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일하는 엄마는 많다.
양가 도움 없이 육아 독립군으로 아이를 둘 셋씩 키우며 일하는 슈퍼 엄마들에 비하면,
일 년 꼬박 내 손으로 키웠고 지금은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나는 정말 팔자 좋은 워킹맘이다.
앞으로 반 년, 육아 독립을 하기까지 남은 시간. 나는 엄마로 또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지난 일요일 손녀딸을 데리고 며칠 고향에 다니러 가신 엄마가 보내오신 짧은 메시지다.
우리 딸의 만행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엄마 미안해...)
복직한지 다섯 달.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때도 있었고 땡 하면 퇴근하는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이든 아닌 날이든 아직 어리니 일 년은 더 봐주마. 하고 멀리 포항에서 와주신 친정 엄마(나이를 이만큼 먹었어도 친정 엄마에겐 어머니라는 말보다 엄마라는 말이 좋다.)가 아니었으면 하루도 마음 놓고 일하지 못했을 것이다.
딸은 만 16개월이 되었다.
워낙 잘 먹고 낯도 가리지 않고 어린이집도 신나게 다녀 한결 수월해지겠지 하던 찰라,
짜증이 늘고 고집은 있는 대로 부리고 마음에 안 들면 배를 내밀고 드러누워 버리고
앙앙 울다가 원하는 걸 얻으면 금세 웃다가…
아니, 애가 갑자기 이렇게 바뀌어도 되나, 성격이 제멋대로면 어쩌지, 우아달(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물어봐야 하나,
그러던 중 신참 엄마에겐 육아 정보의 보고인 엄마의 홀릭에서 지금이 ‘재접근기’라는 걸 알게 됐다.
생후18개월-36개월 사이에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정신적으로 자립해가는 시기란다.
딸의 마음을 읽어보자면,
‘이거 내가 할 거야. 근데 왜 안 되지ㅠㅠ 그래도 엄마가 해주는 건 싫다고. 아오, 짜증나!!’
뭐 이런 상태의 반복. 이게 바로 미운 세 살의 정체였던 것이다.
이땐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답이란다.
안아달라면 안아주고, 놀아달라면 놀아주고, 기다려주고 다독여주고… 참 어렵다.
그런 떼쓰기를 온몸으로 받아주는 사람이 나이 드신 우리 엄마시니, 나는 그저 죄송 또 죄송할 뿐이다.
아이에게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해줘야하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함께 있어주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그래도 죄책감은 가지지 않으려 한다.
대신 퇴근 후에 무조건 열심히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로 했다.
딸이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주고 같이 실룩실룩 엉덩이춤도 추고, 엄마와 7시 저녁 드라마를 보며 “엄마는 참, 왜 저런 걸 봐요?”
하면서도 작가와 연출자와 방송사를 욕하며 장단 맞추고, 뉴스룸을 보며 나라 돌아가는 꼴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런 서너 시간이 내일을 살게 하는 충전의 시간이 된다.
엄마가 서울에 계실 시간은 반 년 남짓 남았다.
엄마(그리고 특히 아빠가)가 선물해주신 일 년이란 시간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다시 일을 할 수 있고, 아이는 할머니에게 듬뿍 사랑받으며 엄마의 부재를 덜 느끼고 잘 자라고 있다.
엄마 덕분에 딸을 나도 더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엄마와 내가 꼭 안고 있으면 딸이 달려와 우리를 함께 안아준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듯 딸이 행복하다는 감정을 잘 아는 아이로 컸으면 좋겠다.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 다시 엄마랑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아쉽고 아깝다.
나중에 아이에게도 할머니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걸 꼭 알려줄 것이다.
-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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