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을 위한 소설쓰기>란 표지 디자인 의뢰를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나의 중학생 시절은 어땠을까?’였습니다. 저는 한마디로 가이드 라인이 확실했습니다. 학교에는 충실히 나가지만 수업에는 충실하지 않는. 책도 만화책만 보는 학생이었습니다. 아마 친구가 “이 책 표지 너무 예쁘지 않니? 한 번 읽어봐.”라고 했어도 전 그냥 시크하게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땐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철없는 십대였습니다. 그랬던 저에게 다른 책도 아닌 <중학생을 위한 국어시간에 소설쓰기 시리즈>란 책 표지를 디자인하라니요. 순간 머리가 텅 비워지며, 한 마디로 “멘붕(멍지효=멍영철)”이 된 듯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문학이라는 장르는 저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장르였습니다. 이런 생각은 고등학생을 위한 문학시간 시리즈를 디자인하고 있음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소설은 무엇일까요? 단지 허구의 이야기일 뿐일까요?
어린 시절 저는 분명 읽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쓰는 것에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의외라고 생각하시는 몇몇 분들이 있으실 것 같지만 사실 맞습니다. ( __)) 북디자이너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던 시절, 제 꿈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믿지 못하시겠지만 몇 편의 소설을 쓴 적도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제 소설을 이북으로 만들어볼 의향도 있습니다만...) 아마 그때 ‘Creation(창작)’에 눈을 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머릿속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그러나 위에도 언급했듯 저의 반항아적 기질은, 의자가 아닌 밖으로 나돌게 했고 그런 이유로 인해 전 열 마디의 말보다 한 장의 그림으로 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의 창작은 이제 글에서 그림으로 바뀐 것이죠.
그런 저에게 소설은 판타지입니다.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재구성하는 거죠. 또한 소설은 상상이란 소재로 창작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스스로 현실에 맞게 재구성하면서 옳고 그름에 대해 잣대와 기준을 제시하고 인격적으로 성장을 시켜주기도 하죠. 아마 <국어시간에 소설쓰기>를 펴내신 김은형 선생님도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고자 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업에 지친 학생들의 푸석푸석한 마음 한켠에 숨겨져 있는 즐거운 상상력.
청소년 시절 소설은 저에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꿈의 발판이 되어주었습니다. <국어시간에 소설쓰기>의 시안 의뢰를 받고 작업을 하기 전 꼭 담고 싶었던 핵심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책의 표지만 보고도 아이들의 안개 같은 머릿속에 숨겨진 상상력을 끌어내 주자. 과연 표지 한 장으로 모든 것을 끌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참 생각은 그럴 듯 했죠.)
“모노톤에서 멀어지고 안개 속 파스텔톤으로 가자!”
아이들의 상상력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현대적이면서도 고전적 색체가 묻어나는 모노톤의 느낌보다는 안개속에 들어온 듯 모호한 파스텔톤으로 학생들의 머릿 속 상상의 세계를 꾸며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최대한 모노에서 멀어져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한 면을 이등분으로 분할하여 상단에 크게 잡혀 있는 이미지를 화사한 네모박스에 담고 그 안에서 사물이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으로 입체감있고 생동감 있게 구성을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어때요? 제가 의도했던 모습 그대로인가요? 그런데 전과 달라진 건 크게 없는 것 같네요. 좀 더 말하자면 단 권이 아닌 시리즈이다 보니 “읽기”의 타이포를 동일하게 구성하고자 했죠. 제 이런 생각과 달리 실장님께서는 “타이틀 교체해라.”라는 차갑고 건조한 음성만을 남겨주셨죠.(아 귓가에 맴도는 실장님의 음성 -_);;
저는 그후 한동안 다시 멍만 때렸습니다. 타이틀을 어떻게 잡지? 어떻게 해야 좀 더 다른 느낌으로 책이 나올 수 있을까? 그렇게 여러 출판사의 책들을 리서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기존 디자인과 비슷하지만 차별화된 뭔가가 필요하다.”
아무래도 살짝 다르게, 차별화된 독특한 점을 찾아 디자인하기란 숟가락으로 벽을 파내는 것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시리즈란 책이 서가에 꽂혀 있을 때 매대에 같이 모여 있을 때 힘을 발휘하다 보니 읽기와 쓰기를 아예 다르게 디자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숟가락으로 벽을 계속해서 파내기를 수 차례. 여러 가지 타이포를 만들어 넣고 빼고를 반복하다 보니 ‘그래, 그냥 단순하게 가자.’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배치를 해봤습니다. (디자이너는 사실 사소한 생각으로 디자인하면 안 됩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질타당하기 십상이죠.) 아, 그런데 웬걸? 괜찮더군요.ㅎㅎ;;;; (힘들어 포기한 거 절대 아닙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주 독자층이 중학생이라는 사실과 그들에게 책을 펴기 전 화사한 상상을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파스텔 색상에 종이는 엑스트라 화이트로 결정했습니다. 이미지의 배치는 아까 말했듯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입체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습니다. 기존 하얀 박스는 걷어내고 이미지 아래쪽에 배치해 안정감도 주었고요. 마지막으로 다른 회사들은 로고가 작은 데 비해 저희 회사는 책에 로고가 꽤 크게 들어갑니다. 불만이라면 불만이겠지만 이것도 자세히 뜯어보면 굉장히 과감하고 심플한 디자인적 요소입니다. 로고가 커서 참 좋습니다. (진심입니다.ㅎㅎ) 이렇게 로고까지 딱! 하고 박히니 휴머니스트의 국어시간에 소설쓰기 1, 2권이 완성되었습니다. 제 마음이 학생들에게도 전해지길...
B급이 될 만한 표지는 없는 것 같아서 B급 사진은 올리지 못했습니다. 저에겐 이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B급이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결과물이 A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작업할 디자인 시안이 왠지 제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군요.) 이 책을 읽으며 상상을 펼치고 있을 중학생 여러분! 이렇게 고생고생하며 디자인한 책 꼭 끝까지 읽고 창작에 묘미를 즐기세요. 지금까지 휴머니스트의 아직까지는 B급 디자이너 최요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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