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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Hustory

우리는 왜 우유를 마시며 자랐을까?

 

 

 

우리는 왜 우유를 마시며 자랐을까?

- 우유에 관한 진실 찾기

 

 

지난달 내 몸뚱아리 건강하게 챙겨 보겠다고 매일 우유를 200밀리리터씩 먹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나이 들면 골다공증 걸린다는데 미리미리 칼슘 보충 해 둬야지.’ 친구에게 내 다짐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는데 우유 그거 독이란다. 정말? 진짜? 지난 1월에 교육방송에서 <우유, 소젖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나서 꽤 이슈가 됐었나 보다.

 

충격이었다. 우유가 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동안 우유가 건강식품이라는 데 대해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지금이야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많이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유나 분유를 먹이는 경우가 많았다. 왜 사람의 젖이 아니라 소젖이 더 좋다고 인식했던 걸까?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는 왜 전체 우유 급식을 장려한 것일까?(지금도 우유 급식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밀크의 지구사(A Global History of Milk)》는 인간이 동물의 젖을 언제부터 어떻게 먹기 시작했는지부터 우유의 산업화와 상품화 과정, 영양에 관한 최근의 논란까지 밀크(이 책에서는 우유 외에 동물의 젖을 아우르는 말로서 영문 그대로 번역했다.)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책에 따르면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우유는 매우 위험한 식품이었고 질병과 사망의 주원인으로 비판 받았다. 낙농장의 지저분한 사육 환경과 비위생적인 운송 과정, 소에게 맞지 않는 값싼 먹이 공급, 가짜 우유의 성행. 사회적으로 오염된 우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9세기 후반부터 꾸준히 각종 법안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네슬레의 '아이들을 위한 완벽한 식품' 분유 광고. 1895년 경.             ▲ "건강에 좋은 우유" 미국의 공공사업촉진국 예술 프로젝트가 제작한 포스터. 1940년.

 

 

왜 모유 수유를 멀리하고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게 되었을까? 1840년대 미국에서 모유 수유가 줄기 시작한 건 여성이 노동력으로 동원되면서 일이 바쁘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중산층과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 젖병 수유를 선호하는 경향이 생겨났다고 한다. 처음부터 영양 때문에 아기에게 우유나 분유를 먹였던 건 아닌 것이다.

 

학교 우유 급식은 1920년대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우유가 영양적으로 모든 아이에게 좋다는 연구가 나왔던 시기였다. 하지만 1927년 학교 우유 급식 프로젝트를 세운 것은 영국 정부가 아니라 낙농 및 유가공업계의 재정 지원을 받는, 기업적 성향이 강한 영국우유홍보위원회(National Milk Publicity Council: MNPC)였다고 한다. 그밖에 영국우유홍보위원회는 어린이는 물론 젊은 여성들과 공장 노동자들에게까지 우유를 권장하고 홍보했다.

 

애초에 우유는 특별히 ‘건강식품’이 아니었다. 유목 민족에게 동물의 젖을 먹는 문화가 있었고 그것은 단지 ‘음식’일 뿐이었다. 사회가 도시화․산업화 되면서 우유는 상품이 되었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지만 상업화와 함께 마케팅이 도입되면서 건강식품으로 탈바꿈했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 아니다, 몸에 해롭다 아니다’는 문제의 일부인 것 같다. 밀크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기업의 윤리, 정부의 정책,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 개개인의 비판적인 사고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물론 오늘날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정보를 일일이 확인해서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유의 사례에서 보듯이 ‘키 크려면 우유를 많이 먹어야 한다. 우유는 완전식품이다. 칼슘 흡수율이 가장 좋다.’ 등 “상식”으로 통하는 것들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오래된 지식, 권위를 등에 업은 지식, 대다수의 사람이 믿는 지식이 합리적인 근거 없이 상식의 탈을 쓰고 어디에서 사회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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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유 문화권이 아닌 우리나라에는 우유가 어떻게 정착되었을까. 이 책의 뒤쪽에 ‘한국 우유의 20세기사’라는 제목의 글이 특집으로 실려 있다. 음식의 역사와 문화에 관해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 주영하 교수의 글이다. 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식민지 시기 일본을 통해서 우유가 도입되었으며 1950년 3월 6․25 발발 전 유니세프의 원조 물자로 우유가 전국에 보급되었다고 한다.

 

* EBS 다큐멘터리 <우유, 소젖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 우유에 관한 책

- 《밀크의 지구사》(해나 벨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 2012, 휴머니스트) 

- 《우유의 역습》(테이리 수카르 지음, 김성희 옮김, 2009, 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