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人

여섯 번째 이야기: 창문 닫아 좋은 날_“어휴, 책을 읽어라, 아예 그냥 책을 읽어.”




주말에 드라마라를 빤히 보던 옆지기가 한마디 던집니다.


“어휴, 책을 읽어라, 아예 그냥 책을 읽어.”


연기가 어색한 연기자에 대한 빈정거림. 그런데 옆지기가 지적하는 연기자는 100퍼센트 여성 연기자예요. 그만 못한 연기를 해도 남성 연기자에게는 대체로 외모에 대한 찬사가…


왜 그러는 걸까요? 뭥미



일단 저는 그 점이 살짝 못마땅합니다.

하지만 더 찜찜한 구석은 따로 있더군요.



그렇게 면박 주듯이 “아예 을 읽어라!”- ‘아예’라니요?

 읽는 게 나쁜 건가요?  읽는 게 죄가 되요? 아님  읽는 게 벌인가요?



배역에 깊이 몰입하지 못하고, 대사를 온전히 체화하지 못한 기계적인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알겠어요. 그렇더라도 “아예 대본을 읽어라.” “차라리 시나리오를 읽어라, 읽어.” 뭐 이런 식으로 바꿔서 말해 주면 마음이 좀 편할 것 같아요.^^!


책을 읽는다는 건 제 기억으로는 아주 멋진 일이거든요. 방학이면 찾았던 외갓집의 아침은 할아버지의 읽는 소리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독특한 리듬감으로 끊길 듯 끊길 듯 이어가시던 소리는 구수하고 재미있는 정보통이었습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저에게 '읽는다'는 표현은 소리와 관련이 깊은 어감입니다.


물론 눈으로 글줄을 따라가는 것도 읽는 행위이지만, 글로 저장된 말을 풀어 다시 음으로, 다시 말로 나타내는 것이야 말로 ‘읽다’라는 동사와 느낌이 정확하게 포개어지는 느낌인 거죠.



제가 어린이 책 만들던 시절에는 낭독할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특히 원고 분량이 많지 않은 그림책이나 동화들은 소리를 내어 읽어 보지 않으면 원고의 리듬감이나 말 재미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낭독까지는 아니더라도 입술을 움직여 소리 내고 귀로 듣곤 했습니다. 입술이 부드럽게 떨어지지 않는 부분이나 귀에서 잘 넘어가지 않는 부분은 따로 표시하여 작가님들께 상의 드리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요.

글자 수가 적은 책일수록 표현은 간결하고 문장은 단단하여야 하고, 그래서 귀가 즐거운 것이 좋은 원고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그림책을 읽는 것이 업무 중 하나였다면 즐거웠던 낭독의 기억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가장 재미있게 보던 책은, 소년중앙이라는 월간 소년잡지였습니다.


“아저씨, 소년중앙 나왔어요?”


새달의 책이 배본될 즈음이면, 함께 놀자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동네 서점까지 왕복 30분 넘는 거리를 매일처럼 다녀왔어요.

대엿새 다리품을 팔아 책을 받아들면 집으로 달려 들어와 열심히 소리를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졸라대면, 작은 누이가 함께 놀아 주기도 했습니다. 역할을 나누어 읽기도 했고, 가끔은 카세트테이프에 그 소리를 녹음하기도 했지요.






아마, 이 유치한 취미로 발견한 책 읽기의 즐거움이 없었더라도 지금처럼 책 동네에 매달려 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유치한 취미는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동거인이 생긴 후로 소리 내어 책 읽는 기회는 적어졌습니다. 그리고 최근, 언제부터인지 발음이 무뎌진다고 할까요, 무너졌다고 할까요? 스스로의 말소리가 성의 없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 가며 기운이 달리는 탓인지, 세상 경험이 늘어가면서 긴장감이 없어지는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말하기 위해서, 책 읽는 취미를 되살려 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만의 조용한 공간에서 마음껏 오버하며 낭독하는 책읽기는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니까요. B사감 앞에 있던 러브레터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시집과 희곡들이 있잖아요.



날씨도 참 좋습니다. 엄동설한 추위에 어차피 창문, 방문 꼭꼭 닫아야 할 테고… 이참에 문이라는 문 꼭꼭 잠가 두고, 식구 눈치 보지 말고, 이웃 눈치 보지 말고, 큰소리로 낭독해 보시죠! 아예 책을 읽자고요!  

 

 

 

초식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