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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만나고 싶은 사람들/All about 人

다섯 번째 이야기: 새해의 유통 기한

 

 

 

2013년 1월도 절반이 지나고 있습니다.

 

첫날 품었던 굳은 결심, 독한 작심 보름간 잘 지키고 계신가요?

작심삼일 하셨더라도 낙심하기엔 이릅니다. 우리에겐 설날이 남아 있으니까요.

우리는 매번 두 차례의 새해를 맞이합니다.


두 차례 찾아오는 새해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1월 1일 마음에 품었던 ‘금연하겠다, 금주하겠다, 운동하겠다, 다이어트 하겠다, 100권을 읽겠다, 술 취한 채 옛 애인에게 전화하지 않겠다’ 등등의 계획이 좌절되더라도, 패자 부활전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요. ‘아차!’하고 한두 번 실수로 뜻을 이루지 못한 분들께 깔끔한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지니 말이지요.

 

저의 경우 단점이 부각됩니다. 으레 주어지는 패자부활전 탓에 1월 1일 결심이 쉽게 무너지기도 하고, 아예 “새해는 설날부터지.” 하며 결심을 미루기도 합니다. 스스로 결심에 대한 자발적 유예기간이라니… 사람 물러 보이고, 똑똑치 않아 보여요. 차라리 패자부활전이 없다면, 더 단호했을지도 모른다구요.


두 차례 쇠는 새해 탓에 ‘새해 시즌’도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12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어색스레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겨울을 지나는 내내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고 있는 셈이에요. 그래서인지 새해는 언제쯤 끝나는 것인지 어리석은 질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새해’라는 단어를 ‘올해’로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한 시점이나, ‘묵은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한 시점은 언제쯤일까요? 

 

모든 것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어제의 새것이 오늘은 낡은 것이 되어 버리는 세상에서 새해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요?

 


 

고교시절, 친구에게 들었던 일요일 오후, 그 집 풍경입니다.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있을 때, 마침 집전화가 울립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습니다.

저쪽 편에서 들리는 목소리, “여보세요, 새댁 좀 바꿔 주세요.”

아버지 말씀, “이 집에 헌댁은 있어도, 새댁은 없어요!”

가족 모두가 배꼽 잡고 웃고 있는데 딱 한 분, 어머니는 그럴 수 없었다네요.

그 일로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주말을 보내셨다는…

하긴 새 책-헌 책, 새 옷-헌 옷은 있어도 ‘헌댁’이라는 말은 없으니 아버지의 재치가 과하긴 했지요.

“우리 집엔 좀 오래된 새댁이 있긴 한대….” 하셨으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마음까지 어머니를 새댁으로 사랑하셨다면 더 멋지셨겠지만요.

(20년 차 아저씨가 된 지금에서야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저 또한 잘 알게 되어 가고 있다는 …)

 


 

새댁에 대꾸를 이루는 말이 ‘헌댁’이 아니듯, 새해에 대꾸를 이루는 말도 ‘헌해’가 아닐 것입니다. 새해의 유통 기한은 삶의 자세에서 결정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저녁엔 퇴근길에 신영복 선생님의 글과 마주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오뎅 한 꼬치 함께 하면 더 좋구요.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



 



 

초식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