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출판계에서 인연을 맺은 친구 다섯이 부암동 친구네를 아지트 삼아 오랜만에 뭉쳤다. 다들 바빠 어쩌다 한 번 모일 때마다 정원을 채운 적 없는 이 모임이 간만에 목표한 인원수를 채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즐거운 수다와 술자리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마무리되었는데, 이곳에서 맞이한 한여름 밤의 부암동은, <별 헤는 밤>을 낭독하는 친구와 윤동주와 장준하, 문익환이라는 걸출한 세 친구의 우정을 들려주는 또 다른 친구들 덕분에 더욱 아름다웠다.
그 즐거운 자리를 파하면서 다시금 깨달은 것 하나. 내가 이렇듯 무사히 출판계에 살아남아 있는 까닭은 아직도 현업에서 건강하게 뛰고 있는 이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 맞아, 역시 그렇군. 고맙다 친구들아.
2007년 초의 일이다. <Editor's Cut>이란 어느 주간지 코너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 두 가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일종의 제도 교육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직장이 그 하나요, 나머지 하나는 일명 ‘출판 과외 모임’이다”라고 쓰면서, 그동안 내가 거쳐온 세 개의 소모임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들 출판계 동업자 친구와 더불어 백발로 정년을 맞이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는데, 그 글을 읽은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격조했던 우리 다시 모임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그리고 며칠 후 주말, 행주산성 근처 한 친구의 집에 모인 예닐곱 명의 친구들은 그 옛날 함께 공부하던 시절의 추억과 더불어 이제 다시 시작할 모임은 어떠해야 할까를 논했다. 각자 서로 다른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이니 다들 팀장 또는 편집장 이상의 직급이었는데, 한 친구 왈, “원래 ‘장’이란 자리는 외로운 법이다. 편집장의 급여에는 고독 수당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하니 우리 모임의 컨셉을 ‘서로의 고독을 핥아주는 모임’으로 하자.” 이런 명쾌한 정리가 어디 있는가. 다들 환호하는 가운데 나의 네 번째 출판 과외 모임이 결성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벌써 6년 전의 일이니, 그동안 이 ‘고독을 핥아주는 모임’도 회원수를 늘려가며 잘나가던 2년 정도의 전성기 활동을 마치고 그때 모아놓은 기금(?)으로 매년 송년회를 하는 친목 모임이 되었고, 지금도 1년에 한두 번 서로의 고독을 핥아주기 위해 만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이 모임에서 무엇을 했는가는, 지금의 글에서는 굳이 할 말은 아닌 듯하여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한 번도 같은 공간에서 근무한 적은 없지만 편집자라는 붉은 실이 우리를 엮어주고 있는 동안, 우정은 변치 않을 듯하다. 이들이 든든하게 현장에서 버티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내가 힘들 때마다 이들이 나의(우리의) 고독을 핥아줄 것이란 생각만으로도 내가 살아가는 데 힘이 된다. 고마운 존재들이다.
아, 이들 말고도 나에게는 고독을 핥아주는 존재가 휴머니스트에도 있다. 휴머니스트의 편집장들끼리도 서로의 고독을 핥아주며 살아간다. 그 덕분에 내가 살아가는 것이고, 우리 삶이, 더 반지르르 윤이 흐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 팔
추신 :
거창한 제목에 비해 내용이 부실한 듯하니,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감명 깊게 음미했던 <별 헤는 밤>을 여기 덧붙인다. 늦은 밤 하늘을 바라보며 읽는다면, 그리고 외어서 읊어본다면, 친구와 같이 읽는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덧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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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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