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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책

편집자에게도 애도의 순간이 필요하다. 《애도 일기》

프로이트의 환자들(김서영 저)이란 책을 보면 흥미로운 사례가 나온다. 프랑스와 영국(? 잘 기억이 안 난다)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이어온 한 연인이 있었다. 2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주말마다 그 먼 거리를 오가면서도 거리감 없이 완벽한 연애를 즐겼던 이 커플은 드디어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그러나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둘의 관계는 깨어지고 만다. 여자는 이해할 수 없는 이 결과로 인해 우울증에 걸려 프로이트를 찾는다. 프로이트는 이 여인과 함께 ?’를 추적해나가던 중, 우연히 여인의 어렸을 적 기억을 들춰보게 된다.

 


어렸을 적 이 여인의 아버지는 병이 깊었다. 그러나 가족 중 누구도 아버지의 병세를 아이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 아이가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 그러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아이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도 못한 채 아버지를 한순간 잃고 말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아버지를 향한 애도의 과정이었다. 아버지에게 잘 가시라는 말 한마디를 하는 것, 그것이 필요했던 거다. 이 여인이 2년 간의 연애를 통해 즐긴 것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는 그 순간이 아니라, 주말동안의 짧은 만남을 끝으로 남자와 헤어질 때, 그 가슴 떨리도록 아쉽고도 달콤한 이별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상실의 순간, 이별의 의식을 반복하는 것이 이 여자에게는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 눈물겨운 애도의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또 다른 책이 있다. 바로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이다.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르가 죽고 난 다음 날부터 바르트가 쓴 일기를 모은 책이다.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을 때 겪을 수밖에 없는 깊은 슬픔. 보통의 사람들은 그것을 잊기 위해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바르트는 상실에서 오는 슬픔을 집요하게 파고들려 했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 태아처럼 어른으로 자라나지 못한 바르트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그 탯줄이 끊어져 나가자 격렬한 슬픔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그 슬픔에 관해 써내려가는 것은 바로 애도의 과정이며 삶의 재생이었다. “마망과 하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몸에 새로이 각인시키면서, 마망과 다른 자신의 존재를 새로이 인식하고 다른 존재로 살게 하는 과정을 글쓰기로서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트는 이 상실에서 나아가지 못했던 것 같다. “마망, 왜 당신을 애도해야 한단 말입니까단말마의 절규가 그의 심정을 이해토록 한다. 애도일기를 마친 2, 바르트는 건널목에서 트럭에 치여 죽음을 맞이한다. 애도의 과정은 자신이 동일시했던 유일한 존재의 상실을 자각하고 상처를 아파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을 겪어낸 후에 우리는 깊은 우울에 빠지는 대신 자신의 존재를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바르트는 죽음과도 같은 글쓰기의 고통을 이겨낸 이후에도 결국 마망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그리고 자살과도 같은 죽음을 맞이했다.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한복을 버리지 못해 4년이 넘도록 명절마다 꺼내어 걸쳐 입는 아버지를 보았을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 아버지도 자신의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순간순간이 있구나. 아버지는 한 달 전, 할아버지의 두루마기를 태워 하늘로 보내고 소주를 한잔 드셨다.

 

 

생각해보면 편집자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다보면 이 책이 나인 것 같고, 내가 이 책인 것 같은 묘한 동일시를 느끼게 된다. 물론 책을 만들 때 책과의 거리두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원고를 만지다보면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교정지의 원고가 필름이 되어 나오고, 제본된 책으로 만들어져 나오면 그제야 내 손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는 책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 듯하다. 그맘때 벌어지는 일은 바로 책에 관한 보도자료 쓰기이다. 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책을 공식적으로 거리두기 하면서 이 책에 대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나에게는 애도일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나와 책은 본래 하나가 아님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면서 정성어린 편지를 쓴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보도자료를 쓰다가 문득 이 작업이 나에게 꼭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도자료는 생각만큼 잘 써지지 않는다.

 

-아이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