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떠나고 생각할 것!
휴가 계획?
휴가 일정을 확정한 것도 겨우 휴가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야근야근)
휴가가 언제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아직 계획은 없지만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면 된다"라고 허세를 부렸더니,
딸의 허세는 소심함의 발로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아버지께서 덜컥 제주도 숙소와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셨습니다.
8월 한 달은 여러 가지 일들로 휴가가긴 힘들겠다 생각한 저는 제 허세에 책임을 지기 위해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쉬면 좀더 현명하게 쉴 수 있을까, 이 중요한 시기에 휴가라니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닐까?
얼마나 준비를 하고 쉬어야 보람차고 개념차게 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
제주도만 다녀오고 진짜 휴가는 9월에 쓸까?
9월도 중요한 시기인데, 그럼 10월? 10월부터는 훨씬 바쁠 것 같은데... 악악!
(쓸데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저는 지쳐버렸고,
휴가 계획 하나 세우지 못하는 무능하고 미련하며 욕심도 많은 저 자신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일단 연남동을 떠나고 보자!' 결론지어 버렸습니다.
뭘 그렇게 걱정했던 걸까요.
휴가 첫날 아침, 저는 제주도에 도착해 있었고 그날부터 고민과 걱정의 스위치는 내려졌습니다.
제주도 함덕서우봉해변입니다. 날이 너무 뜨거워서 바닷물에 둥둥 떠 있기만 하려 했는데...
해파리떼가 나왔습니다. 큰맘 먹고 새로 산 수영복은 몇 번 입지도 못하고 돌아왔다는 슬픈 이야기...
실의에 빠진 저는 보상심리로다가 흑돼지 오겹살을 매일 먹었고, 그리하여 살이 더 쪄서 돌아왔다는 결론...
재밌어 죽겠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의식적으로 잊으려 발버둥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생각해 보니 제가 지녔던 염려는 과장된 것이었고,
휴가 전후에 긴장을 늦추지만 않으면 충분히 메울 수 있는 공백이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쉴 때가 되었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던 제 몸과 마음에 대해 너무 무책임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끝까지 자책)
직딩이 되고 네 번째 맞았던 여름 휴가, 생각해 보니 지난 세 번도 이렇게 갈팡질팡하다가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쉬고 보자 했었던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세상은 기울지 않았고, 회사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흘러갔습니다. (물론 휴가 전후에 열일은 필수입니다ㅠ_ㅠ)
아직은 제가 일의 중요도를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결단력과 계획력이 부족해서 늘 같은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히는 것일 테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늘 제 발목을 잡는 가장 묵직한 것은 이 빌어먹을 소심함이 팔할인 듯합니다.
저처럼 일의 중요도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결단력과 계획력이 부족한데다가
타고난 소심함 탓에 매일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수많은 직딩 여러분들...! 히, 힘내세요...!!!
(그냥 떠나시라는 이야기는 차마 못하겠어요.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요... 마지막까지 소심소심)
-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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