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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하승창|상상력이 권력을 바꾼다

시민운동의 시대, 세상을 바꾼 시민단체들

 

 

 

 

 

1990년대 시민단체들이 이룬 성취는 지금 돌아봐도 대단한 것들이었다. 경실련의 금융실명제 주장이나 한약 분쟁의 조정과 중재, 토지공개념 3개 법안의 입법에 대한 기여, 공명 선거운동을 통한 선거제도의 변화 참여연대의 부패방지법, 소액주주 소송을 통한 기업 경영의 투명성 제고, 처음으로 우리 사회가 복지에 눈 돌리게 한 국민생활최저선운동, 우리 사회가 생태적 가치에 주목하게 한 환경운동연합의 동강댐 건설 반대, 환경단체들의 쓰레기 종량제 시행 요구 등 나열하자면 한이 없을 것 같은 아주 구체적인 성취들이 각 단체의 프로필란을 장식하고 있다.

 

이들이 이룬 성취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의 변화와 관련해 작지 않은 의미가 있는 것이고, 다 살펴보자면 그것만으로도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예컨대 경실련의 금융실명제 주장이 김영삼 정부에 의해 전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시민단체를 매개로 한 정책대안운동의 현실성이 확인된 셈이다. 실제로 초창기 경실련의 정책위원회는 학현그룹이라 불리는 변형윤 교수의 경제학자 중심 제자 그룹이 이끌어갔지만, 금융실명제의 시행으로 그간 참여를 망설이던 전문가들이 대거 경실련에 참여했다. 당시 정책실 간사로 일하면서 20여 개 분과에 분과마다 10여 명 이상의 전문가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었고, 1990년대 중반에는 지역 경실련에 참여하는 전문가들까지 하면 수백 명의 정책 전문가가 경실련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랐을 정도였다.

 

 

 

 

 

1993812일 금융실명제 시행 전격 발표 후, 이를 적극 환영하는 경실련의 모습이다. (출처: 경실련 홈페이지)

 

 

 

정부와 시민단체 간의 정책토론은 이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반독재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조직이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현실 참여가 어려웠던 교수나 변호사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현실 참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기도 했고, 이전에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면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정부 관료들과 함께 토론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지금은 이런 일들이 워낙 일상적이어서 별로 주목받을 일이 아니었지만 당시로써는 큰 변화이기도 했다. 그만큼 사회적 공론의 장을 확대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확장에도 이바지했다.

 

또 참여연대의 소액주주운동을 통한 재벌 기업들의 경영 투명성 확보와 관련한 문제 제기와 소송을 통한 승리는 관련 법 제도의 개선으로 이어지면서 시민단체들이 기업의 문제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 준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한 번도 관심 있게 보지 못했던 기업의 주주총회의 모습이 시민들에게 알려지고, 그 기업의 경영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재벌이 어떻게 기업을 소유하고 마음대로 경영하고 있는지 그 민낯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누가 삼성전자의 주주총회장에서 거대 재벌과 다투는 소액주주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겠는가? 당시 참여연대의 활동 중에 돌아보면 지금도 우리 사회의 과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들이 적지 않지만, 국민생활최저선운동의 경우는 지금처럼 복지가 시대적 과제로 사회적 공감대가 넓어지기 전에 시작했다는 점에서 참여연대의 통찰은 의미 있게 평가받아야 한다.

 

환경단체들의 동강댐 건설 반대 운동이 실현된 것도 정부의 대규모 개발 사업도 시민단체들이 변경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동강댐 건설 반대 운동 당시는 인터넷이 조금씩 확장되어 나가던 시기인데, 웹사이트에 올라온 동강의 아름다운 사진은 여러 사람의 감성을 흔들었고, 환경운동연합은 실제 동강으로 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동강을 보게 함으로써 동강을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면서 반대 운동의 동력을 만들어 나갔다.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동강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환경운동연합과 마음을 모은 시민 노력으로 우리는 지금도 아름다운 동강을 만날 수 있다. (출처: 관광정보시스템 홈페이지)

 

 

그 외에도 다른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나열하자면 셀 수 없을 만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성단체들의 호주제 폐지운동도 1990년대 여성운동, 시민운동의 대표적 성과라 할 수 있고, 김대중 정부 시절 설치된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1990년대 인권운동의 성과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처럼 잘 알려진 큰 시민단체들의 성과는 물론, 작은 단체들의 성과도 우리 사회의 변화에 이바지한 바가 만만치 않다.

 

요즈음 세종로 사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16차선으로 넓디넓은 도로를 횡단보도로 건너다니지만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세종로 사거리에는 횡단보도가 없었다. 교보문고로 이어진 지하도로 건너다녀야 했고, 그래서 그런지 지금처럼 세종로 사거리가 사람들로 붐비지도 않았다. 그저 넓은 도로에 차들만 지나다닐 뿐이었다. 이 거리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것 중 하나가 횡단보도의 설치다. 물론 청계천 복원도 큰 몫을 했지만 청계천 복원보다 앞선 것이 횡단보도의 설치였다. 녹색교통운동이라는 교통사고 유자녀들을 돕는 교통운동단체가 있다. 이 단체가 끈질기게 서울시의회와 싸우면서 한 일 중의 하나가 보행권조례제정운동이었다. 1997년 서울시가 보행권 조례를 만들고 나서, 세종로 사거리에 세종문화회관과 동화면세점을 잇는 곳 딱 한 군데에 횡단보도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네 군데 모두 설치되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단 한 군데 만들었지만 장애인이나 노인 등 교통 약자들이 얼마나 반가워했겠는가?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었던 도시교통정책에 사람이 우선이라는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 나는 그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녹색교통운동이 이 횡단보도는 녹색교통운동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정확하게 맞는지는 모르겠다)라는 플래카드라도 걸어서 자신들의 노력을 알리려 했지만, 지금 아무도 그것이 녹색교통운동이 노력 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횡단보도 이후 교통 약자들을 불편하게 했던 육교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다른 도시들도 보행권 조례를 만들기 시작했다.

 

 

 

 

세종로 사거리 횡단보도 생기기 전(출처: 서울시 공식 블로그)

 

 

세종로 사거리 횡단보도 생긴 후(출처: 서울시 공식 블로그)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세종로에 횡단보도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녹색교통운동의 노력으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처럼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민단체들이 일구어낸 변화도 절대 작지 않다. 서울의 시민단체들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영향력을 확장해가던 시기에 지역에도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을 직선으로 뽑기 시작하면서 전국 도시별로 지역 시민단체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한 활동도 본격화된다. 최근 박원순 시장이 마을을 중요한 변화의 화두로 들고 나왔지만, 마을 만들기 운동은 이때 이미 시작된 운동이다. 1995년에 경실련 조직국장을 하던 시절 1년이면 따져보지 않았지만 조금 과장한다면 거의 절반은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교통 사정이 지금과 달라 대전보다 멀리 가면 자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조직국장을 하면서 20개이던 지역경실련이 40여 개로 늘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처럼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의 지부이거나 네트워크 된 지역단체들이었고, 자신들의 독립적 지위를 가진 지역단체들이 많이 생겨나는 것은 2000년대에 가서야 볼 수 있게 된다. 가히 시민운동의 시대라 할 만큼 폭발적으로 시민단체들이 증가하던 시기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