 개 테이블 양쪽에 사람들이 죽 앉아 물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빽빽하게 놓인 물담뱃병과 넝쿨 같은 호스를 물고 있는 사람들. 그들 모두 기다란 호스로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처럼 보여 흡사 SF영화를 보는 듯했다. 한 한국 친구는 깡마른 이란 할아버지가 몇 시간 동안 물담배만 피우며 멍하니 앉아있는 걸 본 적이 있단다.

 

 

 

   

 

내 친구 미나의 고향인 보주누르드 집 마당에서. 미나 엄마와 아빠가 다정히 물담배를 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친구 미나, 미나 오빠 부부가 함께했다.

 

 

 

전 국민적인 흡연경력 탓일까. 이란은 현재 담배와의 전쟁 중이다. 담배로 인한 피해가 큰 모양이다. 매년 6만여 명의 이란 사람들이 직간접흡연으로 사망하고 있단다. 이란은 특단의 조치를 꺼냈다. 2007년판 담배 조정법은 호텔, 식당, 찻집, 공공건물에서의 흡연을 금지하고 있다. 잘 지켜지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이란 젊은이들 60퍼센트가 이런 곳에서 담배를 처음 접한다나. 담뱃갑 앞뒤에 흡연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장기의 사진을 내걸고, ‘mild’, ‘light’ 등의 담배 등급 게시도 의무로 만들었다. 금연 구역을 늘리고 담뱃값 인상을 추진하는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런데 어쩌나. 꽁초 담배보다 물담배가 더 몸에 나쁘단다. 물담배가 향긋하고 청정한 담배라고 생각했더니 아니었다. 하긴 숯 밑에 놓인 것은 어찌됐든 담배. 사실 물담배가 건강에 더 나쁜 건 바로 흡연 시간과 횟수 때문이다. 물담배를 피우면 보통 30분 이상은 기본으로 피운다. 돈을 주고 물담배를 시키는데 한 모금 피운 다음 돌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연기를 흡입하는 탓에, 꽁초 담배를 피울 때보다 최소 100배 최대 200배 많은 연기를 흡입하게 된단다.

 

정작 나부터도 좋지 않은 테헤란 공기에 쉬지 않고 물담배 연기마저 보태고 말았으니. 산 속에서 엄청난 연기를 뿜으며 느긋함을 즐기기도 했고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페르시아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두 손으로 수줍게 물담배를 피던 난 어느새 한손으로 호스를 들고, 꽁초담배 피우듯 연기를 훅훅 뿜어내고 있었다.

 

혹자는 연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거룩하면서도 실재하고, 현실이면서도 환상적이며 현존하면서도 초월적인 존재라고. 좀 과한 표현인 듯하지만 물담배 타임을 떠올려보면, 그 순간이 신비롭게 느껴진 건 다 연기 덕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16세기 담배가 단 수십 년 만에 전 세계로 퍼진 것도 연기를 마시고 내뿜는 행위, 즉 흡연의 매력 때문이었다. 의 기쁨과 위안이 그만큼 대단한 모양이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담배의 힘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도 어쩌면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란을 떠난 지 3개월 후인 201111, 이란에서 담배에 관련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이란 법원이 전통 음식점과 찻집 안 물담배 흡연을 전면 금지했는데, 2주 만에 당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찻집만큼은 예외로 하자는 법안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알고 보니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집권 초기인 2005년부터 담배를 금지하라는 압력을(담배를 퇴폐적인 활동으로 본 보수층으로부터) 받아왔는데 2007년판 금지법 이후에도 물담배만큼은 계속 허용해 온 모양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표심을 고려한 노림수라는 분석이 많았다. 내 생각도 그렇다.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거다. 오랜 세월동안 즐겁게 연기를 뿜어 온 이란 사람들의 손에서, 특히 이란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젊은이들의 손에서 물담배를 뺏는 게 본인에게 얼마나 불리한 일인지를 말이다. 지금  새로운 금연정책이 한창인 한국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담배 한 개피에 표심이 오가는 이란이 새삼 색다르게 보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