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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최덕근|삼엽충을 요리하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지구, 당신이 살고 있는 지구

 

 

내가 사랑하는 지구, 당신이 살고 있는 지구

 

 

2009년 3월 어느 따스한 봄날, 홀로 관악산에 올랐다.

바위산의 계곡을 따라 올라 능선에 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정상의 멋진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관악산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서울대학교가 지금의 관악 캠퍼스로 이전한 때인 1975년부터 거의 30여 년 동안,

부끄럽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관악산에 오른 적이 없었다.

 

지질학자로서 연구를 위해 수없이 많은 야외 조사를 했고, 수많은 산에 올랐지만,

그것은 발아래에 펼쳐진 땅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고개를 들어 자연의 경관을 살피고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 또한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나는 주말마다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산을 찾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했던가. 나이 60이 넘어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나는 오래도록  알지 못했다. ⓒ 최덕근

 

그 다음해에 지질학과 송년 모임에서 산행을 하면서 지질학의 새로운 맛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을 전했더니

대학 은사이셨던 이상만 교수께서 호(號)를 지어주셨다. 도산(䛬山). ‘산과 대화하다.’라는 뜻이다.

나는 정말 산과 대화하고 싶다.

산을 이루고 있는 암석에게 ‘너는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니?’라고 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묻고 싶다.

우리 산하를 이루고 있는 이 아름다운 땅덩어리가 어떤 역사를 겪어 현재에 이르렀는지 알고 싶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지구가 평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는 분명 지구가 둥글다고 배웠지만, 실제 눈앞에 펼쳐진 땅덩어리는 끝없이 평탄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멀리 나가면 바다 가장자리에 커다란 폭포가 있어 어딘지도 모를 심연 속으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거꾸로 서있는 것이 얼마나 불편할까하고 걱정했던 적도 있었다.

 

물리시간에 중력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상 속에 펼쳐진 세계는 지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다가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상공에서 커다란 호를 이룬 수평선을 보면서,

그제야 지구가 둥근 것을 실감했던 기억이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체감하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었다. ⓒ Carlos Oliveira

 

나처럼 오랫동안 과학에 종사한 사람도 책에서 배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까지

많은 경험과 확인을 거쳐야 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과학적 지식이 상대적으로 적은 일반인들에게

우리의 연구 결과를 무조건 믿고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1~2학년 학생들을 위한 교양과목으로 지구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항상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게 우리의 지구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수업 시간에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려 한다.

왜 산은 높고 바다는 깊을까? 바닷물은 왜 짤까? 왜 하루는 24시간일까?

우리가 평소에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여 질문 자체도 해 보지 않았던 내용이더라도,

질문에서 출발해 원인을 추적해 가다 보면, 우리의 지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화석을 연구하는 지질학자로 스스로를 “삼엽충을 요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지질학자는 암석과 화석을 요리하는 셰프이기도 하고, 과거를 기록한 암석 속 증거를 찾아내어

지구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밝히는 탐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땅덩어리에 기록된 지구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예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상상한다. 아주 오래전 지구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지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내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이런 여러 지질학적 문제를 다루다 보면,

옛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왜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는 철들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궁금하기만 한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사고의 과정과 비슷하기도 하다.

나는 어떤 주제를 역사적으로 더듬어 보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과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질학 연구는 쉽게 삼엽충으로 대변된다.

그래서 나는 지질학자를 "삼엽충을 요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 최덕근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첫 번째는 현재 지구의 움직임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판구조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판구조론은 지질학에서 매우 중요하다. 판구조론이 없는 지질학은 과학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판구조론을 통해서 지구를 볼 때 비로소 우리는 지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생물학에서 진화론이 차지하는 위상과도 같다.

판구조론이 과학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지는 채 50년이 되지 않았으며,

지질학이 과학다워진 것은 판구조론이 등장한 1970년 이후라고 말할 수 있다.

 

판구조론이 지구과학의 핵심 이론으로 등장하기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과학자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겪은 성공과 실패담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어떤 자연현상에 대해서 예전에는 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은 또 왜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여러분이 자연스럽게 우리 지구를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두 번째로는 내가 암석과 화석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판구조론과 관련된 어떤 연구를 했는지,

그 과정에서 내가 우리 한반도 형성과정을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한반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다. 그래서 이야기를 시간 순서에 따라 전개했고,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원래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내가 한반도 암석을 연구한 순서를 보면 1980년대 중반에는 1억 년 전 암석,

1980년대 후반부터 20여 년 동안은 5억 년 전 암석, 그리고 지금은 7억 년 전 암석을 연구하면서

한반도 형성과정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을 섭렵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독자들도 나의 그러한 느낌을 공유하기를 바라본다.

내가 살고 있는 땅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 최덕근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5억 년 전 암석과 화석을 연구하면서, 나는 당시 땅덩어리의 모습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5억 년 전 암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지구에 대해서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고,

암석과 화석을 연구하면 할수록 지구는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지구를 사랑하고 있다.

또 나는 지구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 사람들이 이 매력적인 지구에 대해서 잘 알게 되기를 기대한다.

지구는 우리 삶의 터전이고, 우리 자신 또한 지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