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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人

열차는 멈추지 않는다

 

 

 

 

열차는 멈추지 않는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동토의 사막을 내달리며 순환하는 설국열차. 기차가 스스로 달리는 한, 기차 안의 사람들은 죽음을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기차 밖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라 기차 밖 세상에 대한 두려움에 떨면서, 역설적이게도 기차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것 또한 결국엔 죽음뿐이라는 절망감에 몸서리친다.

 

여기, 꼬리칸 출신의 한 사내가 있다. 사내는 어떤 계기를 통해 꼬리칸에서 벗어나 한 칸 한 칸 전진해나간다. 그러나 기차의 앞 칸으로 나아갈수록 지배층에 대한 분노와 혁명에 대한 열망은 누그러들고 오히려 기차의 생리를 이해하게 된다. 그는 결국 기차의 또 다른 지배층이 된다.

 

이전까지 열차를 지배하던 정치권력은 영구동력 기차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자 아예 꼬리칸을 떼어버리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기차의 외부의 생존자가 쏘아 올리는 전파를 발견하게 된다. 기차가 세계의 전부라 믿었던 사람들은 서로 패를 나누어 싸운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로 나뉘어서. 결과는 진실을 밝히려는 자들의 승리.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더 행복하리라 생각했는데, 점점 기차 안의 불만은 커져만 간다. 차라리 진실을 몰랐던 때가 더 나았다며, 그때는 먹을거리와 환락이라도 풍족하게 즐길 수 있었다면서 말이다.

 

 

여기 또 다른 꼬리칸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도시락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네 명의 여인, 마코토, 야요이, 구니코, 요시에다. 이들 모두 아르바이트 수당보다 조금 더 나은 야간 수당을 받으며 근근이 월세를 지불하고, 병든 노모를 수발하며, 명품을 사들이느라 진 빚을 갚고, 도박과 여자에 취한 남편을 위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을 참지 못한 야요이가 벨트로 남편의 목을 졸라 죽여 버린다.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보다 야간 근무의 피로와 남편에 대한 극도의 짜증이 깨끗이 씻겨 내려간다. 그녀는 가장 믿음직한 공장 친구 마코토에게 전화를 걸어 시체를 처리해 달라 부탁한다. 평범한 주부였던 마코토는 차례료 요시에와 구니코를 시체 처리 작업에 끌어들이게 되면서 이들 네 명의 삶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시체를 칼과 톱으로 가르며 혹독한 진실을 공유한다. 그리고 사건의 흐름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잔인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떠오른 살인 전과가 있는 매춘업자가 이들은 위협하게 된 것. 여인들은 얼굴을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숨통을 조이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

 

살인을 통해 꼬리칸 밖으로 밀려난 여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언제든 삶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동반자로 삼아 살고 있던 그들이 사건을 통해 움켜 쥔 것은 한 줌의 희망이 아니라 어제 죽은 시체의 살점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살과 뼈를 가르며 이 지독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길 꿈꾼다. 도대체 자신의 삶이 자신을 어디로 옮겨놓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불덩이 위에 서 있는 듯 무더운 날씨다. 영화 <설국열차>의 원작인 만화 설국열차,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 아웃(1,2)를 읽으며 더위가 가셨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누워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 일단 더위는 가신다.

 

 

 

 

지금 마감하고 있는 책은 아파트 게임(가제)이다(그렇다. 이제 마감한다.) 책의 저자는 한국 현대사 속 중산층의 확장을 견인할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아파트였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아파트에 살면서 대출을 얻어 다른 한 채의 아파트를 사두는 것이 중산층이 되기 위한 게임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는 거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친구에게 너 이름이 뭐니?” 대신 너 몇 평에 사니?”를 묻는 이 마당에, 아파트는 살아가는 곳임과 동시에 당신의 이름이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새삼스러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중산층 육성 시뮬레이션이 세 번의 변이와 순환을 거쳐 그 효력을 다 했을 때, 그러니까 아파트를 통한 자산축적이라는 엄정한 게임의 룰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면? 바로 이 질문이 이 책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겠다.

 

의문이다. 설국열차 속 사람들은 정말 열차 밖으로 나가고 싶었을까? 도시락을 조립하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벗어나는 일이 죽음뿐이라면, 진정 똑같은 선택을 반복할 수 있을까? 아마 람들은 이 지독한 아파트 게임에서 아마 벗어나고 싶기도, 벗어나고 싶지 않기도 할 거다. 어쩌면 벗어나기 싫은 마음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게임의 룰은 그 이름만을 바꾼 채 계속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마치 영원히 멈추지 않는, 외부 없는 열차처럼 말이다.

 

 

 

 

농담으로 이 코너를 마감하다 딴 책읽기라 정하자고 했는데, 매번 마감할 때만 골라 순서가 돌아오면 곤란하다. (허허) 마침 절망적인 엔딩을 맞는 두 권의 책으로 더위를 씻기고 나서, 마감을 하다 보니 등골이 서늘하다. 소설이나 만화보다 흥미진진한 마감이라니...

 

-아이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