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생태 보고서 02: 신입 편집자는 어떻게 편집장이 되는가

 

 

 

※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 뭐하세요?

푹 쉬면서 한 주 피로를 풀려는 분들고 계실 테고,

벚꽃이 절정이라고 하니 꽃구경 가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벌써 훌쩍 지나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지난 주말,

저는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타페스트 호텔>을 봤습니다.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1927년, 세계 최고 부호 마담 D.(틸다 스윈튼)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다녀간 후 살해됩니다.

마담 D.는 평소 그녀를 위로해준 친구(연인?)이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에게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남깁니다.

마담 D.의 아들 드미트리(애드리언 브로디)는 구스타브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고,

킬러 조플링(윌렘 대포)를 고용해 죽이려 하는데요.

구스타브와 그를 따르는 로비 보이 제로(토니 레볼로리)는 누명을 벗기 위해 분투합니다. 

 

 

 

 

 

 

영화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환상적인 이야기, 위트 있는 연출, 배우들의 열연이 잘 어우러지고요.

랄프 파인즈, 틸다 스윈튼, 에드워드 노튼, 주드 로, 빌 머레이, 오웬 윌슨 등

내로라하는 헐리우드 스타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을 받았어요.

한마디로 강추인 영화입니다. 

 

 

 

 

 

<그랜드 부타페스트 호텔>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구스타브와 제로의 관계였습니다.

구스타브는 신입 로비 보이 제로를 그야말로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칩니다.

혹독한 교육을 받은 제로는 점차 훌륭한 로비 보이로 거듭나게 됩니다.

말부터 행동까지 하나하나 점검받으며 제로는 어느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어울리는 로비 보이가 됩니다. 

 

 

 

 

 

 

영화를 본 후 저는 서툰 편집자인 저를 가르쳐줬던, 가르쳐주고 있는 많은 선배들이 떠올랐습니다.

선배들은 대체로 자상하게, 때로는 혹독하게 저를 가르쳤습니다.

교정지 적자대조를 하는 법부터 필름 검판 요령까지, 기획안 구상부터 보도자료 작성까지

제가 편집자로서 하고 있는 거의 모든 업무는 선배들로부터 배웠습니다.

능수능란하게 원고를 검토하고, 편집하고, 저자를 만나고, 독자를 응대하는 선배들의 모습은

왜 그렇게 커 보이는지...

신입 편집자 때부터 지금까지 저를 성장시킨 동력은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들을 빨리 따라가고 싶다는 욕심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차분하기로 소문난 한 선배가 제게 해준 “잡무 처리를 꼼꼼하게 잘한다”는 말을

편집자 생활을 하며 제가 들었던 가장 큰 칭찬 중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그/녀들이 없었다면 부족하나마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저의 모습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지금도 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성급한 일반화이긴 하지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제로가 구스타브를 보며 성장하는 과정은

모든 출판사, 나아가 모든 회사의 후배들이 겪고 있는 일일 겁니다.

물론 모든 선배가 구스타브처럼 훌륭하지는 않겠죠.

또 모든 로비 보이가 지배인이 되지는 못하지만요.

하지만 서툰 로비 보이가 좋은 로비 보이가 되고, 이후 훌륭한 지배인으로 거듭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구스타브를 찾고 그에게서 배우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사족. 구스타브와 제로가 처음 교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구스타브는 묻습니다. “왜 로비 보이가 되려 하지?”

제로는 대답합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니까 당연한 일이죠.”

제 경우에도 선배 편집자들과 비슷한 대화를 나눴던 것 같습니다.

“왜 편집자가 되려고 하세요?”

“책을 좋아하고 책과 함께하고 싶어서요.”

 

 

- 런닝맨

 

 

 

 

 

p.s. 1. 편집자는 어떤 길은 걷는가? 이에 관해 잘 정리된 글이 《편집자란 무엇인가》(김학원 지음, 휴머니스트) 32~38쪽에 실려 있습니다. (광고입니다~ -_-;)

 

p.s. 2. 출판사에서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으세요? 동료 로비 보이 지망생과 함께 훌륭한 구스타브들에게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sbi 신규인력양성과정인데요. 마침 요새 지원자를 모집하네요. 접수는 4월 11일까지입니다. (http://sbic.or.kr/Info/Board_Read.aspx?indexNo=792&BoardCode=1&BoardCat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