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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10배 재미있게 보기} 3. 위화도회군

 

안녕하세요.  

{정도전, 10배 재미있게 보기}

세 번째 이야기는 그 유명한 위화도회군입니다.

  

지난 회에서 결국 이인임은 유배를 떠나게 되고

이후 문하시중이 된 최영과 수문하시중이 된 이성계는

정국의 전면에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명나라 황제 홍무제 주원장은

한때 원나라에 빼앗겼다가 공민왕 때 탈환한 우리의 북방영토인

철령 이북을 다시 내놓으라며 땡깡을 부립니다. 

이에 크게 분노한 최영은,

우왕에게 요동을 치도록 명을 내려달라 합니다.

 

주저하는 우왕을 힘겹게 설득한 최영은 이성계를 부릅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4불가론을 펼치며 요동정벌을 반대합니다.

 

 

그러는 와중 동시에 우왕은

'싫다는 최영을 끝끝내 물고 늘어져 최영의 첩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여 군신 혼인동맹을 맺었다.

최영은 정실의 딸도 아닌 첩의 딸을 어떻게 임금과 혼인시키느냐며

삭발하고 절로 들어가겠다고 했으나 우왕은 막무가내였다.

요동 공략 후에 있을지 모를 정국 혼란을 우려한 우왕은 실력자 최영과 유착해

목숨과 권력을 보전하겠다는 생각에 앞뒤 가릴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 <정도전을 위한 변명> 177쪽 중에서 -

 

 

이성계의 4불가론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고

우왕과 최영은 전국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요동정벌을 밀고 나갑니다.

8도 도통사에 최영,

좌군 도통사에 조민수, 우군 도통사에 이성계.

정병 3만 8,830명, 종사원 1만 1,636명의 총 5만명의 규모로 꾸려졌는데,

세를 과시하기 위해 10만 대군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당시에 동원된 군마는 총 2만 1,682필이었다.

- <정도전을 위한 변명> 179쪽 중에서 -

 

그러나 우왕은 요동정벌의 총사령관 격인 최영을 불러

자신의 옆에 남아달라 붙잡습니다.

결국 최영은 출정하지 못하고 이성계와 조민수가 군대를 이끌고 요동을 향해 행군합니다.

 

그러는 한편,

 판삼사사 이색은 성균관대사성 정도전에게

사대부들을 모아 회의를 하자 합니다. 

최영에게 묵직한 몸쪽 꽉찬 돌직구를 날린 전적이 있는 윤소종은

이색, 정몽주, 권근 등 온건파 사대부들에게도 돌직구를 날립니다.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챌린지 정.

 

 

한편,

고려군은 쏟아붓는 장마철 폭우에 

땅은 질척해지고 비에 젖은 갑옷과 신발은 쇳덩이처럼 무거워져

말과 병사들은 지쳐 나아가질 못했으며,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군량미는 썩어들어가고 역병까지 돌아

수많은 병사들이 낙오했고, 탈영병들이 속출했습니다.

가까스로 위화도에 도착했지만 

압록강은 점점 불어나 부교가 휩쓸려 내려가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했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는 최악이였습니다.

그러는 중에 남쪽에는 왜놈들이 쳐들어오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이성계는 조민수를 설득해 우왕에게 회군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우왕은 이를 거절하고 진군을 명합니다.


 

그 사이, 정도전의 권유로 피신하는 이성계의 부인 강씨

 

회군을 거절당한 이성계는 크게 낙심합니다.

 

개경에서는 정도전이 돌직구남 윤소종을 불러

이성계의 회군을 정당화할 사대부들의 공론을 만들어 달라 하며

남은에 이어 윤소종을 정도전 라인으로 전격 스카웃합니다.

 

 

한편 위화도에서는,



이성계는 고민 끝에 요동으로 진군을 하려 하지만 

조민수를 포함한 장군들과 병사들이 이성계에게 회군을 이끌어 줄 것을 간청합니다.

 

 

더 이상 이 상황을 지켜볼 수 없던 이성계는 결국,

"내 한마디만 한다. 우린 개경으로 간다"

 

위화도회군을 명합니다.

 

회군에 기뻐하는 장군들과 병사들

1388년 5월 22일 압록강을 다시 건너며 이성계는 붉은 활과 흰 깃을 붙인 화살을 가지고

백마에 올라앉아 강 언덕에서 군사들이 다 건너기를 기다렸다.

병사들은 무리한 전쟁을 피하게 해줄 뿐 아니라 자기 몸처럼 병사들을 보살펴주는 장수를 당연히 따랐을 터이다.

이성계는 병사들에게 "백성들로부터 오이 한 개라도 빼앗으면 죄를 받을 것"이라는 영을 내렸다.

훗날 창왕도 이성계에게 내린 교서에 "행군할 때는 언제나 규율을 지켜 백성의 것은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않으니

백성들이 그 위엄을 두려하고 덕을 흠모한다"고 했다.

이는 이성계가 단순한 무장이 아니라 민심을 모으는 큰 정치를 할 줄 알았던 인물임을 말해준다.

위화도 회군 자체가 한여름의 거병을 싫어하는 민심을 잘 이용한 행동이었다.

- <정도전을 위한 변명> 182쪽 중에서 -

 

 

 

다음 {정도전, 10배 재미있게 보기}에서는 

 

막역지우 정도전과 정몽주의 대립과

이방원과 정몽주의 하여가&단심가 배틀,

정몽주의 최후(선죽교테러)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동안 강녕하시옵소서.. (__)

 

 

 

마침내 개경에 다다른 이성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