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좋아하세요?
전 최근 몇 년간 무지 좋아하고 있습니다.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집을 생각한다》 《집을, 순례하다》 등을 읽으면서 거대 건축이 아닌, 정말 사람이 머무는 ‘집’에 대한 생각을 나름 진지하게 하게 되더군요. 단순히 짓고 팔고 사는 매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한 번쯤 생각하고 느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현욱 건축가와 구본준 기자가 함께 쓴 《두 남자의 집짓기》가 일으킨 땅콩집 열풍만 봐도 요즘 ‘집’에 대한, ‘건축’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뜨겁고 구체적인 듯해요.
지난가을, 젊은 건축가 최준석 선생님의 책이 출간됐습니다.
제목은 《서울의 건축, 좋아하세요?》. 매일매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서울의 건축을 좀 더 친밀하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읽는 책입니다. 마치 영화나 그림을 보듯, 소설이나 시를 읽듯, 그렇게 건축을 바라봅니다.
이 책의 표지 얘기를 해볼까 해요.
표지 사진은 김인철 건축가가 설계한 <어반 하이브Urban Hive> 내부에서 밖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이 빌딩의 별칭은 ‘벌집 빌딩’이에요. 건물 외벽에 무려 3,800여 개의 구멍이 송송 뚫려 있어요. 표지에 쓰인 사진은 건물 모서리 부분에서 찍은 건데, 마치 외벽에 난 구멍이 망원경의 눈처럼 보이지 않나요? 서울의 건축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처럼 말이죠.
어반 하이브 안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 최준석
어반 하이브 전경 ⓒ 최준석
이 책의 표지가 최종 결정되기 전에 몇 개의 시안이 더 있었습니다.
아래 두 시안은 조금 클래식한 맛이 있다고나 할까요. 최종 결정된 표지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죠? 하나의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최종 표지보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정돈된 분위기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듯합니다. 아쉽게도 최종 선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최준석 선생님께서는 이 두 개의 시안도 “훌륭한데요!”라는 코멘트를 주셨습니다.
디자이너들이 B컷들을 떠나보낼 때, 어떤 마음일까요? 그들이 B컷을 모아두는 서랍을 공개한다면 저주 받은 걸작, 혹은 숨은 걸작을 발견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표지가 결정되면 과연 이걸 어떤 종이에 찍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이 책은 CCP라는 종이에 찍었는데요. 사진을 표지 이미지로 쓴 만큼 이미지의 선명함을 최대한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종이가 좋겠다 싶었어요. 세 종류의 종이에 교정을 보았는데, “역시 결론은 CCP”였습니다. 저도 편집자로 일하면서 이 종이는 처음 써봤는데요, 사진을 표지 이미지로 쓸 경우, 소프트한 느낌보다는 뭔가 쨍하고 강한 인상을 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 이 종이를 고려해 보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CCP는 이미 종이 자체에 유광 코팅이 살짝 되어 있는 상태라서 다른 종이에 비해 인쇄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해요. 코팅이 되어 있는 만큼 종이에 발린 잉크가 마르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죠.
이 책에 나오는 건축물은 우리가 매일매일 자주 지나치는 곳에 있어요. 결코 멀리 있지 않아요.
시간에 쫓겨 혹은 그동안 그냥 그렇게 지나쳤기에 세심한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는 그곳을 지나게 될 때 고갤 들어 천천히 바라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주말에 서울 건축 투어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요?
녹색방
'H_기억하고 싶은 책 > 휴머니스트 책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은 한숨 (2) | 2013.02.07 |
---|---|
진화론과 문학의 '거창한' 혹은 '귀여운' 만남, 《이야기의 기원》 (1) | 2013.01.31 |
표지의 변신은 무죄 - 《2033 미래 세계사》 (0) | 2013.01.17 |
우리말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 - 《우리말은 서럽다》 (2) | 2013.01.10 |
시대와 인물, 관측과 이론, 경쟁과 우정이 얽힌 한 편의 ‘빅뱅’ 드라마 (0) | 2012.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