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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책

프랑스적인 삶

 

 

프랑스적인 삶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일상은 매일 반복되는 듯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버린 시간은 어느 순간 나의 발치 앞에 사건으로 당도해 있다.

1219. 텔레비전도 없는 원룸에서 인터넷에 뜬 단신들을 주시하며, 한편으로는 그래프가 거짓말처럼 꺾여버리길 바라면서, 다른 한편으론 글렀어. 젠장욕지거리를 나직이며 단념하고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 있는 반찬을 꺼내어 밥을 먹었고, 평소처럼 반주로 맥주 한 잔을 마셨으며, 어제 하루 손에서 놓지 못했던 뜨개를 계속하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간만의 휴가에 벅찬 마음도 잠시, 회사 업무일지를 둘러보다가 며칠 전 마감했던 책에 큰 제작사고가 났다는 소식에 무너지는 듯 주저앉았다. 결국 지난 날 누가 대통령이 될지 마음 졸인 일은 텔레비전 너머 스펙터클을 향한 스릴감에 불과한 일이었다. 몇 개월 동안 보듬었던 책의 제작사고 앞에서의 이 선명한 절망감 앞에 비하면 말이다.

 

 

그러나 몇 년 동안 노력한 끝에 마침내 행복과 평안에 이르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언제나 그런 순간에 사건은 일어난다. 우리를, 우리의 꿈과 노동을 단번에 땅바닥에 쓰러뜨리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프랑스적인 삶> 159

 

 

장 폴 뒤부아르의 <프랑스적인 삶>은 목차 구성에도 독특하다. 주인공 폴 블릭의 삶은 마치 역사책의 시대구분처럼 당대 대통령의 이름과 임기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 독자들은 아마 그 목차를 보고, 프랑스 역사를 관통하며 살았던 어느 열사의 삶이려니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폴은 고작 성적 욕망에 몸 둘 바 몰랐던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학생 때는 당대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섹스와 밴드 음악을 즐겼을 뿐이고, 어느 날 아내 마리를 만나 아이를 낳아 열심히 일하며 아이를 키웠을 뿐이다. 어떤 무리의 선봉으로 섰던 적도, 대의 앞에 목숨을 바칠 듯 싸운 적도 없이, 역사의 한 귀퉁이에서 고작 몇 해에 한 번씩 텔레비전 너머 새로 당선된 대통령의 얼굴을 마주한 것이 전부인 삶이다. 소재로만 본다면 도대체 이 소설은 어쩌면 특별한 사건이 없는 소설인 게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중 어느 하나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없는 것이 있을까. 폴 블릭의 여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프랑스적인 삶이란 무엇인가를 짐작하게 된다. 마감한 책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은 개인의 감각과 거주의 문제, 여행의 순간 등, 일상적 요소 하나하나가 사회학의 사유 대상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물리적인 거리와 안과 밖의 경계가 더 이상 무의미한 시대, 사람들의 삶과 욕망이 이전 시대의 그것과 같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이를 탐구하는 학문적 방법론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이 국민국가의 시민으로서 덩어리 개인을 살펴볼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이동하고 외부와 관계 맺으며 변화하는 주체들을 주목해야 한다는 거다. <프랑스적인 삶> 속 폴 블릭의 삶 어디에든 도사리고 있는 작은 사건들은 결코 어제의 폴 블릭을 오늘의 폴 블릭과 같을 수 없게 만든다. 시간은 예외 없이 흐르지만 그 예외없는 물리적 조건 앞에서도 과거와 현재의 나 사이에는 분명한 단절이 있다. 대통령 임기처럼 그것이 눈에 보이는 단절로 다가오진 않더라도, 분명 폴 블릭의 삶은 (그리고 우리의 삶도) 다 같지 않다.

 

그 어떤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에도 때때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새들어오는 것은 우리의 몸이 새로운 사건 앞에 늘 무방비한 상태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를 넘어선 사회학>은 사회학이 과거의 방법론 안에 갇혀 있어서야 더 이상 사유의 장으로서 작동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현재의 삶을 성찰하는 것은 또 다른 무엇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2000년대 초반의 극적인 변화의 물결을 목도한 사회학자가 느끼는 불안감과 무력감에서 스스로 발동한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폴 블릭이 중년의 삶 어느 한 가운데 마주하게 된 삶의 무력감을 그 자체로 사건으로 보고 다시금 자신의 삶을 읽어냈듯이 말이다.

 

그래, 오늘의 실수를 통해 나는 어제보다 좀 더 유심히 검판을 할 테다. 그만한 대가도 치렀으니 그런 실수는 다신 안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건 더 많은 경험을 쌓는 것과 동시에 더 많은 절망을 통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선 다음날 더 힘 빠지는 소리를 해본다. 다음 연재글은 브라이언 보이드의 <이야기의 기원> 마감 중에 쓴다.

 

-아이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