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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기억하고 싶은 책/휴머니스트 책Book

우리말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 - 《우리말은 서럽다》







《우리말은 서럽다》가 처음 세상에 나온 건 2009년 8월 3일이다. 우리말을 가르치고 퍼뜨리는 데 힘써 온 김수업 선생님이 한겨레신문 ‘말뜻말맛’이라는 코너에 연재했던 글들을 깁고 더해 나라말출판사에서 펴낸 책이다. 이 책은 우리 토박이말 가운데 요즘 우리가 헷갈려 쓰는 낱말과 그 뜻이 남다른 낱말 80여 개를 가려 뽑아, 이 낱말들이 지닌 속뜻과 속살을 알기 쉽게 밝히고 있다.

 



 



 
처음 이 책의 원고를 대충 훑었을 때, ‘토박이말 사전이구나.’ 정도의 느낌이었다. 앞부분에 오늘날의 말글살이가 이 지경(한자말, 일본말, 미국말을 섞어 쓰고, 우리말을 하찮게 여기게 된 지경)이 된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써 놓긴 했지만, 책의 핵심이 낱말이 지닌 뜻을 풀이하고 밝히는 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고를 거듭 읽을수록, 단순히 토박이말의 뜻을 풀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거기에는 우리말을 그토록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저자의 깊은 속내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우리네 말글살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학자의 강직함도 보였다. 


‘토박이말 사전’ 정도로 생각했을 때는 책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별 고민이 없었다. 잘 정리해서 깔끔하게 만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속내와 고민을 마주하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글이야 뭐 워낙에 군더더기 없이 잘 써져서 별로 손볼 것이 없었지만, 문제는 제목과 표지였다. 다행히 김수업 선생님께서 ‘우리말은 서럽다’라는 기가 막힌 제목을 제안해 주셔서 제목 고민은 덜게 되었다. 


남은 것은 표지였다. 마땅히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러던 중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가 들녘출판사에서 펴낸 《개념어 사전》을 보게 되었다. 그 전에도 이 책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개념어 사전》을 보고, ‘아, 이런 컨셉의 표지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일단 작은 판형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눈에 확 띄는 색의 조합도 좋았다. ‘그래, 결정했어.’
마음을 굳히고 디자이너에게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 일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 실수... 저자와의 소통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작은 판형, 이것이 문제였다. 나는 ‘서럽다’를 작은 판형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고 좀 더 사람들 손에 쉽게 잡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처음부터 다시!


판형을 바꿔야 해서 처음 제안했던 표지 컨셉에서 수정이 불가피했다. 한글 자음과 모음을 이용한 클래식한 표지와 제목 서체에 힘을 준 모던한 표지... 두 가지 컨셉의 여러 가지 시안 가운데 위의 것으로 최종 결정이 되었다.

 

 

그로부터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우리말은 서럽다》가 새 옷을 입고 휴머니스트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이 책의 디자인은 디자인팀 수습 디자이너가 맡았다.(지금은 수습을 떼고 정직원이 되었다.) 수줍음이 많지만 귀엽고 애교 넘치는, 그리고 열심히 묻고 열심히 일하는 20대 후반의 남자 디자이너. 


그가 내놓을 표지가 어떨지 매우 궁금했다. 위의 세 가지를 포함해 다섯 가지 시안을 내게 주었다. 나는 그가 무척이나 기특했다. 짧은 시간에 다섯 개나 되는 시안을 내놓을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금 있다가 다른 시안 하나를 더 건네주었다. 그가 마지막 시안을 건네주면서 나에게 무슨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니 아무 말도 안 했었나...? 아무튼 마지막 시안을 건네받으면서, 이걸로 해야겠다는 느낌도 함께 받았다.

 

 

여섯 번째 시안

     



늘 하던 대로, 시안을 쭉 펼쳐 놓고 편집부 식구들의 의견을 들었다. 위의 것 가운데, 세 번째 것이 우세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책 내용에 비해 좀 무거워 보인다는 의견이었다. 세 번째 것이 좀 발랄해 보이기도 하고, 구성도 재밌고, 제목 집중도도 괜찮아 보인 것 같다.  


여섯 개의 시안을 저자에게 보냈다. 편집부 식구들의 의견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담았다. 


“디자이너 말로는 6번이 가장 마음을 많이 쓴 거라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말은 서럽다》의 새 표지가 정해졌다.

 

2009년에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말글살이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말은 한자말이나 영어에 비해 B급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만들고 나서 ‘감사하다’라는 말보다는 ‘고맙다’라는 말을 의식적으로라도 쓰는 것처럼, 우리말을 A급으로 여기려는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번져 가길 바란다. 우리 겨레의 삶과 얼을 오롯이 담고 있는 우리말을 제대로 알고 부려 쓴다면 우리의 생각과 삶이 한결 풍요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