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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기억하고 싶은 책/휴머니스트 책Book

train of thought

 

 

 

영어로 붙여놓은 제목의 뜻은 무엇일까요?


<빌 브라이슨의 유쾌한 영어 수다>의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에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이 단어는 제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좋아했던 어느 팝밴드의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가사를 외우지 않고도 그냥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수없이 들었던 노래이기도 한데요, 저는 최근까지 그 가사의 내용뿐만 아니라 제목의 뜻조차 모르고 있었죠.


이 밴드는 노르웨이 출신이지만 영어로 부른 노래로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차트를 석권했습니다. 아마 이들이 영어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면 한국에 사는 제가 이들의 음악을 알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문득 가사의 내용이 궁금해서 오래된 LP를 꺼내어 보았습니다. 내지에 한글로 번역된 제목은 '사색의 열차'라고 되어 있습니다.

 

빌 브라이슨의 책을 작업하던 당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감과 동시에 몇 종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아무래도 원고를 대충 훑어보고 디자인 구상을 전개하다 도무지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서 다시 원고를 집어들었다 놓았다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죠. 집중력이 떨어지면 원고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마음만 앞서다 결국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구상을 접어버리게 마련이지요. 게다가 책이 출간도 되기 전에 새로 인쇄할 도서목록에 표지를 넣어야 하는 상황이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직관적인 단상으로 임시 표지를 작업해야 했습니다.

 

 

 

급한 불을 끄고나서 다시금 빌 브라이슨의 원고를 첫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농부들이나 쓰던 영어가 싸움 잘하는 조상들 덕에 세계 언어가 되는 과정을 들려주려나 했는데 이 책은 그야말로 영어에 대한 작가의 감탄할 만한 수다로 가득합니다.


작가의 입담에 몰입하며 읽다보니 생각보다 원고는 술술 잘 읽힙니다. 그런데 원고를 다 읽고나서도 표지디자인의 구상은 지지부진하기만 합니다. 내심 전광석화와 같이 작업한 표지를 임시용으로 쓰고 버리기도 싫은 생각입니다. 어쩌면 처음 떠올렸던 그 이미지가 제가 이 책에 대해 갖을 수 있는 가장 근접한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도 생겨났습니다.

 

여기서 디자이너의 딜레마가 다시 나타납니다. 지식과 정보, 이야기의 맥락을 다루는 입장에서 직관에 의존한 결과물을 관철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보다 성실하지 못한 접근이었다는 핀잔을 들을까 염려됩니다. 자격지심에 작업을 정규시스템으로 다시 시작해 보았습니다. 원고는 이미 끝까지 읽었고 컨셉은 이미 임시 표지에서 그린대로 입니다. 순서가 바뀌긴했지만 리서치를 시작합니다. 원서의 표지부터 빌 브라이슨의 모든 저작의 표지와 각 국가별 판본의 표지디자인과 관련 도서의 디자인까지 찾을 수 있는 한 모두 찾아봅니다. 국내외의 서평까지 다 읽어보고 작가의 프로필과 블로그도 샅샅이 리서치 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색과 정보의 네트워크를 오가며 작가와 글에 대한 인상을 조금씩 그려갑니다.

결국 많은 시간을 리서치에 할애한 끝에 결론은 임시 표지로 돌아옵니다. 이미 폐기되는 것이 기정 사실처럼 느껴지는 표지안을 다시 꺼내들기가 머쓱하지만 직관에 따른 결과보다 더 나은 차선을 찾지 못했습니다. 몇 가지 유력한 컨셉이 있었지만 스스로의 검열에 모두 폐기되었습니다. 결국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시안을 보충해서 의견을 구하기로 합니다. 예상 외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나로 의견이 모이지도 않습니다. 또 머릿속이 복잡해지지만 이런 경우에는 작업을 진행한 나 자신의 의견이 중요하다고 판단해야 할 시점입니다. 또다시 꼬리를 무는 고민에 빠져듭니다. 

 

 

디자인을 해온 15년 동안 늘 같은 고민과 상념이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작업의 결과에 대한 정당성과 적확한 판단을 확보하는 일은 어쩌면 늘 이러한 상념을 수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번 일의 결론은 스스로 내리기로 하였습니다. 임시 작업한 표지안을 다듬고 보완한 것으로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train of thought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일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빌 브라이슨의 책에도 세계 언어인 영어의 오역 사례가 여럿 소개되는 것처럼 80년대 당시의 음반 내지 번역에는 일상적으로 오역이 많았기 때문이죠. 흔히 사용되는 단어는 아닌듯 찾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영영 사전과 여러 검색을 통해 찾아 본 결과 가장 근접한 뜻은 '꼬리를 무는 상념'이라고 합니다.

 

 

 

 

- 같이있는 삶의 동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