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책

시대를 떠받치고 있는 알바들을 위하여...





시대를 떠받치고 있는 알바들을 위하여

 

마감하다 감기는 눈을 뜨려고 근처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면, 뚱하니 불친절하게 커피만 ‘턱’ 내놓는 종업원에 분개하며 도대체 왜 좀더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지 혼자 화낸 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깟 일에 분개할 필요가 없어졌다. 책에 의하면 그게 알바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근무태도니까….

 


‘유령학자’(저자에 의하면 떠돌아다니는 시간강사를 일컬어) 이남석 선생이 대한민국 알바들을 위한 발칙한 충고를 담은 《알바에게 주는 지침》을 뒤늦게 읽었다. 이 책은 노동이론을 전공한 저자가 실제 알바들을 인터뷰하고 현장조사한 내용을 통해 알바들이 처한 직업현실의 본질을 적확하게 꿰뚫고 있다. 편의점 알바의 고리 꼭대기에 있는 대기업 자본의 횡포를 일갈하고, 계량기에 잡히지 않는 짜투리 기름을 ‘빵구’로 처리해 알바의 돈을 빼먹는 주유소 노동의 야비함을 들추고, 맥도널드가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노동에 왜 서열을 정하는지, 1년에 3만 명 이상의 맥도널드 알바들이 결국은 맥도널드 햄버거만 찾는 ‘빠’가 되는지, ‘칼치기’하는 오토바이 배달알바의 본질이 어째서 대자본의 수익을 좀더 빨리 증진시키는 모세혈관인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아울러 인간으로서 착취당하지 않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복수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가령 배달알바는 산재를 요구해야 하고, 주인이 산재신청을 해주지 않으면, 수금한 돈을 가지고 도망가라고 한다. 법질서(?)의 눈으로 보면 황당한 얘기지만 늘 당하고 사는 알바 입장에서는 통쾌하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현실적이라는 데 있다. 통계조사 자료나, 이론으로 한두 줄 언급하는 ‘어려운 현실’이 아니라, 알바들의 실상을 실제 인터뷰를 통해 정밀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과 같은 일갈이 더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왜 죽은 전태일에게만 관심을 갖는가? 현재를 살면서 70년대 청계피복노조 공순이, 공돌이 못지않게 고생하며 살아가는 알바들에게 관심을 가져라.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알바를 하다 지치고 희망 없는 삶 때문에 목숨을 버려야 하는가.”

 


이 책은 《걸리버 여행기》를 쓴 조나단 스위프트가 당시 하인들을 위해 쓴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란 책의 패러디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진하게 느껴지는 이 책은 그래서 유쾌한 풍자이지만 슬픈 에세이다.

편의점 알바부터, 배달 알바, 맥도널드 알바, 주유소 알바, 전단지 알바, 시간강사 알바, 노래방 알바, 고깃집 알바… 이들이 ‘알바’를 하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그러니 더 악독하고 처절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이 책은 선동한다. 배운 먹물이 같잖은 세상에 되돌려주는 최고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