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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최승아|오, 이런! 이란!

카펫, 어찌됐든 꿰매지는 인생

 

 

 

발수건이 필요 없었다. 바닥에서 자도 등이 따뜻했다. 물 흘려도 닦을 필요가 없었다. 맞다. 바퀴벌레도 압사된 채 발견됐다. 불쌍한 녀석들. 이건 다 카펫, 카펫 덕분이다.

 

 

이란의 모든 집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다. 처음 살던 집 방에도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다. 말 그대로 레드카펫. 늘 장판 바닥만 밟고 살아온 내게 카펫의 푹신한 감촉은 정말이지 이란에 있다는 걸 실감케 했다.

 

한국에선 카펫은 가을이나 겨울용이다. 여름엔 카펫을 걷어내고 맨 바닥을 밟거나 대나무 장판을 깐다. 두꺼운 카펫은 보기만 해도 더우니까. 반면 이란의 모든 가정집에는 사시사철 카펫이 깔려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수많은 이란 가정집을 다녔는데, 아무리 거실이 넓어도 여러 장의 카펫을 깔아 거실을 채웠다. 우리처럼 바닥 한복판에 달랑 한 장 까는 식이 아니었다. 카펫은 이란에서 장식품이 아닌 바닥 장판, 곧 실용품이었다.

 

기숙사라고 다를 수 있나. 기숙사방 바닥 역시 카펫으로 채워져 있었다.

 

헉헉.”

 

어느 무더운 날이었다. 기숙사 아이들 몇 명이 분주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카펫 빨래를 하는 모양이었다. 거대한 카펫을 마당 가득 펼쳐놓고 호스로 카펫이 흥건히 젖도록 물을 뿌렸다. 가루 세제를 뿌리고 솔로 거품이 나도록 카펫을 벅벅 비벼댔다. 솔질 후 깨끗이 헹궈 난간에 널고 나서야 카펫 빨래는 끝이 났다.

 

보아하니 카펫 빨래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하긴 가끔씩은 이렇게 해 줘야만 했다. 친구들 모두 매일 카펫 위에서 생활했으니까. 우선 하루 세끼를 대부분 카펫 위에서 먹었다. 아무리 소프레(이란에서 식사할 때 바닥에 까는 테이블보)를 깔고 먹는다 해도 차이의 붉은 물과 음식물이 조금씩은 튀었다. 밖에서 들어온 먼지, 각종 부스러기들도 카펫 속에서 퇴적층을 이루고 있을 터였다. 비록 티는 잘 안 났지만.

 

이런 탓에 나도 자연스레 구입한 게 하나 있었다. 노란 벌레 모양의 카펫 청소기였다. 물론 수동 청소기였다. 벌레 배 안에 흰 솔이 들어있었는데 이 솔이 카펫 위 먼지와 머리카락을 쑥쑥 잡아냈다. 노란 벌레의 배로 카펫 위를 쓱쓱 문지르면 아무리 더러운 카펫도 금세 말끔해졌다.

 

 

  

 

넓은 거실에 카펫을 깔아놓은 이란의 가정집 풍경. 오른쪽 사진은 친구 오빠의 신혼집 모습인데 역시 카펫이 빠지지 않는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알라딘>에서만 보던 양탄자를 매일 밟고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매일 밟고 다닌 카펫은 사실 페르시아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알만큼 유명한 편이다. 페르시아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게 고양이와 이 카펫이 아닐까. 알고 보면 카펫은 이란인들에게 복덩어리 그 자체다. 그 얘기를 하기 전 우선 페르시아 카펫에 대해 잠깐 얘기해 볼까.

 

카펫은 사실 한국 같은 카펫 수입국에겐 비싼 고급품이지만 이란에서는 일상용품이다. 카펫을 처음 썼던 유목민들에겐 중요한 필수품이기까지 했다. 사막의 거친 모래바람, 낮엔 덥고 밤에 추운 기후를 버틸 수 있는 건 두껍고 질긴 카펫뿐이었다. 카펫은 텐트의 문이 되기도 바닥 장판이 되기도 했다. 말의 안장에도 쓰였다.

 

카펫을 누가 언제 처음 만들었는지는 미스터리지만, 가장 오래된 카펫은 남시베리아에서 발견된 파지릭 카펫이라고 한다. 놀라운건 이 카펫이 이란산일 확률이 높단다. 카펫 문양이 아케메니아 페르시아 시절 의 문양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역시 이란은 카펫의 본국인건가.

 

이란에서는 카펫을 펼치다라는 뜻의 이란어 파르시(farsh)’라고 부르는데 이란은 정말 이 파르시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우선 이란은 전 세계에서 카펫을 가장 많이 만들고, 가장 많이 파는 나라다. 전 세계 카펫 시장의 41% 규모란다. 고용효과도 크다. 카펫 산업에만 500만 명이 종사하고 카펫 직공들은 120만 명에 달한단다. 카펫 하나가 600만 명 이상의 밥그릇을 책임지고 있는 셈. 무엇보다 재밌는 건 카펫이 비 석유 제품으로는 이란 최대의 수출품이라는 점이다. 카펫으로 인한 이란의 이미지 메이킹 효과도 있다고 하는데, 예컨대 재미(在美) 이란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에 때론 페르시안입니다.”라고 대답한단다. 말이 불러오는 이미지 때문이다. ‘이란이 테러, , 이슬람을 연상시키는 반면, ‘페르시아는 온순한 페르시아 고양이와 함께 화려한 페르시아 카펫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란인들은 카펫으로 페르시아 문화에 대한 자긍심까지 느낀다고 하니, 이란 사람들 뿐 아니라 이란이라는 거대한 나라 자체도 푹신한 카펫 위에 앉아 있는 셈이다.

 

 

 

 

 

 

 카펫 박물관에 전시된 화려한 카펫들. 이란 사람들은 카펫의 풍부한 문양과 색감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와 삶을 기록했다. 

 

 

 

많은 연구자들은 카펫의 발전과 절정을 이룬 곳도 페르시아, 즉 이란이라고 보는데, 페르시아 카펫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테헤란 한복판에 있다. 바로 카펫 박물관이다.

 

1977년 지어진 박물관 건물은 수직으로 세워 놓은 거대한 베틀을 닮았다. 이란의 마지막 왕비 파라가 건물 디자인을 했단다. 그런데 건물이 정말 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카펫이 정말 엄청나게 크다. 이란의 주요 카펫 생산지 케르만, 커션, 에스파한, 타브리즈, 콤의 17세기 이후 카펫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각 지방마다 디자인과 색깔이 조금씩 달랐다. 듣기로는 케르만 산 카펫이 가장 질 좋고 우수한 카펫으로 알려져 있단다.

 

기원전 5세기 이전, 페르시아에서 카펫은 그냥 바닥 깔개였다. 아무도 카펫을 예술품으로 보지 않았다. 카펫을 실용품에서 예술품으로 도약시킨 주인공은 아케메니아 제국(BC 550~BC 330) 키루스 왕이었다. 그는 바빌론을 정복(BC 539)한 후 자신의 승리를 뽐내기 위해 카펫을 공들여 만든 후(아마도 카펫에 영광스런 승리의 장면을 묘사했겠지?)만천하에 공개했다. 카펫이 단순한 바닥장판에서 질기고 튼튼한 예술과 역사의 판본이 된 건 키루스 왕 덕분인 셈이다.

 

17세기 이전 카펫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고 그나마 기록이 남은 카펫은 대부분 사산조 페르시아 시절 카펫이다. 그 중 호스로우 1세의 봄의 카펫이 유명한데 이 카펫은 그야말로 화려함의 절정이었던 모양이다. 페르시아의 정원 풍경을 묘사한 이 카펫은 흐르는 물줄기를 투명한 보석들로 잔디밭을 에메랄드로 꽃과 꽃봉오리, 열매를 각각 루비, 에메랄드, 진주, 터키석으로 표현했단다. 얼마나 화려하고 눈부셨을까. 아랍 침략 기간, 군인들에 의해 산산조각 난 채 세상에 흩어졌다고 하는데 참 아쉬울 뿐이다.

 

이슬람이 도입 후엔 아라베스크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고, 투르크족인 셀죽조의 지배 후엔 터키 매듭방식으로 카펫을 만들기도 했다. 16세기 사파비조 때 카펫은 드디어 황금기에 도달했는데, 이 때 카펫이 본격적으로 예술(서적장식: 서예, 제본, 채식, 세밀화)과 합쳐졌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카펫은 주로 일반인들이 만들었고 화가들은 북 디자인을 담당했는데, 사파비조 당시 화가들이 카펫 디자인까지 맡게 되어 북 디자인 기술을 카펫에 모조리 쏟아 붓게 된 것이다. 압바스 왕은 왕실 직속 카펫 공장까지 만들어 카펫 장인, 화가, 시인들을 모아 놓고 시와 예술을 수놓은 카펫을 만들게 했단다. 그러나 아프간 침공(1722)으로 황금시대는 끝이 나고 이후 카펫 산업이 부활한 19세기 후반 이전까지, 카펫기술은 유목민과 마을 직공들에 의해서만 전승되었다.

 

카펫은 박물관 바닥보다 주로 벽에 걸려 있었는데 수직으로 걸어놓으니, 카펫의 거대함과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색깔과 무늬의 바다! 눈과 코를 박고 실 한 올 한 올 무늬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니 마치 멸치 꼬리를 잡고 거대한 대양을 헤엄치는 것만 같았다. 다 손으로 짰다고 하는데 거참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었을까.

 

 

 

카펫 완성 중인 수직 베틀을 찍은 사진

 

 

카펫 짜는 법은 간단하다. 베틀에 팽팽하게 걸려있는 날실에 씨실을 한 올씩 휘감아 매듭을 지으면 끝이다. 문제는 이 행동을 수천 혹은 수만 번 반복해야 된다는 것. 그것도 하루 종일 앉아서 말이다.

 

반복해서 매듭만 지으면 끝일까? 그렇지 않다. 몇 줄의 매듭을 완성하면, 들쑥날쑥한 매듭 묶음을 커다란 가위로 잘라 다듬고 매듭이 단단해지도록 철빗으로 날실 사이사이를 두드려 주어야 한다. 이런 탓에 카펫 한 장이 완성되는 덴 최소 몇 개월 최대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는 카펫을 보면 오랫동안 카펫을 들여다보았을 , 통증을 참아냈을 어깨가 보인다고 했다. 짜는 과정만 그런가. 색색의 실들도 다 손을 거친 것들이다.

 

이란 영화 <가베>(한 여인이 가베 -페르시아 카펫의 한 종류- 에 얽힌 가족과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의 영화다.)를 보면 실 만드는 과정이 자세하게 나온다. 한 남자가 양을 힘주어 붙잡고 가위로 풍성한 양의 흰털을 잘라낸다. 여인들은 이렇게 모은 양털을 일일이 꼬아 흰 실로 만든 뒤, 실 꾸러미들을 꽃잎을 끓여 만든 노랑, 파랑, 빨강 염색물에 물들여 바람과 햇볕에 말린다. 그야말로 손에서 시작해 손에서 끝나는 고된 일이다.

 

카펫 직공들은 대부분 여인들이라고 한다. 그것도 자신이 짠 카펫을 사기는 힘든 가난한 여인들 말이다. 그녀들은 보통 어렸을 때부터 카펫 짜는 법을 배우는데, 카펫 짜는 게 워낙 고된 일이라 보통 그룹을 지어 카펫을 짜고 노래를 부르며 짜기도 한단다. 헌데 그녀들의 일이 어찌 카펫 짜기만 있을쏘냐. 집안일을 서둘러 마무리한 후 아침부터 저녁까지 카펫을 짜는 식이다. 아기가 있으면 아기를 등에 업거나 무릎에 눕힌 채로. 그녀들은 매일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앉아 실을 당기고 매듭을 두드렸겠지? 그러고 보면 카펫 속엔 실과 함께 여인들의 기쁨, 슬픔, 푸념, 상상, 노래가 촘촘히 박혀 있을 것이다.

 

<가베>엔 아주 먼 옛날 카펫은 이렇게 만들었겠구나, 느끼게 하는 장면도 나온다. 등장인물인 카쉬카이 유목민들은 영화 속에서 눈으로 보고 경험한 것들을 카펫에 새겨 넣는다. 이를테면 산, 태양, 들판, 냇가, 동물, 사람들 등등. 마치 실로 이야기를 짓듯 말이다. 지금도 유목민들은 도안이 아닌, 기억과 구술을 통해 부족의 고유한 패턴을 전수한다고 한다. 엄마와 딸이 옛날 얘기하듯 말을 주고받으며 함께 카펫을 짜는 식으로. 알고 보면 직조 행위는 그리스 신화 등 전 세계 다양한 신화 속에서도 이야기 만드는 것을 상징한단다. 이를테면 그리스 신화 속 베 짜는 여인 아라크네는 실을 도구 삼아 신들의 이야기를 직물에 새겨 넣었으며, 운명의 여신 클로토는 운명의 실로 한 인간의 삶, 곧 이야기를 직조해 냈다.

 

유목민들의 카펫에 새겨진 이야기처럼 메달리온, 미흐랍(모스크 안, 메카 방향을 표시하는 구조물), 꽃병, 정원, 생명의 나무, 그림 등 페르시아 카펫 위의 다양한 무늬 또한 마찬가지다. 이것들 역시 페르시아의 신화, 종교, 예술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다. 고로, 이란 각지의 수많은 카펫들은 오랜 세월을 거슬러 우리에게 풍부한 페르시아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는 셈이다.

 

 

 

한 올 한 올 카펫을 짜듯, 우리도 하루하루를 산다. 삶과 카펫 모두 절대 건너 뛰어 살수도 짤 수도 없다. 둘의 원리가 이토록 닮은 통에 카펫에 삶을 빗댄 은유들이 실처럼 줄줄 풀려 나오나 보다. 예컨대 이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은 마치 케르만 카펫 같아요.”

 

이란사람들이 나이든 여인을 두고 쓰는 표현이란다. 더 많이 밟힐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케르만 카펫처럼 사람도 세월이 흐르고 고통을 겪을수록 더욱 아름다워진다고 말하는 셈이다. 실제로 이란의 카펫 시장에서는 갓 짠 카펫을 거리에 깔아놓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한다. 놀랍게도 밟을수록 카펫 색깔이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발견한 카펫의 흠집도 그랬다. 처음 흠집을 발견한 순간엔 느낌이 묘했다. 영락없는 인간이 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진짜 수제품이라는 생각에 카펫이 더 경이롭게 보이기도 했다. 알고 보니, 페르시아 사람들은 카펫을 짤 때 일부러 미세한 흠집을 만든단다. 완벽한 신의 솜씨와 경쟁하길 원치 않아서다.

 

하기야 굳이 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흠은 삶에서도 카펫에서도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흠집을 보며 카펫에 닿은 손길을 짐작해 냈듯 우리도, 삶도 흠으로 인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 아닌가. 삶도 카펫처럼 흠집이 생기든 엉키든 기쁘든(붉든), 슬프든(푸르든) 계속 짜 나갈 수밖에 없다. 나중에 뒤돌아 봤을 때, 그 모든 하루가 그럴듯한 삶(혹은 카펫)으로 완성돼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붉은 카펫 위에서 곤히 잠든 꼬마아이가 인상 깊어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 만난 공간이 아마 카펫이었을 거다. 카펫 위에서 아장아장 걸으며 자라왔듯 앞으로도 카펫 위에서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고 노인이 되겠지? 카펫 위를 오가는 밥과 차와 이야기를 먹으면서.

 

카펫은 늘 이란 사람들 곁에서 역사와 예술 그리고 삶에 대해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매일 밟고 다니던 카펫 한 장엔 이토록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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