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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최승아|오, 이런! 이란!

오색찬란 카펫 같은 이란을 만나보자

 

 


혹시 아시나 몰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가 말했다>에서 짜라투스트라가 페르시아 태생의 조로아스터라는 것!

괴테가 대적할 자 없다고 극찬한 시인인 페르시아의 시인 허페즈는?

천일야화 속 이야기꾼 세헤라자드가 페르시아의 왕비였다는 건?

페르시아인이 활약했던 중세 이슬람 문화가 바로 오늘날 서양문화의 토대였다는 사실은?

 

이란. 우리는 이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중동의 한 국가 혹은 최초의 이슬람 공화국. 근본주의 이슬람, 처도르, 핵, 테러, 석유, 반미 혹은 한국 축구의 숙적?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란을 접하는 창구는 TV뉴스나 신문 등 주로 언론 매체다. 그렇다면 언론은 이란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주로 위에서 말한 이란다운 이야기 혹은 이란 같은 이야기들이다. 언론은 뉴스감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게 거짓이라서? 아니다. 그것들이 불완전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마치 많은 색깔들 중 검은색 실만 골라 이란이라는 카펫을 짜는 것처럼.

 

 

나는 대학에서 이란어를 공부했다. 그러나 이란은 지루하기만 했다. 2009년 겨울, 그러던 내가 느닷없이 이란으로 향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대학 4학년이었던 2009년, 이상하게 이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란의 지층에 흐르는 페르시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이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2009년 여름, 당시 이란은 대통령 부정선거 문제로 반정부 시위가 들끓고 있었다. 사진 속 이란 여성은 이마와 입을 녹색 천으로 두르고 녹색 물감을 칠한 손바닥을 들어 보이고 있었는데 내 눈에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 보였다. “여기를 보라. 우린 저항하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설명되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이런 목소리가 꿀럭 올라오는 게 아닌가. “이란에 가야겠다. 이란에 가야겠다.”

 

난 이 모든 게 단서이며 이 모든 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참 동안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아니야,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를 오가며 불신과 자신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때마침 테헤란 주재 한국기업 취직이라는, 공짜로 이란에 갈 수 있는 문이 열렸고 결국 난 이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2009년 12월 23일 오전 11시, 난 공항에서 호메이니 그림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이란에서의 시간은 순탄치 않았다. 이란을 다녀볼 틈 없이 야근을 반복하는 바쁜 나날들이 계속됐다. 결국 난 회사를 그만두었고 어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테헤란 북부 고급 주택가를 떠나 테헤란 남쪽 낡은 여성 기숙사로 이사했다. 그러나 기숙사에서의 평화도 오래가지 못했다. 학원에서 쫓겨나고 만 것이다. 테헤란 거리에서 성경을 나눠준 선교사(학원 수강생들이기도 했다)들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였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유로 결국 난 퇴학당한 신세가 됐고 기숙사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아니, 뭔가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맞다. 난 이란어를 배우려고 이란에 온 게 아니었지?’

 

회사로부터의 ‘탈주’ 학원으로부터의 ‘추방’. 난 그제야 이란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난 테헤란과 이란 곳곳을 그야말로 킁킁대며 돌아다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탐험가처럼. 카펫 위에서 친구들과 뒹굴다가도 나그네처럼 홀연히 사라지는 생활을 반복하며 테헤란 거리, 이란 유명 도시, 기숙사 아이들의 고향을 순례했다. 그렇게 수많은 풍경과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이야기들과 만났다. 그리고 점점 알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란에 오게 됐는지 말이다.

 

 

뒤늦은 방랑의 시간동안 난 카메라 렌즈보다 더 거대한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간 보지 못한 이란의 활발발(活發發)한 풍경 즉, 지금까지 이란을 만들었고 만들고 있는 그 고유한 이야기들을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란을 걷는 걸음이 늘어날수록 새카만 카펫 같던 이란은 내 눈앞에서 점차 오색찬란한 카펫으로 변해 갔다.

 

이란에서 목격한 그 ‘나머지’ 이야기. 이 이야기가 앞으로 여러분에게 내가 들려줄 이야기이다. 현대 이란의 다양한 풍경, 사람 그리고 이란을 만들어온 페르시아 문화 덧붙여 이란 현대사까지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 페르시아 그리고 그 화려했던 페르시아 문화와 역사 위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나라, 세계 최초의 이슬람공화국을 만들어 낸 나라, 당당히 미국을 향해 NO!라고 외치는 나라, 이란 영화로 세계 영화계를 재패한 나라. 덧붙여 한국 드라마가 90%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한국을 4대 교역국으로 두고 있는 나라, 이란.

알고 보면 이란은 그동안 왜 잘 몰랐을까 궁금해질 만큼 흥미롭고 중요한 나라다. 여러분들이 내 글을 통해 그 ‘나머지’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시각으로 이란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소위 이란 전문가가 아니라 부담이 크지만 내 고유한 경험과 이란이 만나면 그 순간부터 무언가 꿈틀대기 시작할거라 믿는다. 자, 이제부터 조금 다른 색깔들의 실을 쥐고 이란이라는 카펫을 짜보자. 편안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최승아 1985년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페르시아어를 공부했다. 삶의 스승인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 “Follow Your Bliss(천복을 따르라)”을 새기며 매순간 천복을 좇는 삶을 추구하려 애쓰고 있다. 대학시절 강원도 철원 민통선(민간인통제선) 마을의 굴곡진 역사를 기록해 본 것도, DMZ 철책선을 근처를 거닐어 본 것도 지복의 순간이라 믿는다. 가슴의 촉수가 향하는 곳에 집중하면, 평생 좇을 나만의 별을 찾으리라 생각했다. 돌아 돌아 내가 찾은 별은 이란 그리고 페르시아다. 이 별을 좇으며 계속 글을 쓰고 싶다. 다채로운 이야기로 수많은 여인들과 자신의 목숨을 구한 이야기꾼, 세헤라자데가 지금 내 롤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