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설득의 힘, 스토리텔링
이제 곧 초등학교 1, 2학년 수학 교과서가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전면 개정된다고 합니다.
더 많이 외우고 빨리 풀어내는 것을 최고로 여겼던 이전의 수학교육 방식과 달라도 너무 달라서 학부모님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 초등학생의 수학 성취도는 세계적으로 1, 2위를 다투는데 수학에 대한 흥미도는 세계 최하위로 나왔다니, 이에 대한 개선 의지가 반영된 교육 정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에효, 그러고보니 스토리텔링. 요즘 아이고 어른이고 스토리텔링 때문에 난리인가 봅니다.
(얼마 전 휴로그를 통해 모집한 강미선 선생님의 “스토리텔링 수학” 강좌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습니다.)
입학사정관제가 자리잡아가면서, 스펙을 쌓는 일 보다는 자기 자신의 삶과 가치관, 그리고 공부 계획에 대해 멋들어지게 설명해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도 합니다. 요즘 기업에서는 프레젠테이션 때마다 그렇게도 스토리텔링을 강조한다지요?
사실 “스토리텔링 있게 설명하라.”는 말은 어법에도 전혀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스토리(Story)+텔링(Telling)이 바로 설명이라는 뜻이니까 말이에요.
그렇다면 문학이나 영화에서 서사나 플롯 대신으로 사용했던 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이렇게도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라운징 문화의 시발점, 별다방 콩다방 스타벅스"
1971년 시애틀에서 시작한 스타벅스 커피숍은 4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골목 어디를 가든 찾아볼 수 있습니다.
커피 맛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글쎄요, 밥 한 끼 가격을 훌쩍 넘어서는 가격의 커피가 그렇게까지 잘 팔린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겠죠.
본론부터 말해 스타벅스는 커피만 팔지 않았습니다. 스타벅스는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집처럼 풀어진 공간도, 사무실처럼 삭막한 공간도 아닌 제 3의 특별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제공하지요. 커피 한 잔만 시켜놓으면 몇 시간이고 눌러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요.
이 공간 안에서 일과 놀이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 라이프스타일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스타벅스는 도회적인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렸던 사람들은 이제 커피 한 잔의 값으로 스타벅스 안에서만 만들 수 있는 “차가운 도시남녀”의 이야기를 누리게 된 것이죠.
“당신에게 이런 아이폰이 없다는 건, 그런 아이폰이 없다는 것.”
지금은 그 반향이 좀 줄었다고 하지만, 아이폰은 출시 당시 엄청난 수의 예약자를 불러 모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터치방식의 휴대전화들보다 아이폰이 뛰어났던 점은 바로 바로 그 화면 속 아이콘에 직접 닿는 듯한 생생한 터치감, 손에 꼭 들어맞는 밀착감 등, 인체와 일체감을 주는 디자인이었습니다.
배터리를 교체할 수 없다는 가장 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람들은 ‘유니바디’, 즉 몸체를 통으로 연결하는 아이폰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하나의 유기체로 여기면서 오히려 신봉하기까지 했지요.
게다가 아이폰은 자신들만의 OS, 자신들만의 액세서리 등을 새로 만들어 소비자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누릴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아이폰은 이미 기계 이상의, 상품 이상의 무언가로 각인되었고 이는 유저들 간의 공고한 커뮤니티를 만들어내기까지 이릅니다.
이에 텔레비전 광고는 한 몫 더 했습니다.
흰 바탕에 아이폰이 놓여있고 손이 하나 불쑥 나와 아이폰의 장점을 설명해요. 여기까진 크게 특별할 것이 없어요. 다른 광고보다 오히려 심플하지요. 그런데 마지막 이어지는 카피가 당신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당신에게 이런 아이폰이 없다는 건, 그런 아이폰이 없다는 것.”
헐... 왠지 기분이 나쁘면서도 꼭 이 상품을 사야할 것만 같은 맘이 들어요.
도대체 이런 아이폰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길래...
스타벅스와 아이폰은 우리에게 커피와 휴대폰 이상의 대체할 수 없는 무언가로 자리매김한 것 같아요.
물론 그 이후에 더 뛰어난 경쟁자들이 등장했지만 스타벅스와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의 충격만 했을지는 의문이지만요.
누군가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타인에게도 감동을 주고 그들을 충분히 설득해낼 때, 사람들은 그를 따르게 되곤 합니다. 그렇게 위대한 철학자가 탄생했겠지요.
그 철학의 가치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르겠지만, 바로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전하고자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야기하기'일 것입니다.
그 이야기하기가 효과적으로 이뤄졌을 때 사람들은 이에 감동하고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르게 될 거예요.
마치 아이폰 그 자체보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 스토리와 그의 멋들어진 프레젠테이션에 감화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흔히 물질만능 시대니, 소비사회니 하는 말을 합니다.
사람이 물건을 사들이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살 수 있다면 차라리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그게 맘처럼 되지 않으니 그게 인간 아니겠어요? 그저 물건을 구입하는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텐데, 그래서 획일화된 상품이 나를 말해줄 수 없다면 그 상품이 말하는 특별한 가치라도 나에 대해 대신 말해주길 원하게 되진 않을까요?
그래서 상품에 얽힌 이야기는 광고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광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품이 담고 있는 스토리가 되는 것이지요.*
상품으로, 전략으로, 디자인으로, 그리고 기업문화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할 때, 바로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은 성공한 사례로 남게 될 것입니다.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파고들겠지요.
기업 마케팅의 주된 목적이 사람들에게 이 상품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하는 것이듯, 지금 우리에게 스토리텔링은 효과적으로 상대를 설득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듯합니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높아진다는 말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자기 철학, 자기만의 이야기를 지닌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 아닐까요? 자기 철학 없이, 자기 이야기 없이 스펙만 화려하다고 상대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을 테니 말이에요.
이야기는 항상 전략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관심을 언제 무엇으로 사로잡을지 판단해야 한다. 관객의 흥미를 최대화하고 저항감은 최소화해야 한다. 프로의 사례를 보자. 미얀마 카친족의 시인-사제(둠사)는 자신을 고용한 관객에 맞도록 이야기를 각색해서 공연하는 것을 전통으로 삼고 있다. (중략) 고등한 협력은 그것을 권장하는 감정의 진화에 상당히 의존한다. _<이야기의 기원> 244쪽에서
시인 뮤리엘 러카이저(Muriel Rukeyser)는 “세계는 원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이루어졌다.”라고 말했답니다.
아니, 세계가 이미 이야기로 이루어졌다는데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이렇게 대두되는 건 참 새삼스러운 일일 겁니다.
누구든 언제나 ‘언어’를 통해 ‘말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책 <이야기의 기원-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는 바로 이 스토리텔링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지금 겨우 ‘뜬’ 것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본능으로 존재했었다는 거지요.
저자인 브라이언 보이드는 인간이 나고 자라는 데까지 스토리텔링은 개인의 발달단계뿐만 아니라 인류의 존재감각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 책은 현대 사회에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써먹는가를 알려주는 책은 아니에요. 오히려 스토리텔링 없이는 인간도 없다고 말하는 책이지요. 인간 문명이 아주 미려했던 그 시기부터 인간의 진화와 함께해온 아주 중요한 동반자라고 말이에요.
스토리텔링이 인간을 진화시키기도 한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요?
‘지금 여기’를 넘어 지속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모든 종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인간은 그 능력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 실존하는 어떤 과거와도 관련이 없는 허구의 이야기를 말하고 들으려는 욕망도 가지고 있다. _<이야기의 기원> 79쪽에서
*정보 교환으로 신용을 얻는 것과 별개로, 사회적 이야기는 가치 있는 정보를 저비용으로 꾸준히 제공하는 사람의 전반적 지위를 높여준다. (중략) 사회적 정보는 지위를 얻기 위한 소식과는 관련이 없다. 이야기는 당장 소용되는 사회적 정보만이 아니라 우리의 성찰과 판단을 돕는 인간 행동의 일반적 사례도 제공한다. 단기적인 용도가 없는 정보는 다른 방식으로 관심을 받는다. 책 <이야기의 기원> 242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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