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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책

그 멋있는 자취방 문짝에는...




제대하고 인천에서 서울로 다니기가 너무 멀어, 사실 빨리 집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컸기에 자취방을 알아보고 다녔다.


 노고산 일대를 샅샅이 찾아다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에나 나올 법한(흰색 페인트 칠을 한 건물이 북향으로 해를 등지고 가운데 수돗가를 건물이 둘러싸는 그런 구조였다) 방 하나가 싸게 나왔는데, 철계단을 타고 돌아서 3층까지 올라가면 아이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철문이 있고 그 안에 조그만 방 두 개를 각각 세를 놓고 있던 집이었다. 한마디로 그냥 대충 만들어 놓은 방이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8만원짜리여서 인근에서는 가장 싼 집이었다.


 망설이다가 자취방 문짝에 적혀 있는 글 때문에 그냥 살기로 했다. 갓 제대한 터라 보증금도 동아리 친구에게 빌려 내고,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면서(헌책방, 예비군연대, 과외 2개, 학부조교, 이삿짐센터 등등) 갓 제대한 복학생의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내 생애 가장 풍족한 생활을 누리던 때였다. 술 먹고 철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 허름한 집이 정말 멋있다고 느꼈다. 아마 감수성이 가장 풍부했던 문청시절이라 좋다고 살았지 싶다. 수시로 쥐와 바퀴벌레와 마주하고, 겨울에는 며칠만 비워놓아도 보일러가 터지는 그런 집이었다.


 그 방에는 다락이 하나 있었는데, 전에 살던 사람도 청소는 포기했는지, 그거 청소하다가는 내 허파를 청소해야 할 것 같아 포기하고 그냥 살았다. 더러워서 열어보지 않은 그 다락방에서 필시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고 무서운 밤 이불 뒤집어쓰고 혼자 온갖 시나리오를 다 떠올리며 가위에 눌린 날도 많았다. 그러나 그 비밀의 다락방이 있어 내 자취방이 더 멋있었던 것 같다.


 겨울 어느 날은, 제대한 군 후임병이 여자친구와 함께 서울에 왔다며 술 한잔하자기에 나갔다가 두 사람을 내 자취방에 재워 놓고 2층 빈 방에서 자다가 그대로 입이 돌아가지 않는 증상으로 자칫 바보가 될 뻔했다. 그래도 두 연인을 재울 수 있는 자취방이 있어 그 집이 그렇게 멋있었다. 참 옆방에는 직장인이 살고 있었는데, 서로 마주칠 일은 없었다. 아, 화장실을 같이 쓰다 막혀서 그 방문을 두드려 ‘싼 놈이 치우자’고 항의했던 적은 있었다.


 그렇게 그 집에서 1년 여를 살다가 동아리 친구가 보증금이 필요해 돌려주고 고시원으로 들어갔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 집은 참 멋있었다. 그 멋있는 자취방 문짝엔 하얀 수정잉크로 이런 시가 쓰여 있었다. 아직도 그 시를 써 놓은 전 자취생의 안부가 궁금하다.

 


별의 감옥

 

저 입술을 깨물며 빛나는 별

새벽 거리를 스미는 저 별

녹아 마음에 스미다가

파르륵 떨리면

나는 이미 감옥을 한 채 삼켰구나

 

유일한 문밖인 저 별

 


(장석남)

 

추신) 마감 때 책 잘 안 읽습니다. 요령 피우다, 또 시 한 수로 때우는군요...

 

밥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