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좋아합니다."
아니, 좋아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학창시절, 저는 수학을 좋아했습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수학을 좋아했다는 말은 용기가 필요한 고백입니다.
‘나 수학 좋아했어’라는 말은 ‘나 공부 좀 했어’나 ‘난 논리적이고 냉철한 도시 남자/여자였음 ㅋ’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거든요.
사실 저도 수학을 조금 잘하긴 했습니다. 맨날 틀려서 선생님께 혼나는 과목을 좋아할 수는 없었겠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수학을 좋아했던 이유는 좋은 성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수학이 가진 명확함과 정확함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 틀렸는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국어나 사회와는 달리 수학은 정답을 맞히든 못 맞히든 그 이유를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문제를 풀었을 때의 쾌감도 훨씬 크고요. 가끔이지만 놀라운 ‘증명’을 이해하게 됐을 때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양 짜릿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단원은 수학적 귀납법! n이 1일 때 성립함을 보이고, n이 k일 때 성립한다고 가정하고 n이 k+1일 때 성립한다는 것을 보이면 이 명제가 모든 자연수에서 성립한다니... ‘이렇게 편리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방법이 또 있을까’라고 감탄하셨던 수학 선생님을 보며 ‘왜 저러시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함께 놀라워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오랜만에 찾아본 수학적 귀납법. 이런 원리를 가지고 있네요. 아, 머리가... ㅠㅠ
세월이 흘러 인문대학에 입학하고, 인문팀 편집자가 되어 수학과 별로 마주칠 일이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예술이 무엇인지를 묻는 책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딴짓을 하다가 발견한 책은 바로 J 님이 편집한 <수학을 낳은 위대한 발견들>. 이 책은 수학에 관한 핵심적인 질문 20가지를 다루고 있는데, 마침 그중에 ‘수학은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무슨 내용인지 잠깐 보려고 하다가 그만 ‘마감하다 딴 책 읽기’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휴머니스트 책이라서 광고 같지만, 이 책 정말 재미있습니다. 특히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학이 어떻게 쓰이고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질문 1. 수학은 왜 존재하는가?’, 무한대라고 다 같은 무한대가 아님을 알려주는 ‘질문 6. 무한대는 얼마나 큰가?’, 평행선을 통해 기하학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 7. 평행선은 어디에서 만나는가?’는 정말 강추입니다. 이열치열로 골치 아픈 머리를 더 골치 아픈 문제로 해결해보고 싶으시다면 ‘질문 20.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는가?’을 읽어보셔도 좋겠네요.
수학은 참 멀게 느껴지는 학문입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수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니 J 님께서 ‘진심이신가요......? ㅋ’라는 메시지를 보내셨을까요. 물론 저도 물건을 사면서 머릿속으로 덧셈이 안 돼 핸드폰을 꺼내들어 계산을 하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수학책을 읽다보면 수학을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재미있는 수학책과 이번 주말을 보내시는 건 어떨까요?
- 런닝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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