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개가 집을 나갔어요!
"혹시 개 좋아하시나요?"
대한민국에서 이 말 좀 수상하게 들릴 수 있는데, 저는 개를 참 좋아합니다.
여섯 살 때 귀를 물려 몇 바늘 꿰면 경험이 생생한 데도, 저는 개를 참 좋아합니다.
우리 집에는 두 마리 개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큰 녀석은 보더콜리 종, 작은 녀석은 스피츠 종입니다. 오늘은 보더콜리 단오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보더콜리는 양을 모는 개예요. 하루에 서울에서 대전까지 갔다 올 만큼 활동량과 행동반경이 어마어마한 견종입니다. 젓을 갓 뗀 세달박이 강아지 때 단오를 데려왔는데, 녀석은 하루만에 1미터 펜스를 기어올라 집밖으로 탈출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후로도 단오는 언제나 밖으로 나갈 궁리만 했지요.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사는 곳이 비교적 조용한 시골마을이라 우리는 그 녀석에게 '무한한 통행'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단오의 움직임은 과연 부산했습니다. 하룻강아지가 하루의 절반 이상을 동네 개들과 어울려 다니며 온 동네를 제 집처럼 드나들었지요.
얼마 안 있어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는 제 집사람에게 은근히 한 말씀 던지셨답니다.
"저기 저 아래 집 가히(개)가 새끼를 낳는데 그 집 가히랑 똑같이 생겼어."
"예? 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
아! 생후 12개월도 안된 녀석이 애기 아빠가 된 것입니다! 다행히 동네 어르신들이 강아지가 예쁘다며 나누어 키우시게 되어 문제는 없었습니다만…우리로서는 얼마간의 정신적 충격을…받았지요.(인간의 결혼은 너무 늦은 거 아닌가 하는 반성? 컬처쇼크?)
본격적인 문제는 다음 해에 생겼습니다. 봄이 오자 집집마다 밭에 씨를 뿌리기도 하고, 모종을 심기도 했습니다. 작물의 발육을 돕기 위해 그 위에 검은 비닐을 씌워 놓기도 했는데…단오는 농사 따위 아랑곳없이 이전처럼 밭들을 가로질러 활개를 쳤습니다. 할머니들의 민원이 이어졌고…그뿐 아니었습니다…밤늦게까지 돌아다니며 묶여 있는 동네 개들을 시끄럽게 만드는가 하면, 남의 개 밥그릇을 탐하기도 하고, 여자 문제였는지 다른 수컷을 물기도 하고…
결국, 우리는 민원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단오의 통행권을 제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집안과 베란다에서 키우되, 단오가 원할 때는 마당에 묶어 놓는다. 하루에 한번 산책은 반드시 시켜 준다 등등…
하지만 이 '길바닥 출신'의 개는 자신의 처지를 쉽게 인정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자유를 꿈꾸는 단오의 눈빛을 외면하지 못한 저는 가끔 리드 줄을 실수로 놓친 척 풀어 주기도 했습니다. 집사람도 그런 나를 타박하면서도 내심 시원해 하는 눈치였고… 녀석은 보통 한두 시간 놀다 깔끔하게 귀가했기에 그런 모호한 상황이 안정감 있게 유지되고 있었지요.
지난 설 연휴, 단오에 대한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밤에 풀어 준 녀석이 다음 날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녀석이 가출을 한 것이지요!
차에 치이지는 않았을까? 나쁜 사람들에게 잡히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명절을 쇠기 위해 하루를 더 자고 집에 돌아왔지만 녀석은 여전히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결국 단오를 만난 곳은 집 근처, 이웃 동네 어귀였습니다. 차를 몰고 마을 주변을 점점 넓게 돌아보겠다는 계획이었는데,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놀고 있는 단오를 목격했습니다.
(달리면 10분도 안 걸릴 집에 잠시도 들르지 않은 겁니다! 2박 3일 동안! 이눔시키가!)
자그마한 흰색 암캐와 함께 정답게 뛰어다니고 있었지요. 평화로워 보였답니다.
잘 지내고 있는 것이… 허탈하면서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단오도 주인의 차를 알아보고 달려왔습니다. 내게 와서 눈인사는 했지만 집에 가기는 싫은 눈치였고요. 그렇다고 2박 3일 집에 들어오지 않은 녀석을 그대로 두고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헤어지기 싫어하는 연인 암캐, 수캐를 갈라놓을 수밖에요. 단오를 번쩍 들어 뒷좌석에 태웁니다. 단오는 몸부림을 칩니다. 여자아이는 멀리서 안타깝고 걱정되는 눈빛으로 단오를 쳐다봅니다.
아, 이게 무슨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나쁜 부모 역할인가요!"
집에 돌아온 단오는 그날 내내 잠만 자더군요. 불타는 연휴를 보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기절한 듯이 쿨쿨 자는 녀석을 보며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너에게 자유 시간은 없을 거야, 시키야!'
그리고 이번 주말, 단오와 산책을 하다가 다시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 자그맣고 하얀 암캐 말이지요. 그녀를 본 단오는 모든 것이 그녀에게 향합니다. 나는 애써 모른 채 집에 가자고 줄을 끕니다. 힘으로 나를 제압할 수 있다면 단오는 나를 내동댕이치고 갈 태세였어요. 있는 힘을 다해 사륜구동 네 발로 버텼고, 그녀는 1미터 뒤에서 단오를 따라 옵니다.
억지로 끌려 돌아온 단오, 대낮에 길게 하울링을 합니다.
오~~~~오~오~오!
"너 잘 있지? 나도 잘 있어!"
들릴만한 거리는 아니지만 그녀에게 그 소리가 전해지길 함께 바랍니다.
개와 함께 산다는 것, 참 여러 가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아무래도 또 단오의 리드줄을 실수로 놓치게 될 것 같습니다.
초식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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