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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책

패션쇼하러 출근한다

 

 

 

휴로그의 다른 연재글에서 몇 차례 언급된 바가 있는 2012년 송년회 날, 그 중에 내가 가장 기대하고 바랐던 상은 패셔니스타 상이었다. 다른 상도 아니고 패셔니스타 상을 기대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나는 대체로 패션쇼하러 출근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놀러간다고 하고, 누구는 패션쇼하러 간다고 하고, 이 회사 큰일났다.)

 

 

마감할 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사실 딴 책 읽기보다는 딴 옷 사기. 열심히 일한 데에는 물질적 보상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1.5개월에 1권 정도를 마감하는 요즘의 출간 일정에 내 옷장은 야금야금 사들인 옷들로 미어터질 지경이 되고 말았다. 딱 봐서 새 옷이 부쩍 많아졌다 싶으면 이 인간이 요즘 정신없이 바쁘군.’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고 옷을 잘 입는다고 착각하진 마시길. 옷의 갯수와 패션 감각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이 넘치는 물욕을 인문학적으로 정당화시켜보고자 읽은 책이 바로 펑크에서 코르셋까지 : 현대사회와 패션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이다. 이 책은 런던 패션 칼리지에서 문화 연구를 강의하고 지금은 품질보증학과(?!?)의 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패션의 역사에 있어 특정한 스타일이 탄생하게 된 계기와 그 디자인의 정체성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저자는 당대에 아름답다고 여기는 패션은 반드시 시대적인 맥락에 기인하며, 어떤 옷을 입는가에 따라 옷 입는 주체의 정치경제적인 입장이 드러난다는 데 주목한다. 한마디로 말해 패션 또한 사회적 행위라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데는 저자가 런던 출신이라는 이유도 한 몫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계급사회가 유지되었던 유럽의 경우 그에 따른 패션의 분화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주로 사교 무대에 따라 용도가 분명히 갈리는 옷을 입었던 부르주아의 옷차림과 튼튼한 워크웨어를 주로 입었던 노동계급의 옷, 그리고 히피의 옷차림이나 정치적 자유주의자의 쁘띠부르주아적 옷차림 등이 바로 그러한 구분을 잘 드러내주는 경우다. 이와 달리 일본의 경우 옷 입기에 있어 개인의 다분화된 취향을 철저하게 따를 뿐, 그것이 계급적 성향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한국은 어떨까? , 사실 이건 참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우리네 옷차림은 계급과 취향을 떠나 참으로 무채색이다. 무슨 이유에선지 과감한 색상과 디자인보다는 안전한 무채색이 대세다.

 

 

 

그 사회의 특성을 떠나 이야기하더라도 옷차림은 개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몇 년을 입어도 시접이 나오거나 하는 법 없이 깔끔한 옷차림을 고수하는 사람, 같은 디자인의 옷을 몇 벌 씩 사 입는 사람, 디자인보다는 잘 만들어 오래입고 다닐 수 있는 튼튼한 원단과 바느질을 중시하는 사람 등등. 이것만 보아도 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충분히 드러나니 말이다. 펑크에서 코르셋까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의 공통점을 묶어서 살펴보면 패션이야말로 당신 삶의 공간과 역사, 그리고 당신이 발 닿은 사회의 맥락을 드러내는 하나의 현상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전 시대와 분명한 단절을 보였던 근대의 옷차림에 대한 설명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이전 시대에 비해 패션 산업을 주도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옷, 특히 빈티지 옷을 사랑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이제는 잊혀진 공정과 기원들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싼 값에 많은 옷을 살 수 있다는 게 가장 주된 이유이지만)  지금은 한국 땅 어디에서도 만들지 않는 옷들을 발굴하면서 누가 왜 입었는가, 누가 왜 만들었는가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쁜 옷을 바라보는 다양한 맥락과 현재와의 접점을 찾는 것, 그냥 옷을 입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것을 일종의 행위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과대망상적 옷 입기의 즐거움이다.


 

 

요즘 내가 제일 갖고 싶은 옷은 셀비지 (salvage) 청바지이다. 한 때는 노동자들의 옷이었으나 제작 공정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직조기술의 개발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그 청바지. 지금은 그 직조기계를 보유한 일본과 미국에서만 옛 방식 그대로 복각하여 만드는 두툼하고 튼튼한 원단의 그 청바지. 옷에 맞추어 살을 빼야하는 스키니 바지가 아니라 입으면 입을수록 내 몸에 맞게 주름이 잡히고 색깔이 빠지는 그 청바지! 이제는 비싸서 쉽게 살 수 없는 고급 의류가 되었지만, 내 옷장에 걸리면 마치 나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다. (언젠간... 입을 수 있겠지?) 너무 뻣뻣한 청바지라 살이 쓸려 제대로 걷질 못할 수 있으니 혹시 그런 몰골을 보게 된다면 마음껏 비웃어주시라. - 아이참 

 

 

 

추신! 옷입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법한 드라마가 있다. 미국 HBO 방송국에서 메인 드라마로 반든 <보더워크 엠파이어>. 1차 세계대전 이후 역동하는 1920년대의 옷차림을 그대로 복원해 내 보는 내내 흥미롭다. 잘 만든 울 정장을 입은 마피아들, 일하는 여성들의 멋진 정장과 셔츠, 상류층 여인들이 가정에서 입던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