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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기억하고 싶은 책/휴머니스트 책Book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그의 ‘미학’이 지나온 20년을 말하다




1994년1월 《미학 오디세이》가 출간되고 20년이 지났다. 영원한 소년일 것 같던 그도 이제 오십 줄에 접어들었다며 헛헛하게 웃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장난기 어린 그의 웃음이 세월을 무색케 한다. 《미학 오디세이》20주년 기념판 출간을 앞두고 진중권의 미학과 글쓰기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했다.
 

Q1 《미학 오디세이》가 출간된 지 벌써20년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거라 예상했나요? 20주년을 맞은 기분이 어떠세요?
 
쑥스럽네요. 20년 전에는 이렇게 사랑 받을 줄 전혀 모르고 썼지요. 그저 독일 유학 갈 때 항공료나 벌어보자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으니까요. 20년간 팔렸다는 건 나름대로 그럴 만한 요소가 있었을 테니까, 거기에 대해선 만족하고요. 무엇보다도 독자들께 감사하죠.
 
Q2 처음 책을 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폭발적인 반응이었나요?
 
주변 반응은 ‘없었죠’. 다들 책이 나온 줄도 몰랐고, 저는 바로 독일에 갔고요. 별다른 홍보도 없던 시절이에요. 그런데 독일에 가서 한두 해쯤 지나니까 주변에서 종종 책 잘 읽었다는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어요. 그래서 ‘아, 책이 나가긴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폭발적이라기 보다는 먼저 사서 읽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퍼져나간 것 같아요.
 
Q3 책이 출간되기 전에 출국하셔서 독일에서 출판사 편집부와 지속적으로 연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책 만들 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그때 제가 아마 2권을 다 쓴 상태에서 독일에 갔을 거예요. 독일에서 출간 마무리 작업을 했지요.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죠? 당시엔 해외 전화요금이 엄청 비쌌기 때문에 통화료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죠. 가령 “알았다”는 말을 전하려면 벨만 두 번 울리고 끊는 식으로 말이에요.
 
Q4 정말 옛날이야기네요. 20년이 지나 《미학 오디세이》를 다시 보니 어떤 기분이 드세요?

시간이 흐른 뒤 책을 보면 ‘쪽팔리죠’. 자기가 쓴 책을 보면 밤에 쓴 일기장을 읽는 기분이 들어요. 사실 내가 언제 이런 걸 썼을까 하는 경탄 혹은 경이로움 같은 것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이 책은 당시에 써야 하는 책이었어요. 대학원에 다니면서 이론들을 접할 땐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죠. 스스로 재미있게 썼기 때문에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미학 오디세이》에는 그런 느낌들이 다 살아 있죠. 책을 읽어보면 알잖아요. 정말 재밌어한다는 걸. 지금은 대중이 재미있어하는 건 내가 재미없어하고,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은 대중이 어려워하고. 그런 의미에서 책은 특정한 시기에 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Q5 《미학 오디세이》는 미학자 진중권의 정식 데뷔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더 흥미롭게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맞아요. 그때는 진중권이라는 사람이 신선한 저자였죠. 대중에게 처음 알려진 사람이었고, 구어체와 같은 글쓰기 방식도 처음이었고. 내용이나 책의 형식 면에서도 신선한 맛이 있었죠. 재밌고 신나서 놀이하듯이 책을 썼어요. 당시에 286 컴퓨터로 쓰면서 도판 하나 고르는 것도 신중했으니까요. 그렇게 내가 재미있어서 계속 글을 쓸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Q6 책에 대해 본격적으로 여쭤볼게요. 책을 보면 각각의 구성 요소가 자유롭게 배치된 것 같지만 잘 살펴보면 유기적인 구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림, 철학사, 미학 개념이 적재적소에 등장하거든요. 처음 집필하실 때 형식적인 측면에서 어떤 점을 염두에 두었나요?
 
우선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당시엔 노동자들을 위한 문화이론을 쓸 생각이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쉽게 서술하려고 했고, 어려운 개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미지와 사운드 즉, 구어체를 접합했죠.《미학 오디세이》는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의 형식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작곡가인 제 누이가 읽어보라고 소개해준 책이죠. 이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예술 장르인 그림과 음악, 또 수학이라는 학문에서 동일한 모티프를 얻어낼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3성대위법이에요. 대부분의 음악은 하나의 멜로디가 진행되고 반주가 있는 단성 음악이지만, 바흐 시절의 음악은 동시에 여러 개의 멜로디가 진행되는 다성 음악이었거든요. 바흐의 음악처럼 이 책의 구성도 미학사에 관한 내용, 미학에 진입하기 위한 철학사, 에셔·마그리트·피라네시 세 예술가의 모노그래프가 계속 교차해요. 이 세 가지의 멜로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화음을 만들어내는데, 그걸 음악에서는 폴리포니(polyphony)라고 해요. 이 책은 그러니까 미학사와 철학사, 예술가 모노그래프의 폴리포니인 거죠. 독자들이 미학이라는 어려운 학문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형식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Q7 1권은 에셔, 2권은 마그리트, 3권은 피라네시의 그림을 선정했는데, 이 그림들의 시각적 효과가 대단한 것 같아요. 언어로 된 미학 개념이 단번에 이미지로 그려지더라고요. 이렇게 각 권마다 특정 작가를 선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에셔·마그리트·피라네시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이들의 작품이 미학의 추상적인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한눈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에셔와 마그리트는 수학적·철학적 문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작품을 만들었거든요. 피라네시도 마찬가지고. 이 세 사람은 모두 추상적 사유를 형상화한 작가들이죠. 사물의 이미지라기보다는 사유의 그림, 개념의 이미지예요. 어려운 말로는 ‘기술적 형상’이라고 할 수 있죠. 복잡한 명령어 대신 아이콘을 클릭하는 것처럼 이들 그림도 아이콘으로 도입된 거예요.
 




Q8 피라네시는 에셔나 마그리트와는 조금 결이 다른 듯해요. 바로크 시대 인물이 탈근대 미학을 다루고 있는데 다른 의미가 있나요?
 
그건 1, 2권과 3권이 내용적 측면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에요. 에셔와 마그리트의 작품은 첫눈에 봐도 어디가 잘못되어 있는지 알 수 있지만, 피라네시는 구조물 중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짚어내기가 힘들어요. “피라네시 그림을10분만 바라보고 있으면 미쳐버린다”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 때문이죠. 피라네시는 바로크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시대를 살았어요. 이탈리아인이었던 그는 고대 로마의 유적을 찾아다니면서 그 옛 모습을 재구성하려고 했어요. 그럴 때 사람이 무엇에 의존할 수 있겠어요. 바로 ‘상상력’이에요. 피라네시의 그림은 무척 섬세하고 정교해서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상상의 산물이죠. 현대 예술도 마찬가지예요. 고전주의의 예술적 이상이 모두 무너져 내린 폐허 위에서 시작했죠. 그래서 피라네시의 그림이 현대 예술을 다룬3권의 대표 엠블럼이 될 수 있었던 거예요.
 
Q9 그러고 보니 《미학 오디세이》1, 2권과 3권이 출간된 시기가 10년 이상 차이 나네요. 1, 2권을 쓸 때의 생각과 3권을 쓸 때 생각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 2권은 근대 철학의 관점에서 예술을 일종의 ‘소통’으로 봐요. 그런데 3권에 오면 탈근대적 관점으로 바뀌죠. 소통을 하려면 공통의 ‘코드’가 필요한데, 현대 예술은 그 코드를 파괴하려고 하거든요. 현대 예술은 낯선 것을 접하는 충격을 주는 예술이에요. 그런 현대 예술을 2권에서는 근대 미학의 틀 안에서 이야기하려니 조금 어정쩡한 느낌이 있었어요. 사실 현대 예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 없었어요. 그래서 칸트의 형식 미학을 빌려와서 이야기했거든요. 그래서 2권은 한계가 있었죠. 그런데 탈근대의 미학을 다루는 3권에서는 낯선 것에서 충격을 받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하고, 없었던 것을 새로이 있게 하는 진리의 개념들을 다루죠. 이런 걸 숭고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바로 오늘날의 예술이 지향하는 효과예요. 이와 더불어 포스트모던 철학을 상징하는 보르헤스라는 작가를 앞세우고 피라네시의 그림을 아이콘 삼아 환상과 실재가 하나가 된 오늘날 세계를 설명했고요.
 
Q10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그리고 3권에선 디오게네스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이들의 대화를 삽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철학자들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요?
 
미학의 사유 틀과 기본 개념은 모두 철학에서 나온 거예요. 그래서 철학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미학을 알 수 없는데, 그렇다고 미학 이야기를 하다 말고 지루하게 철학사를 늘어놓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철학적 배경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상 대화로 풀어서 설명하려 한 거죠. 플라톤의 대화편처럼 말이죠. 이들의 대화는 실제로 이 철학자들이 했던 말을 바탕으로 구성한 허구예요. 대화체를 사용하면서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했고요. 3권에서는 디오게네스가 등장하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합리주의적 주류라면 디오게네스는 비합리주의적 비주류예요. 철학사는 이 양단이 대립하는 양상으로 진행돼요. 이걸 대화체로 보여줌으로써 어려운 철학사를 쉽게 풀어보려고 했던 거고요.
 
Q11 지금이야 워낙 쉽게 서술한 대중서가 많지만 20년 전 《미학 오디세이》가 출간된 당시에는‘쉽게 읽히는 책’에 대한 편견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책을 쉽게 쓰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런 걸 ‘대중적 글쓰기’라 부를 수 있을 텐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원래는 노동자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대중적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노동자문화통신〉이라는 잡지에 미학 이야기를 몇 차례 실으면서 설명이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노동 현장에서는 꽤 긍정적이었다고 해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미학 오디세이》를 썼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는데, 글쓰기 방식이 지금의 인터넷 문화와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거든요. 20년 전에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했지만 지금은 정보를 보고 듣잖아요. 팟캐스트가 그런 대표적인 예죠. 본래 책은 독백체지만 《미학 오디세이》에서는 말하고 듣는 방식, 대화체, 구어체를 차용해보고 싶었어요. 지금의 인터넷 글쓰기를 보면 실제로 말하기 형식과 닮아 있잖아요. 긴 글은 외면당하죠. 한 컷의 이미지로 말하려고 하고요. 이 책 또한 구어체의 글쓰기에 텍스트에 상응하는 이미지를 연동하죠. 구어체로 호흡을 끊어주기 때문에 훨씬 더 잘 이해될 수밖에 없어요. 예전에는 그림도 너무 많고 쉽게 읽힌다고 해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에코의 《장미의 이름》만해도 대중에겐 추리소설로 읽히지만 전문가들은 철학·미학·신학·기호학·정신분석학 모두를 읽어내잖아요? 《미학 오디세이》는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읽기에도 쉽지만, 미학이나 예술 철학을 전공한 강사나 교수도 읽을 수 있어요. 전문가들은 여러 미학이론에 대한 저자의 독법과 이론적 문제의식을 찾아낼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이 책이 만만하게 읽을 책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Q12 그러고 보니 뻔한 질문이지만 미학과는 어떻게 해서 갔어요?
 
이름이 예뻐서 갔어요.(웃음) 대학 갈 때 자기가 가는 과에 대해 잘 알고 가는 학생이 몇이나 있겠어요? 미학과는 원래 전 세계적으로 없는 학과예요. 학제에 미학과가 있는 곳은 우리나라와 도쿄대 밖에 없죠. 일본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도 미학과가 생긴 거고요. 사실 ‘미학’이라는 번역어도 일본에서 비롯된 거예요. 미학은 철학의 특정 분야, 진·선·미 중 미를 말하는 거거든요. 진은 인식론, 선은 윤리학과 정의론을 말하는 거고요. 만약 어느 학교에 인식론 학과라든지 존재론 학과가 있다고 하면 이상하겠죠? 미학의 개념은18세기 바움가르텐이 이성 중심의 고전주의에 대해 반발하며 만들어낸 것이죠. 일종의 ‘로코코 정신’이에요. 프랑스 고전주의의 독단에 반대하면서 로코코를 이론적으로 반영한 것이 미학이죠. 합리주의 틀 안에서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것들을 인정해주는 정도인데, 그 과정에서 미학이 탄생한 거죠. 결국 미학은 감성론이고 인식론의 일부예요. 미학의 어원인 aesthesis 자체가 감각이라는 뜻이니까요. 미와 예술이 주요 주제로 다뤄지긴 하지만 논리적인 부분 밑에 감성적인 부분이 존재한다는 근대적 패러다임이죠. 미학이라고 번역해놓아서 그렇지 어느 나라에서도 이 학문을 일컬어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이라고 부르진 않아요. ‘미론’이라는 말은 따로 있고요. 독일에는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요. 요즘은 철학과 미학이 혼합되는 경향이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철학 공부가 선행되어야 해요. 미학은 학부과정에서 소화하기 힘들어서, 저만 해도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했는데도 미학을 전공으로 택한다고 했을 때 건방지다는 반응이 앞섰으니까요.
 
Q13 선생님이 쓴 미학 책의 개정판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미학 오디세이》를 필두로 선생님 책들이 어느덧 미학 분야의 고전이 되었어요. 서양 미술사도 그렇고 미학도 그렇고, 20년 전의 미학과 지금의 미학이 같은 의미로 읽힐 수 없을 것 같아요. 20년 전의 《미학 오디세이》가 읽혔던 문맥과 지금 읽히는 문맥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1990년대 초반은 우리가 먹고 살기 바빴던 시기가 지나고 이른바 선진국으로 향하던 시대잖아요. 그 전까지만 해도 미학이 뭔지도 모르고 관심이 없었죠. 그런데 이때부터 대중이 이른바 먹고 살만해지고, 본격적으로 대중문화가 확산되고, 여행도 가고, 문화 예술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죠. 《미학 오디세이》가 출간된 시점은 그 시기와 딱 맞아떨어진 거예요.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학’이란 말은 한번쯤 들어봤을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미학의 중요성은 20년 전보다 높아졌어요. 경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창조, 융합, 통섭이 중요해지고 상상력이 경제를 이끌어가게 되었죠. 이미 있는 것을 단순히 인식하는 것보다 아예 없는 것을 기획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이런 건 예술이 이전부터 수행하던 기능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어떤 학문을 하든 미학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학 모델, 기술에서 더 나아가 아직 없는 것을 떠올리고 실현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요. 현대 예술도 재현론에서 표현론으로 옮겨가잖아요. 지적인 능력도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쪽으로 키워나가야죠. 인식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가면서 미학의 의미도 달라진 것 같아요. 미학 자체가 미래, 즉 미래 경제학이라고 생각해요.
20년이 지났으니 대중도 일반론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이제 슬슬 올라가야 해요. 진전된 미학 담론을 다룬 책이 나와야죠. 《미학 오디세이》10분의 1만 팔려도 깊이 있는 책들이 나올 텐데, 일반론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전멸이니까, 참 아쉬워요. 매번 같은 미술사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죠. 태권도로치면 품새만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런 면에서 저는 독자들을 끌고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요즘은 제 글이 좀 어려워졌죠? 너무 쉬운 것만 하니까 저도 좀 지겨워서요. 독자 스스로 어려운 책을 접하고 읽을 수 있도록 하려는 거죠. 책을 읽는다는 것이 컴퓨터 하드에 파일 저장하듯이 읽는 것이 아니라 두뇌 처리 용량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독서 문화가 바뀌어야죠. 사실 《미학 오디세이》를 아무리 잘 읽어도 일주일이면 까먹을 수 있어요. 달리 말하면, 뭣 하러 지식을 기억하죠? 이제는 그냥 외장에서 필요할 때 찾아서 쓰면 되는데 말이에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 가공하는 능력, 읽고 나서 나만의 고유한 텍스트를 쓰는 창조적인 능력이에요.

 
Q14 《미학 오디세이》는 대학생들의 필독서이기도 하지요. 선생님은 현재 동양대에서 미학 강의도 하고 다양한 강연을 통해 학생들을 만나는데, 지금 20대들이 《미학 오디세이》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강연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면서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그런 건 각자 생각해야죠.(웃음) 자신이 책을 읽는 의미를 누가 부여해줄 수 없으니까요. 학교 수업할 때 보면 학생들이 다 졸고 있어요. 그중10퍼센트 정도는 열심히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자기가 왜 듣는지도 모르는 표정이에요. 수업시간에도 거의 질문을 안 하고요. 이들은 한국식 교육에 의해 관리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공부해본 적이 없어요. 주어진 문제를 알고리즘에 따라 푸는 능력만 있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진 못하죠. 학생들이 질문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업을 끌고 가야 하는데, 우린 그게 잘 안 돼요. 사실 그런 건 지적 수준이 높지 않아도 되거든요. 우리는 질문하는 습관이 잘 안되어 있어요. 아이들이 묻는 일상적인 질문 자체가 철학자들이 던졌던 질문이기도 한데 말이에요. 그런 면에서 20대들이 성인이 되어서 자기 사유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미학을 써먹으면 좋겠네요.
 
Q15 《미학 오디세이》와 함께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서양미술사’를 읽어야죠. 《미학 오디세이》에서도 서양미술사를 간추려 언급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지식을 얻으려면 본격적인 서양미술사를 읽어야죠. 미학은 미술사와 철학사의 중간 지점이기도 하니까 미술사와 철학사를 함께 읽는 것이 좋죠. 미술사가 좀 그래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너무 낡았고, 《1900년 이후의 미술사》는 너무 비평적이고 어렵죠. 제가 쓴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도 갈수록 어려워져요. 아무래도 겹쳐서 읽는 것이 좋겠죠. 《미학 오디세이》1, 2권과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고전예술 편, 모더니즘 편을 같이 읽으면 좋아요. 《미학 오디세이》3권은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모더니즘 편, 후기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편을 같이 읽으면 좋고요.
 

Q16 지금 다시 미학 입문서를 쓴다면 어떻게 쓰고 싶나요?

다시 쓴다면 교과서처럼 건조하게 쓸 거예요. 강의 교재용으로 필요해서.(웃음) 대중서보다는 옛날 개설서처럼 써야 해요. 사(史)를 쓴다기보다 미학의 문제 영역들, 미론과 예술론으로 나눠서 어떤 영역이 있는지를 방학 동안 쓸 거예요. 재미는 없을 거예요, 아마. 정보 제공용이거든요. 어떤 학문이든 학설사와 체계론이 필요한데. 미학사 말고 미학 체계론을 다룬 책은 별로 없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체계론적 접근 방식은 근대적인 거예요. 요즘은 주로 에세이를 쓰는데 대중들에게 잘 먹히는 것 같진 않아요. 우리 독자들에게 책은 무릇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어야 한다는 편견이 있어요. 그러나 미학 자체가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어요. 포스트모던은 체계가 잡혀 있어야 지식이라는 헤겔의 세계관이 무너진 시대예요. 체계보다는 개별자의 고유성과 작은 현상들을 보려 하기 때문에 글쓴이의 개인기가 요구되죠. 학자적 자질보다는 예술가적 자질이 필요한 거예요. 이를 제대로 구현하기에는 에세이라는 형식이 적합하고요. 저도 그런 시도를 계속하고 있지만 잘 안 먹히는 것 같아요.(웃음)
 
Q17 “진중권 욕하지 마라, 《미학 오디세이》 쓴 사람이다”라는 리뷰를 보았습니다. 논객으로서의 진중권과 저자로서의 진중권 둘 사이에 간극이 있다고 보는 것 같은데, 본인의 생각은 어떠세요?

논객과 미학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죠. 수업할 때 정치적인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아요. 토론이나 리포트에도 절대 개입하지 않죠. 논객이라서 책이 잘 팔리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타격을 받지.(웃음) 논객 해서 책이 잘 팔린다기보다는 찍히면 잘 안 팔리죠. 그놈의 논객도 지겨워서 안 하고 싶어요. 지금은 그냥 버티고 있는 거예요. 분위기가 요즘 많이 고조되는 것 같아요. 한동안 뚝 떨어졌다가 트위터 팔로우 수가 지금은 하루 300에서 350으로 올라왔어요. 지금 팔로워는 37만~38만 명 정도 돼요. 모두들 멘붕 상태에 있다가 슬슬 올라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사건, 철도 파업, 의료민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졌어요. 어려운 시기에 함께하고, 잘 나갈 때 빠지는 게 멋있는 건데…… 폼 잡고 우아하게 책만 쓰면서 살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오직 비행하고 책 쓰며 지내는 삶을 꿈꾸는 진중권. 문화비평가, 시사평론가, 논객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미학자로서 좋은 책을 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한다. 그는 오늘도 창공을 가로지르는 듯한 독창적인 시선으로 예술 체험이 세상과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이어지도록 우리를 돕는다. 국내에 미학의 세계를 열어준 우리 시대의 고전 《미학 오디세이》는 20년간 꾸준히 사랑받은 수작이다. 지금도 매년 대학 신입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책이고, 철학사와 예술사에 눈떠 본격적인 지식의 세계로 이끄는 책이며, 글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 책이다. 20년간 세대를 넘나들며 여전히 탐독할 수 있는 텍스트가 있어 고맙다. 10년 뒤 진중권의 새로운 ‘미학 오디세이’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스무살 <미학오디세이> '아름다운 청춘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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