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을 착용하고 염불을 하는 스님이 없는 이유는?
길을 걷다 보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걷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눈앞도 살피고 스마트폰도 살피고 과연 눈이 멀티태스킹(multi tasking, 두 가지 이상의 동시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공부할 때도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있다. 담임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하나만 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으시지만 자식들은 잔소리라고 치부한다.
걷는 행위에도 우리 뇌의 많은 부분이 동원된다. 소뇌는 땅이 움푹 패었는지, 볼록한지, 지표의 성질에 따라 달라지는 근육의 긴장도를 조절한다. 중뇌는 보폭의 크기를 결정하며 언제 발을 떼고 내려놓을지 그 타이밍을 관장한다. 대뇌의 후두엽의 시각피질은 물체의 모양과 위치, 운동 상태를 분석한다. 이렇게 보행, 걷는 행위는 뇌의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종합적인 행위다. 간단한 것 같지만 뇌의 많은 부분이 동원되는 걷기 행위에 스마트폰이 개입되면, 시야가 축소되고 주의력이 급격히 감소하여, 결국 맨홀에 빠질 위험성은 그만큼 커진다.
'스마트폰 보행자'는 스마트폰 만지작거리기와 보행을 동시에 잘 수행하는 멀티태스킹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기겠지만, 이는 뇌과학적으로도 착각에 불과하다. 법으로 운전 중에 휴대전화 사용이나 DMB 시청을 금지하는 이유도 바로 운전과 스마트폰 작동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작업을 뇌가 싫어하기 때문이다.
헤드폰을 끼고 기도에 몰두하는 신도들을 보았는가? 헤드폰을 기고 염불을 하는 스님을 보았는가? 지성감천(至誠感天),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을 한다고 했다. 지극한 정성은 하나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올인(All in) 작업이다. 헤드폰을 끼는 즉시 정성은 반감한다. 하늘을 감동시키려면 헤드폰을 빼는 것이 좋겠다. 더구나 어른들이 말씀하시는데 아들들이 헤드폰을 끼고 있다가는 혼줄을 당한다. 아버지 말씀 듣고 있는데요, 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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