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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人

그 영화 어때?




지난 한 달간 부산에서 서울까지 8개 극장에서 18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10월 초,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뒤로 아직까지도 영화의 바다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한참을 허우적대는 중입니다

10월 3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을 보러 온 사람들로 영화의 전당이 붐비고 있습니다. 열기가 느껴지시나요?


오늘 뭐해?” “영화 봐.” “이번 주말에 뭐해?” “영화 봐.” “지금 뭐해?” “극장이야.” 요즘 삶이 이렇다 보니 주변에서 그 영화 어때?”라는 질문도 자주 받습니다. 너무 바빠서 극장에 갈 시간조차 없는 분, 혹은 그 영화 볼까 말까 고민 중인 분들께 직접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검증한 영화 4편을 추천합니다.


 

역대 최고의 리얼 우주 영화 그래비티

현재 상영작 중 최고 강추 영화 그래비티입니다. 공기, 소리, 중력 등 익숙한 감각과 법칙이 사라진 우주에서 조난을 당한 산드라 블록이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광활하고 고요한 우주에서 폭발적인 운동 에너지로 90분마다 우주선을 덮치는 인공위성 파편들, 지구를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는 무력함과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산드라 블록의 강렬한 움직임 등 정()과 동()의 조화를 훌륭히 이룬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할리우드의 최신 3D 기술까지 영리하게 활용해 이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매력을 끌어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최고의 우주 영화라며 극찬했고, 별점 자린고비 이동진 평론가도 어떤 영화는 관람이 아니라 체험된다. 경이롭다.”라며 별 5개를 주었습니다. 아이맥스나 적어도 일반 3D로 보길 권장합니다.


 

쇼를, 그리고 인생을 즐겨라 쇼를 사랑한 남자

오션스 시리즈를 연출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쇼를 사랑한 남자도 놓치기엔 아깝습니다. 미국 최고의 쇼맨 월터 리버라치와 그의 동성 연인 스콧 토슨을 마이클 더글라스와 맷 데이먼이 연기합니다. 배우와 감독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상영관 수가 적은데요, 동성애라는 소재 탓인지 미국에서 극장 개봉은커녕 HBO 방송국에서 TV용 영화로 겨우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리버라치라는 사람이 품었던, 복잡다단하게 꼬인 가치의 실타래를 치밀하게 풀어놓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위로하는 연인에게 나는 이제 자유야.”라고 말하는 리버라치, “좋은 것은 더 많이 가질수록 좋은 거야.”라며 최후의 순간까지 욕망을 좇는 리버라치는 선악의 잣대로만 평가하기엔 상당히 복합적이고 그만큼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리버라치의 화려한 사생활만으로도 정신이 쏙 빠지는데, 중간중간 재현되는 리버라치 쇼는 마치 라이브 실황처럼 생생하고 현장감이 살아 있습니다. 영화관의 관객에서 어느 순간 영화 안의 청중이 되어 황홀한 기분으로 쇼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스토리로 직구를 던지다 소원

소원은 초등학생 소원이가 성폭력  피해자가 되면서 가족과 이웃의 사랑 속에 상처를 치유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건만 해도 충분히 끔찍한데 굳이 영화관에 가서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며 주저하는 사람들을 여럿 봤는데요, 소원은 기대(?)와 달리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 그 이후가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왕의 남자로 잘 알려진 이준익 감독의 작품인데요, 감독의 말을 들어보니 시나리오 각색 단계에서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를 최대한 덜어내려고 노력했답니다. 소재가 소재인만큼,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2차 가해가 될 수 있으므로 아동 성폭력을 다룬 기존 영화들처럼 사건을 자극적으로 보여 줘서 피해의 참상을 부각하기 보다는 사건 이후 피해자와 그 주변의 삶을 보여 주는 데 초점을 맞춘 거지요. 여기에 이 영화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사건 이후 갑자기 소원이가 아빠(설경구)를 자신을 성폭행한 범인과 같은 남성으로 인식하면서 피하기 시작하고, 폭행 후유증으로 바스락거리는 배변 주머니를 달고 생활해야 하는 소원이가 학교에 갈지 망설이는 등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갈등들을 이웃의 애정 어린 관심 속에서 흡사 동화처럼 치유해갑니다. 그렇지만 이 동화는 우리가 현실에서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동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저렇게 좋은 사람만 있을까 하고 반문하기 보다는, 내가 소원이의 부모, 친구, 이웃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하게 만듭니다. 이준익 감독의 물기 어린 묵직한 직구를 여러분도 꼭 받아 보세요.




정식 개봉 전 미리 만났던 CGV 무비꼴라쥬 소녀〉GV 때의 모습입니다.


이밖에도 최진성 감독의 장편 데뷔작 소녀, 여자보다 더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우디 앨런 감독의 블루 재스민, 배우 하정우의 감독 데뷔작 롤러코스터, 김기덕 감독의 고난도 시나리오를 제법 잘 소화한 이준의 열연이 빛났던 배우는 배우다도 추천합니다. 물론, 주변에 본다는 친구가 있다면 말리고 싶은 ㄴㅂㄹㅅ, ㅌㅅㅌ, ㅋㅌㅍㄹㅅ 같은 영화도 있지만요.



   

  

11월에도 기대작들이 많이 개봉합니다. 1114일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먼저 만나 봤던 미야자키 아오이, 무카이 오사무 주연의 노란코끼리,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된 동명의 만화가 원작인 김선아 주연의 더 파이브가 개봉합니다. 11월 말에는 스크린 측면까지 영사되는 스크린 X 기법을 도입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 더 엑스〉가 극장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하루하루 발 빠르게 겨울로 향해가고 있는 요즈음, 극장에서 따뜻한 영화 한 편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