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_작가共방/김보일|생각의 뭉게구름

휴로그에 글을 새로 시작하며 -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김보일의 상상력 특강 '생각의 뭉게구름'

 

 

 

 

 

 

 

장마가 끝난 하늘을 바라보면서 8살 무렵의 나는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습니다. 그 공포의 대상은 다름 아닌 뭉게구름이었죠. 코끼리, 염소, 거북이, 호랑이, , 독수리, 할아버지 얼굴, 자동차.....솜사탕처럼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속에는 수많은 형상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때때로 형상들은 빠른 속도로 형체를 바꾸곤 했습니다. 코끼리에서 사람의 형상으로, 사람의 형상에서 매의 형상으로 말입니다. 그 때 나는 대체 누가 구름 뒤에서 저 모습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저렇게 커다란 구름을 마음대로 주물러 새로운 형상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라면 그는 얼마나 크고 힘센 존재일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뭉게구름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형상들을 신기롭게 바라보면서 나는 친구들에게 너희들도 저 구름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형상들을 한번 보라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친구들은 구름 속에 뭐가 있냐고, 정신 나간 소리 하지 말라고, 제게 핀잔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뭉게구름 속에서 만들어지는 형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왜 내 눈에는 저렇게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왜 친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내 눈이 잘못된 것일까,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나만 특별한 존재인가, 나는 남과 다른 눈을 가졌나,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공포는 다른 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늘 위에서 뭉게구름으로 갖가지 형상을 만들어내는 이에 대한 공포가 그것이었습니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나는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외경(畏敬)’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아무튼 거대한 힘으로 갖가지 형상을 그려낼 수 있는 이, 그에 대한 두려움을 8살의 나에게는 사뭇 큰 것이었죠. 다른 사람들은 그가 그려내는 형상을 모르고 있는데 나만 유독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는 나에게 어떤 징벌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더욱 두렵게 했습니다. 자신이 몰래 하는 일을 남들에게 들키면 누구나 창피하겠죠. 화가 날 수도 있겠구요. 그 화풀이의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스럽기도 했습니다. 구름 뒤에서 사람들 몰래 여러 가지 형상들을 만들어내던 이가 자신의 하는 일을 어떤 꼬마에게 들켰다. 이건 굉장한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굉장한 사건에 제가 연루되었으니 어찌 공포스럽지 않았을까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뭉게구름에서 더 이상 공포를 느끼지 않는 나는, 뭉게구름 뒤에 어떤 인격적인 존재가 있어, 그가 수많은 형상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구름은 구름 자체의 원리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름이 인격적인 존재가 만들어낸다는 신화적 사고에서 구름은 구름 자체의 원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과학적 사고로 제 생각의 구조가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구름에서 호랑이와 비행기의 형상을 읽어내는 생각이 비록 유치할지는 몰라도 그런 생각이 부질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생명이 없는 사물에서 생명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 그런 사유의 능력이 문학과 종교와 예술의 씨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문학과 예술과 종교는 과학적 사유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세상을 풍요롭게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우리에게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물을 사물 자체의 원리로 보는 것이 과학이라면, 사물을 세계와 연관시켜 상상의 힘으로 읽어내는 방식이 문학이요, 예술이요, 종교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술가도 아닙니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어떤 하나의 방식으로 사물을 보아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 자유는 보는 방식의 다양성에 있다. 어떤 하나의 방향에서 사물을 볼 때, 우리는 사물의 다양한 표정을 놓치고 만다. 이왕이면 사물의 뒤통수도 보고, 이마도 보고, 옆얼굴도 보고, 위에서도 보고 아래서도 보자. 너는 구름을 물방울의 집합이라고 보렴, 나는 구름을 호랑이의 날개라고 생각할게. 바로 이런 생각의 디딤돌 위에서 생각의 씨앗을 자라게 해볼 생각입니다. 누구는 이런 생각의 방식, 세상 바라보기의 방식을 통합이라고 말하지만 이름이야 뭐든 어떻습니까. 가급적이면 세상을 다양하게 보는 것, 즐겁게 보는 것, 세상을 잘 보는 것, 그것이면 족하겠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김보일 현직 국어선생님인 김보일 선생님은 인간사에 호기심이 많은 철없는 선생님입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달리기를 합니다. 달리기를 하지 않을 때는 그림도 그리고, 붓글씨도 씁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던지는 겁 없는 질문에 허를 찔리기를 여러 차례, 아이들이 질문하듯 자연과학의 허를 찌르는 에세이를 쓰기도 합니다. 순전히 지적 호기심에 읽은 자연과학책들을 통해 인문학이 보지 못하는 삶의 다른 면을 통찰하는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에서 삶을 들여다보는 에세이스트가 되기를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